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010년에 제대로 마침표도 찍지 못한 채 등 떠밀리듯 2011년 아침을 맞았다. 대한민국은 작년 3월 북한의 무법적(無法的)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과 마흔여섯 명 병사를 잃고 그로부터 8개월 후 연평도 기습 포격 앞에서 다시 맨몸을 드러내 보이고 말았다.
북한은 21세기 벌건 대낮에 아비가 아들에게, 그리고 그 아들이 제 아들에게 나라를 물려준 나라다. 김일성의 제1차 '유훈(遺訓)통치'가 15년 이어지더니 이번에는 김정일의 제2차 '유훈통치'시대가 언제 시작될는지 모른다는 말이 돌고 있다. 주민 양식 댈 돈을 핵무기와 미사일 제조에 털어 넣어 허기(虛飢)에 지친 제 백성이 국경을 넘어 남의 나라 땅에서 몸을 팔고 구걸하도록 내몰고 눈썹 하나 까딱 않는다. 국민은 이 나라답지도 않은 나라, 이 핏줄 같지도 않은 핏줄의 행패에 세계 7위의 수출 대국(大國), 세계 13위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이렇게 연거푸 어이없이 당하고 만 현실이 분(憤)하고 허탈하고 부끄러웠다.
대한민국은 2011년 이런 국민의 가슴 위에 나라의 안보를 다시 세워야 한다. 이제 우리 안보는 분단 시대에 자신을 지켜내는 안보를 넘어서서 민족이 하나 되는 통일 시대로 건너가는 안보의 기틀을 닦아나가야 할 때다.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이 한 민족이라는 정체성(正體性)을 지니게 된 이후 처음 겪은 분열의 시기인 후삼국(後三國)시대(892~936년)도 44년 만에 통일을 맞았다. 1945년에 시작된 제2의 분단시대가 벌써 66년째 이어지고 있다. 시작이 있는 것에는 끝도 있기 마련이다. 분단시대의 끝이 아직 멀다면 우리가 가깝게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민족사적 정통성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사명이고, 지난 66년간 형기(刑期) 없는 무기수(無期囚)처럼 징역을 살아온 2400만 북한 동포에게 표시할 수 있는 최고의 동포애이기도 하다.
우리를 지켜내는 안보가 바로 서지 못하면 민족을 하나 되게 만드는 안보는 엄두도 낼 수 없다. 따라서 2011년의 새 안보는 우리 자신을 지키는 안보의 철저한 재점검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김정일의 어뢰 한 발과 김정일의 포대가 연평도를 향해 쏟아부은 포탄은 우리 군의 허점(虛點)과 약점, 정보기관의 비전문성, 외교의 무전략(無戰略)과 무설계(無設計), 정치의 안보 불능증(不能症)과 절망적 당파성, 교육의 무국적성(無國籍性), 언론의 북한에 대한 색맹(色盲)과 색약(色弱)증세, 상류 계층의 무책임성, 사회 구조의 가팔라진 양극화와 분열성, 시민단체의 무시민성(無市民性), 좌파의 구제 불능한 후진성을 낱낱이 드러냈다.
우리 안보를 다시 세우려면 이 가운데서 고칠 수 있는 병과 고칠 수 없는 병을 먼저 가리고, 그 시급성에 따라 당장이라도 치유책을 마련해 실천해야 한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나라를 이끌겠다는 포부를 지닌 사람이라면 나라의 사활적(死活的) 과제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당당하게 밝히고 그 처방전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마땅하다.
지금 한반도 남과 북의 시간은 김정일이 강성대국 원년(元年)으로 삼겠다고 선언한 2012년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 김정일의 핵 선군주의(先軍主義)에 깔린 북한 경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10년 마이너스 성장 시대를 거쳐 그때쯤이면 최악·최저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김정일은 이미 '주민들에게 이밥과 고깃국을 먹여주겠다'던 김일성의 유훈을 실천할 의욕조차 놓아버린 듯하다. 김정일이 2012년 강성대국 원년 선포식에서 굶주린 북한 주민에게 보여줄 강성대국의 증거는 핵무기와 미사일과 방사포와 탱크의 행렬뿐이다.
바로 그해 대한민국은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우리의 고치기 어려운 병(病)인 '안보 포퓰리즘' '복지 포퓰리즘' '대북 편향 포퓰리즘' '교육 포퓰리즘'이 그때 거리마다 유세장마다 흘러넘칠 게 훤히 보인다. 김정일은 남쪽의 이런 모습을 강성대국에 보내는 남쪽의 성원 박수라고 둘러대며 북한 주민을 속이려 들 것이다. 그 결정적 시간에 이 땅의 정치를 심판해 옥석(玉石)을 가려낼 힘은 국민의 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실질적 권력행사가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되는 이상 대한민국 안보의 최초 책임과 최종 책임도 대통령 어깨 위로 떨어진다. 재임 기간 동안의 유한(有限)책임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다음 시대로도 이어지는 무한(無限)책임의 자리다. 이런 대통령을 향해 군과 대북정보기관의 환골탈태(換骨奪胎)는 새삼 다시 주문할 필요조차 없다.
2011년 대통령이 국가 안보에 대비해 갖춰야 할 제1 덕목(德目)은 한반도와 그 주변 동아시아를 둘러싼 강대국 전략의 바닥 흐름, 표면 흐름, 성층권(成層圈) 흐름의 방향과 속도 그리고 각 흐름 간의 상호작용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다. 국민 역시 이 기준으로 내년 12월 19일에 다음 5년을 맡길 새로운 지도자를 골라야 하고 올 한 해 그런 눈으로 후보들의 점수를 채점해 나가야 한다.
한반도에 손을 얹고 있는 각국의 군사비(2010년 기준)는 미국 6610억달러, 중국 1000억~1500억달러, 일본 510억달러, 러시아 530억달러, 한국 240억달러, 북한 55억달러로 세계 총 군사비 1조5300억달러의 3분의 2에 육박한다. 중동이 아니라 한반도가 세계의 화약고(火藥庫)다. 각국 영향력의 성쇠(盛衰)가 미묘하게 진행되고 있는 곳이 한반도 주변이기도 하다. 미국은 여전히 압도적 군사력으로 패권적(覇權的) 지위를 지키고 있지만 그 인력(引力)은 완만하게 저하되고 있고, 미국은 이에 따른 부족 부분을 미·일동맹 강화에서 보충하고 있다. 한·미동맹도 여기에 일조(一助)한다고 봐야 한다.
급속하게 부상(浮上)하고 있는 중국은 미국 국력과 지위의 우위(優位)를 인정하면서도 미·일동맹 강화에 대해 현재와 미래의 중국을 겨냥한 포위망 형성이라는 의심스런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테러·금융위기 문제에선 미국과 협조하고 한반도 문제에선 미국과 갈등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 국력의 상대적 저하 속도와 중국 국력의 부상 속도도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미국은 천안함과 연평도사태를 통해 대한민국 안보의 든든한 우군(友軍)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는가 하면 중국은 한반도 안정에 대해선 미국과 부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한반도 통일에 관해 반드시 우호적이지만은 않으리라는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이런 중국의 이중적(二重的) 태도 뒤에는 미·일동맹 강화에 대응하는 전략적 견제 수단으로 북한을 활용하려는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 북한과 안보 조약을 맺고 있는 세계에 단 하나뿐인 나라이면서도 92년 한·중 수교(修交)와 97년 황장엽씨 망명을 가능하게 했던 당시와 달리 북한을 부담만 안겨주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보는 시각에서 전략적 재산으로 활용하려는 쪽으로 중국의 생각이 단기적·부분적으로 옮아가고 있는 표시일지도 모른다.
한 국가의 안보는 현재의 정확한 정세 판단과 함께 미래의 정세 변동에 대응할 유연성을 열어놓을 수 있을 때 가능한 법이다. 미래를 현재로 착각해 경박하게 서둘거나 현재에 고개를 파묻고 미래의 변화를 놓치면 언젠가는 안보적 재앙(災殃)을 불러오고 만다. 앞으로 10년 대한민국 안보의 최대 숙제는 한반도 안정의 기본축(軸)인 한·미동맹의 울타리를 더욱 튼튼하게 치면서 중국을 향한 문도 같이 열어둘 지혜를 어디서 어떻게 찾아내느냐는 것이다. 대한민국엔 선거가 없는 올 한 해, 한반도 정세를 더 높은 곳에서 깊고 넓고 멀리 내다보며 오늘의 안보와 내일의 통일에 대비하는 통찰력을 갖춘 외교의 힘을 길러내는 것보다 절실한 일이 없다. 우리가 나라의 안보를 다시 세우고 내일의 통일로 가는 길을 열어나가는 것도 그 바탕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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