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우 정·산업부 차장
일본 주식시장엔 '스탈린 폭락(暴落)'이란 역사가 있다. '블랙 먼데이'(1987년), '리먼 쇼크'(2008년)에 이어 사상 세 번째 폭락 기록이다. 1953년 3월 5일 소련의 스탈린이 사망했다는 뉴스에 일본 주식시장이 폭삭 내려앉은 것이다. 일본 주식시장이 스탈린 사망에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 스탈린 사망은 당시 한반도에서 진행 중이던 6·25전쟁의 종결을 뜻했다. 그것은 일본 경제에 대형 악재였다. 3년 동안 단맛을 보던 '조선특수(朝鮮特需)'가 곧 끝난다는 사실을 뜻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웃나라의 비극을 통해 당시 46억달러의 특수를 누렸다. 금액보다 중요한 것은 죽어가던 수많은 산업과 기업이 단숨에 살아났다는 점이다. 중공업은 미군기를 수리하면서, 섬유업은 미군복을 생산하면서 부활했다. 전자업체 샤프는 사사(社史)에 "조선특수로 다행히 재기할 수 있었다"고 솔직히 기록하고 있다. 지금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도요타자동차 역시 도산 직전에 미군 트럭을 수주하면서 극적으로 살아난 대표적 6·25 수혜 기업에 속한다. 일본은 처음부터 6·25전쟁의 효과에 큰 기대를 걸었다. 작가인 기타 야스토시의 논픽션 '요시다 시게루'에는 요시다 당시 총리가 전쟁 발발 소식을 전해듣고 "하늘의 은혜"라며 불단(佛壇)에 감사 기도를 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일본이 전쟁 특수를 누워서 향유한 것은 아니다. 일본 기업엔 기술력이 있었다. 정부는 특수를 최대한 흡수할 수 있도록 외교 입지를 정립했다. 요시다 총리는 미·소와 동시에 강화(講和)하자는 중립론자를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무리"라고 맹공격하면서 일본을 자유진영에 세웠다. 기업은 '계열(系列)'을 재결집하고 노사분규를 배제했다. 만성 분규 기업이던 도요타의 경우, 6·25전쟁 이후 한 번도 분규를 반복하지 않았다. 일본 전체가 똘똘 뭉쳐 전진한 것이다.
신격호 롯데 회장은 일본의 3·11대지진 직후 일본과 한국을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비유했다고 한다. 일본이 아프면 한국도 아프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관계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을 먹여 살리는 제조업 분야는 지금 일본을 넘어서는 고지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이 분명하다. 이웃나라의 비극을 기뻐해선 안 되지만,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방법은 6·25전쟁 당시의 일본에 있다. 경제외교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기업을 강화하고, 분규를 배제해 파급 효과를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반대로 가는 듯하다. FTA(자유무역협정) 반대론을 요시다처럼 정면돌파할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정부가 기업의 리더십까지 약화시키고 있다. 기업의 잘못은 제도로 고치면 된다. 제도로 할 일을 정치적으로 처리하면 갈등을 유발하고 스스로 역량을 줄이는 것이다. 이 틈을 타 급진세력이 다시 산업의 약한 고리를 끊어내기 시작했다.
일본은 6·25전쟁에서 얻은 이익을 토대로 '진무(神武) 경기'라고 불리는 폭발적 성장을 실현했다. 일본은 이때 강국의 반열에 다시 올랐다. 야속한 역사이지만 경제는 냉정한 게임이다. 한국은 우연히 다가온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고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까. 역량을 결집하면 한국도 한 번쯤 일본에 "야속하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우리 현실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