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려라
요지경(瑤池鏡)이란 ‘상자 앞면에 확대경을 달고 그 안에 여러 그림을 넣어서 들여다보게 한 장치’인데, 극(劇)과 같이 줄거리가 있는 여러 장면의 그림이나 풍경을 순서대로 보여 주면서 그에 대한 설명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영화가 나오기 전에 유행했었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속이다 /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 / 야야 야들아 내 말 좀 들어라 /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 짜가가 판친다 / 인생 살면 칠팔십 살 / 화살같이 속히 간다 / 정신 차려라 요지경에 빠진다···’
‘이판사판 춤’과 맞아떨어져 한때 스타덤에 올랐던 탤런트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이란 노래 가사가 요즘 들어 필자(筆者)에게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왜냐 하면,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 짜가가 판친다’고 ‘가짜’를 ‘짜가’로 바꾼 가사의 해학도 해학이지만, 그보다는 이미 널리 알려진 ‘폭탄주’와 ‘보온병 포탄’발언들을 보면서 그 ‘짜가’가 꼭이면 물건만이 아니라 사람에도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있은 다음날인 지난달 11월 24일 연평도를 방문한 민주당 송영길 인천시장이 북한의 포격으로 피해를 입은 구멍가게 앞에서 포탄 화염에 그슬린 소주병을 손에 들고 “이거는 소주가 그대로 들어 있네.”라며, 소줏병을 보고 “어, 이거 진짜 폭탄주네!”라는 농담을 했다. 그것도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포격을 받아 가옥(家屋) 파손은 물론, 해병 2명과 민간인 2명 등 4명이 목숨을 잃었고, 주민들은 황급히 몸만 섬을 빠져나와 인천의 찜질방에서 비통(悲痛)해 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들 삶의 터전이던 그 피격(被擊) 현장을 위로차 찾아간 시장이 그런 농담을 했다 하니 필자(筆者)는 그 정신 상태가 심히 의심스러웠다. 그것은 그 폐허(廢墟)를 보며 시장으로서 결코 할 수 없는 농담이었고, 해서는 안 될 농담이었기에 그야말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같은 사실을 두고 여당인 한나라당은 “적에게 폭격 당한 현장에서 정치쇼나 하고 농담이나 던지는 송영길 시장은 당장 사퇴하라.”고 거세게 비판을 했고, 배은희 대변인은 “송 시장은 본인의 아들, 가족, 친척이 무참히 폭격 당했다면 이런 농담을 할 수 있었겠는가?”라며, “적에게 무참한 공격을 받은 처참한 현장에서 했다는 발언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같은 날 연평도를 찾은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북한의 포격으로 부서진 민가를 둘러보다가 바닥에서 폭염에 그슬린 쇠로 된 재질의 통 두 개를 집어 들고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이라고 했다. 곁에 있던 안형환 대변인이 “몇 밀리(mm) 포입니까?”라고 묻자, 황진하 의원은 “이게 76mm 곡사포 같고…”라고 했다. 안 대변인이 “아, 이게 곡사포구나.”라고 하자, 황 의원은 다시 큰 통을 가리키며 “이것은 아마 122mm 방사포?”라고 했다. 촬영 기자가 자세히 촬영하는데 이 통들의 그슬음을 벗기며 살펴보던 한 관계자가 “이게, 상표 붙은 거 보니까 포탄 아닌데…”하더니 “이게 포탄 아니에요. 보온병!”이라고 했다. 안 대표가 포탄이라고 한 것은 불에 그슬린 2개 크고 작은 보온병이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는 없다.
안 대표는 ‘행불’로 병역 미필자이니 모르는 게 지극히 정상인데 아는 척한 게 문제였다. 그런데 안 대변인은 예비역 공군 중위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한심스러웠던 것은 보온병과 포탄을 구분도 못 하고 상세히 설명까지 한 황 의원은 장성 출신으로 그것도 5군단 포병여단 단장까지 지낸 쓰리스타라니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필자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역시 이번에는 민주당 차영 대변인이 논평을 내고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분이니 착각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연평도에서 ‘안보 쇼’를 벌이려다 생긴 해프닝이니 더욱 무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꼬집었고,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지난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의 ‘보온평 포탄’ 발언을 비꼬며 “나는 보온병 안 가지고 다닌다.”고 그 또한 농담으로 최고위원회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코미디도 이런 저질 코미디는 없을 텐데, 그것도 여야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 안보 대책은 강구하지 않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듯 ‘할 수 없는 농담’과 ‘있을 수 없는 무지(無知)’를 두고 서로 비방하며, 말장난과 변명과 자기 편 감싸기로 일관하고 있으니 국민들이 어찌 정치인들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또 하나 MBC 취재진 30여 명이 지난달 28일 밤 7시부터 밤 11시까지 군 관리 식당인 연평도 동쪽 해병대 충민회관에서 소란을 피우며 술을 마셔 군 관리병이 제지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왔고, 이에 대해 지난 달 30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는 “취재 현장에서 회식 도중 술을 마신 점에 대해 연평도민과 군관계자, 시청자 여러분들께 고개 숙여 사과한다.”면서도, “지난 일요일 밤 연평도 군부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MBC 취재팀이 회식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등 소란을 피웠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와 관련해 본사가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그런 사실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알려드린다.”고 역시 정치인들처럼 사과 아닌 변명과 자기 식구 감싸기를 했다. 그런 피폭 현장에서 회식이라니… 그 사실만으로도 MBC는 할 말이 있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이 세 사건을 보면, 농담 좋아하는 인천시장이나 민주당 원내대표는 현재 북한의 전쟁 도발 위협을 받고 있는 국가 안보 위기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무개념 정치인으로 보였고, 한나라당 대표나 국회의원은 국방의 화력에 대한 무지를 여실히 드러내었으며, MBC는 매스컴 특유의 오만을 보임으로써 하나같이 신뢰(信賴)를 잃고 있다.
이들이 바로 ‘짜가 잘난 사람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비단 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정치인들과 매스컴들이 이러하니 국민들의 애국심(愛國心)이 불신(不信)하며 분노(憤怒)하게 되는 것이다.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살고 있는 국민들도 이제 정신 차리고 철저한 안보 의식으로 무장하여 하나 되어야 하겠고,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사는 정치인들과 매스컴들도 이제는 정신 차리고 ‘짜가’가 아닌 진정 대한민국의 국가 안보와 국민을 생각하도록 해야 하겠다.
‘야야 야들아 내 말 좀 들어라 ··· 정신 차려라!’
(시인, 예술촌 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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