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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보다 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주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어떤 율법보다 우위에 두었던 예수를 생각하라. 이것이 바로 우리 안의 강박증을 물리치는 성경화 처방이다.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언제나 법보다 우선이다. -베르너 티키 퀴스텐마허의 ‘성경대로 살아라’ 중에서-
때론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관계 가운데 상대방을 놓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로 매달리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여전히 죄 가운데 사로잡혀 방황하는 이를 볼 때면 ‘과연 어디까지 그를 용납해야 할까?’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향해 사랑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죄를 미워하되 그의 영혼을 미워하진 말라고 권고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심령을 위해, 그러나 결코 놓아 버릴 수 없는 한 영혼을 위해서 주 앞에 목 놓아 우는 사랑. 그 사랑이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키고 또한 어둠 속에서 헤매는 그를 주님의 빛 가운데로 인도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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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굴의 고발 - 잠 30:10~20 |
10 너는 종을 그의 상전에게 비방하지 말라 그가 너를 저주하겠고 너는 죄책을 당할까 두려우니라 11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12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도 자기의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13 눈이 심히 높으며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14 앞니는 장검 같고 어금니는 군도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키며 궁핍한 자를 사람 중에서 삼키는 무리가 있느니라 15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16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18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19 곧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 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20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의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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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굴은 진솔하게 기도했고 무엇보다 겸비했으며 또 소중한 깨달음으로 남을 교훈했습니다. 위대한 현자였음에도 자신에 대한 평가에는 가혹했습니다. <짐승이다>, <총명이 있지 않다>, <배우지 못했다>, <지식이 없다>는 등의 표현은 누구나 자신에 대해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이렇듯 아굴은 맹목적이지 않고 사람에 대한 평가도 엄정한데 특히 그가 경멸하며 고발하는 부류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깨끗한 체하는 자들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도 자기의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12절). 위선자들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거룩한 체하지만 그 속은 더러운 오물로 가득찬 사람들, 주님도 그런 이중인격자들에 대해 가장 신랄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5-27). 그런데 아굴 역시 겉과 속이 다른 이런 표리부동한 자들을 성토했습니다. 주님과 아굴이 가장 격렬하게 책망한 자들이 바로 그런 외식자들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도 믿음 따로 삶 따로 라는 그 이원론적 분열증이 가장 위기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거머리처럼 탐욕을 부리는 자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15절). 거머리는 탐욕과 잔인함의 상징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만족할 줄을 모르고 <다오! 다오!>하며 더 많은 피를 빱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도 피를 마실수록 더욱 목말라하며 남의 피를 찾는 거머리 같은 인생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남을 무참하게 해치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더 많은 피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주변의 거머리 같은 사람들을 경계해야 할 뿐 아니라 나도 남에게 거머리 같은 존재가 되지 않도록 늘 자신을 단속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어야겠습니다. 남의 피를 빨아 내 배를 불리는 거머리 인생이야말로 아굴이 가장 경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은밀히 부정을 범하는 자들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의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20절). 공중을 나는 독수리는 그 자취가 남지 않습니다. 바위 위를 지나가는 뱀도 그 흔적이 남지 않으며 바다 위를 지나가는 배 역시도 그 자욱이 없습니다(19절). 그런데 부정한 남녀도, 음녀의 은밀한 소행도 감쪽같이 그 흔적을 지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정을 범하고도 마치 입을 씻듯 그 흔적을 지우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며 시침을 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 보고 계시며 성령은 늘 그 현장을 지키고 계십니다. 아무리 부인하고 교묘하게 위장한다 해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늘 주님의 눈길을 의식하며 사십시오. 내 삶을 감찰하시는 성령의 존재를 느끼며 경건하게 생활하십시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임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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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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