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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배운 것
어떤 시험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광야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자리다. 그곳은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 시는 장소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다.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피할 수 없고 사나운 맹 수들을 피할 피난처가 없으며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도 채울 수 없는 그곳에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이 계신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더함 없는 채우심을 경험한다. -황금만 선교사의 ‘ 광야에서 채우리라’ 중에서-
인생의 광야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배웁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 까지도 주께 속해있음을 아는 겸손과 모든 것을 잃어도 곧 다시 채우시는 주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공의의 하나님과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을 마주합니다. 교만한 자녀를 미워하시되 회개하고 자복하는 자에게 더욱 큰 은혜로 옷 입히시는 하나님. 광야는 믿음의 키를 한 뼘 더 자라게 하는 은 혜의 공간입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회복하는 특별한 자리입니다 . 인생의 광야가운데 낙심치 마십시오. 그리고 두려워 마십시오. 주가 그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며 다시 우리의 손을 잡고 그 곳을 빠져나와 은혜의 땅으로 향하실 것을 확신하십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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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와 공이 - 잠언 27:20~27 |
20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21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22 미 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 23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24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 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25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26 어 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27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의 음식 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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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와 공이>란 곡식을 찧어 가루 로 만드는 도구를 가리킵니다. 고대 근동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흔히 사용해 온 농경사회의 필수품 이었습니다. 절구는 보통 돌이나 나무 혹은 금속으로, 공이도 나무나 금속 재질로 만들었는데 이스라엘 백성 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절구에 넣고 빻기도 했습니다(민11:8). 그런데 현자는 여기서 이 절구와 공이를 하나 님의 혹독한 심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22절).
자족하라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20절). 그렇습니다.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 스올(무덤)은 결코 죽음을 사양하지 않습니다. 유사 이래 한 번도 <이제 그만!>하고 죽음을 저지 시 킨 적이 없습니다. 아바돈(지옥)도 마찬가집니다. <이제 만원이니 그만 오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스올과 아바돈은 여전히 그 탐욕스런 입을 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들어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은 사람의 눈도 그렇습니다. 자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더 많고 더 크고 더 강한 자극을 바라며 오 로지 쾌락과 세상적인 욕망만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게걸스러운 탐욕을 마냥 보고만 계시지는 않습니다. 결국은 응징하십니다. 마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듯이 거칠고 혹독하게 심판하십니 다.
칭찬하라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 하느니라>(21절). 물 론 남이 칭찬할 때 도리어 우쭐거리며 교만해지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헤롯은 백성들이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행12:22)며 아부하자 교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다 주의 사자 의 응징으로 즉각 죽음을 면치 못했지만(행12:23)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칭찬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훌륭한 인격으로 단련시킨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은을 연단하는 도가니나 금을 연단하는 풀무불처럼 뜨겁고 혹독하게 다뤄야만 변화되고 새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않습니까? 칭찬에 인생하지 마십시오. 칭찬에 보다 넉넉하십시오. 때로는 칭찬과 격려가 도가니나 풀무불보 다 더욱 효과적인 연단법일 수 있습니다. 언제나 채찍만이 능사는 아니며 당근도 필수불가결합니다. 하나님 은 우리가 칭찬에 인색하고 오로지 도가니와 풀무불만을 고집할 때 절구와 공이를 동원하사 거칠고 혹독한 연단만이 전부가 아님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하시고 칭찬의 소중함을 깊이 체득하게 하십니다.
부지런 하라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23). <어린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의 음식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26-27). 이는 특히 자신의 직업, 자신의 사명과 소명에 충실하고 게으르지 말라는 당 부입니다. 자신의 일이나 과제에 대해 기계적으로, 의무감만으로 임할게 아니라 더욱 마음으로 감당하라는 뜻입니다. <살피라><마음에 두라>는 말씀은 소명감을 가지라, 천직의식을 가지라는 뜻에 다 름 아닙니다. 모든 노동, 근로, 직업은 다 하나님의 소명입니다. 따라서 거리나 공원을 쓰는 환경미화원도 고되고 힘들고 천한 직업이요 노역이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지금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우주의 한 모퉁이를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노동자체가 곧 소명이 되고 하나님의 창조세계 보전을 위한 구원사역 이 된다는 것입니다. 늘 짜증과 불만과 불평으로 일하며 오직 대가와 봉급만을 바라고 마지못해 하는 노동에 는 반드시 하나님의 절구와 공이의 개입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노동과 근로가 저주나 심판이 아니라 축복 과 주님의 소명이 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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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 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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