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1년07월01일 QT - 흑암 중에도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1. 7. 1. 22:56



흑암 중에도


힘든 삶의 여정에서 즐거움을 누리고
자발적인 생산력을 지니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성령충만이다.
어려울 때 어렵고,
좋을 때 좋은 것은 충만한 삶이 아니다.
상황이 어렵든 좋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울 수 있는 것이 성령으로 충만한 삶이다.

-김길 목사의 ‘충만’ 중에서-

삶의 흑암 중에도 주를 찬양할 수 있다면
세상은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를 시험치 못할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고
어둠 가운데 더욱 든든히 서십시오.
흑암 중에 더 큰 은혜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그 사랑을 확신케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어둠의 권세를 이기는 힘,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한결같은 신뢰와 믿음입니다.




내 삶의 열쇠
그 사랑…
작은 마음, 조용한 바람 속
그를 위해 하는 일보다 중요한 건
그와 함께 하는 것

주를 위해 하는 열심이 주를 향한 사랑보다 앞서가지 않길 기도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니니라’ (마가복음 12:30~31)
글쓴이 : 박주원 현재 연극치료, 대안학교 교사 등 활동중
동덕여자 대학원 연극치료학과 재학중
유럽, 이집트, 쿠바, 멕시코 등 사진, 배낭여행 (2001~현재)
도피처 - 잠언 18:9~17
9.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11.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
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13.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14.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15.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16. 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17.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
세상이 너무도 불안정하고 위험천만 합니다. 도처에 복병이고 매사에 함정과 올무가 널렸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불안해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결코 우리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자는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10절)고 합니다. 힘들고 지칠 때 그 이름 속에서 안식을 취할 수도 있고, 원수들에게 쫓길 때는 그 이름 속에 숨을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원래 망대란 대적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높은 곳에 있습니다. 더구나 그 높은 망대가 적의 공격에도 끄떡없을 만큼 견고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의인들의 유일한 <망대>요 도피처입니다.
유사시 그리고 달려가면 반드시 <안전>을 보장받습니다.

재 물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같이 여기느니라>(11절).
의인은 <여호와의 이름>을 견고한 망대로 삼지만 세상의 부자들은 <재물>을 그들의 <견한 성>으로 여깁니다. 재물이야 말로 그 어떤 세상 위기와 환난 가운데서도 자신을 든든히 지켜줄 <높은 성벽>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오로지 <내가 소망을 금에다 두고 순금에게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욥31:24)며 무한한 애정을 보입니다. 그러나 재물이나 순금 보화는 결코 우리의 안전한 도피처가 될 수 없습니다. 어느 시대나 재물을 견고한 성으로, 높은 성벽으로 믿고 산 사람들은 다 패가망신을 면치 못했습니다. 신도시 개발로 막대한 보상금을 받거나 복권 당첨으로 벼락부자가 된 수많은 사람들의 말로는 언제나 비참했습니다.
이는 곧 재물이 결코 우리 삶의 최후 보루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교 만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12절).
놀랍게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교만과 오만을 자기방어와 도피의 기재로 삼고 있습니다.
허약할수록, 약점이 많고 가리고 싶은 치부가 많을수록 견고한 교만의 벽을 쌓아 고의적으로 사람들의 범접을 막으며 자기를 지키려합니다. 그러나 정말 실력이 있고, 내실이 충실한 사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도 부끄러울 게 없는 사람은 겸허하고 겸손합니다. 다시한번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컴플렉스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도피처로 삼는 교만과 오만이야 말로 <멸망의 선봉>이고, 아무것도 거리낄게 없는 사람의 겸손과 겸허야 말로 <존귀의 길잡이>라는 사실을!

송 사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17절).
툭하면 <송사>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너도나도 <송사>를 너무 남발합니다. 교회조차 공동체 내부 문제를 세상 법정으로 가져가는데 아주 익숙해져 있습니다.
다 <송사>를 최후 보루로 삼는 까닭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바울사도가 고린도교회를 통렬하게 책망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하여 이 말을 하노니...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고전6:5-6절).
훗날 <이 세상을 심판하고 천사들까지도>(고전6:3) 심판할 성도들이 도리어 세상의 심판을 받겠다고 다투어 세상법정으로 가는 현실을 개탄하며 준엄하게 꾸짖은 말씀입니다. 세상법정과 송사를 도피처로 삼거나 높은 망대로 여기지 마십시오. 다 어리석고 부질없는 짓입니다.
이 세상에는 그 무엇도 우리의 진정한 도피처가 될 수 없음을 깨달으시고 오직 여호와의 이름만을 견고한 망대로 삼으셔서 오늘부터 시작되는 2011년의 남은 절반을 더욱 안전하게 강건하게 사시는 <의인들>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