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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지 못한 말
운전기사의 핸들 쥔 손에 몸도 마음도 맡기고 편히 교회 앞까지 오면서 예수님 말씀에 몸도 마음도 맡기고 함께 천국에 가자고 말하지 못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마디 말로는 부족한 듯해서 자투리 동전을 사양하고 대낮처럼 환하게 웃으며 내리지만 마음은 못한 말 때문에 안개 낀 밤처럼 아련합니다.
-박순희 시인의 시집 ‘꽃씨 사러 가는 길’ 시 ‘못한 말’ 중에서
우리의 곁을 지키는 소중한 이들에게, 그리고 우리와 크고 작은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거절당할까, 혹은 관계가 깨어질까 두려워 망설이기를 반복하고 계십니까?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관계의 변화가 아닌, 영영 소중한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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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때 - 전 12:1~8 |
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3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4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5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 6 은줄이 풀리고 금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8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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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는 노년에 이 전도서를 썼으며 지금까지 여러 권면을 하는 가운데 이제 마지막 장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말을 결론으로 남깁니다. 말년에 이르고 보니 역시 <청년의 때>가 가장 소중한 시기였던 만큼 이 마지막 가르침도 여전히 <청년>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창조주를 기억하라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1절). 청년의 때에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가장 소중한 본분이 바로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굳이 <창조주>라 했을까요? 부모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지으셨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내 인생의 절대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내 존재에 대한 합법적인 소유주가 하나님이심을 결코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교만하여 경거망동하거나 자신의 인생을 함부로 설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 신중히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래야 할까요? 내 욕구나 세상의 주문은 결코 내 영혼에 참 만족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 창조주를 기억하고 그분의 뜻을 좇아 살지 않으면 청년기의 그 숱한 유혹들을 이겨내고 바르고도 건강한 인생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둡기 전에 그리하라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네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2절). 그렇습니다. 청년의 때는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현자는 노년을 온갖 비유를 동원해 시적으로 표현하고 또 우아하게 묘사했는데 그 시대의 문학적 관용어들을 잘 모르는 오늘 우리들로서는 다소 낯선 대목도 없지 않지만 전체적인 의미는 분명합니다. 노년까지 미루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결단하라는 촉구입니다.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시력이 떨어진다는 표현이고,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난다는 것은 노년이 되면 계속 괴로운 일이 이어지고 병이 반복되면서 고통에서 벗어날 날이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라는 표현도 노인이 되면 머리가 희어질 것이라는 뜻일뿐 아니라 봄이 되면 그 어떤 나무보다도 살구나무 꽃이 가장 먼저 피므로 인생의 노년도 그렇게 급히 닥친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누구나 살구나무 꽃피듯 급하게 올 노년 전에 필히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연세 드신 분들의 기독교 신앙입문을 몹시 경이롭게 여깁니다. 평생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오신 분이 백발 성성한 말년에 새삼 기독교 신앙을 결단하시고 경건하게 사시는 모습을 보면 참 은혜롭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은 흔치 않으며 제한된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당부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7절). 사람은 누구나 흙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죽으면 일단 흙으로 환원됩니다. 그러나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이게 하나님이 모든 인생들의 운명에 부여하신 창조의 질서입니다.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기로 왕래하게 됨이니라>(5절). 인생은 이렇게 죽는 순간 그의 영원한 운명이 고정됩니다. 따라서 자신의 운명이 고착되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가톨릭은 <연옥>을 가르쳐 사후에도 또 한 차례 기회가 더 있다고 믿지만 우리는 그런 교리를 부정합니다. 반드시 죽기 전에, <영원한 집>으로 귀환하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해야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청년의 때에 실패했다면 차선의 기회로 노년의 때에, 노년의 때도 놓쳤다면 최소한 죽기 전에는 믿어야 그것이 내 영원한 운명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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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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