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잊혀 진 기갑부대의 명장 [ 4 ]
그 이름, 클라이스트 기갑집단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였을 때 독일 기갑부대의 실질적인 창설자인 구데리안은 그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놓은 기갑부대의 실전 결과를 측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비록 많은 수의 전차사단이 창설되어 전쟁에 데뷔하였지만 보병부대에 속한 사단 급 규모의 기갑부대 단독으로 적의 종심을 깊숙이 타격하는 중추전력으로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폴란드전역결과 기갑부대의 규모를 더욱 크게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
구데리안은 제3전차사단, 제2차량화보병사단, 제20차량화보병사단과 약간의 직할부대로 이뤄진 제19장갑군단을 지휘하였는데, 이 부대는 실전에 데뷔한 최초의 군단 급의 대규모 기계화부대였습니다. 비록 군부 내에서 많은 찬반격론 끝에 시험적으로 창설되어 전선에 나서게 되었고 애당초 구상하던 규모보다 작았지만 제19장갑군단은 놀라운 돌파력을 실전에서 보여주었습니다.
[ 장난감같은 1호전차로 이루어진 제19장갑군단은 놀라운 돌파를 선보였습니다 ]
최초 폴란드침공을 위해 입안 된 백색작전(Fall Weiss)에서 제19장갑군단은 비스툴라(Vistula)강을 도강하여 동프로이센에 위치한 제3군과 연결함으로써 단찌히(Dazig)를 고립시키는 임무를 맡기로 하였는데, 놀라운 기동력을 선보이며 애초 목표를 초과하여 폴란드의 한가운데인 브레스트(Brest)지역으로 쾌속 남하 돌격하여 일직선으로 치고 올라오던 남부집단군과 연결하였는데 그 진격거리가 여타 보병군단의 3배 이상은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 제19장갑군단은 북부집단군의 선봉대로 단찌히를 제압하였습니다 ]
1939년 9월 17일, 부그(Bug)강변에서 남진하던 제19장갑군단과 연결된 부대가 바로 클라이스트가 지휘하던 제22군단이었습니다. 제22군단은 르포프(Levov)를 점령하기 위해 부그강을 향해 북상하던 중이었는데 북에서 폴란드를 가로 질러 내려온 제19장갑군단과 조우하여 포위를 완성하였습니다. 이때 놀라운 기동력을 선보인 제19장갑군단의 활약을 목전에서 지켜본 클라이스트는 기갑부대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고 장차전의 주역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 제19장갑군단과 클라이스트의 제22군단은 부그강변에서 조우합니다 ]
폴란드를 소련과 손쉽게 나누어 먹은 독일은 불과 4주도 안되어 전역을 일단락 짖고 서부전선에 대한 견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비록 주력군대를 동원하여 열전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프랑스나 영국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였을 때 선전포고를 한 엄연한 교전국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영불연합군이 말로만 전쟁을 하고 행동으로는 나서지를 않자 히틀러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지역에 설치한 서부방벽(Siegfreid line)을 순찰하는 독일군 ]
이상한 패전을 당한 제1차 대전의 억울함을 설욕하기 위해서라도 독일은 프랑스를 반드시 제압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제 전운은 서부유럽에 드리워지게 되었고 히틀러는 프랑스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라고 군부에 지시하였습니다. 비록 프랑스가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고도 막상 행동에는 옮기지 않았을 만큼 몸을 사리고 있었지만 프랑스는 당대의 육군강국이었고 폴란드처럼 독일이 만만하게 볼만한 상대도 아니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프랑스는 유럽 최강의 육군강국으로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
결국 프랑스와의 싸움은 제1차 대전 같은 전통적인 전술로 이길 가능성은 없었고 더구나 마지노선처럼 대부분의 진격로는 요새화되어 있어 돌파도 어려워 보였습니다. 결국 격론 끝에 만슈타인(Erich von Manstein)이 제안한 낫질작전(Sichelschnitt)이 침공방법으로 채택되었는데 강력한 돌파력을 가진 주력을 삼림지대로 우회시켜 영불연합군을 절단하는 것이 작전개요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폴란드전에서 그 가능성을 선보였던 기갑부대가 전선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 클라이스트 기갑집단의 부대표지 ]
1940년 OKH(독일육군최고사령부)가 대 프랑스전의 주공으로 정한 A집단군은 제4군, 제12군, 제16군으로 편제되어있었는데 이와 별개로 아르덴의 고원지대를 돌파하여 선봉부대 역할을 할 강력한 새로운 야전군 급 기갑부대가 조직되고 지휘관으로 1940년 6월 상급대장으로 승진한 클라이스트가 취임합니다. 바로 최초의 야전군 급 기갑부대인 클라이스트 기갑집단(Panzer Group Kleist)이 역사에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출처] 잊혀 진 기갑부대의 명장 [ 4 ]|작성자 au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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