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존여비"에 대한 내용이라던가 "장유유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사회적인 변화에 이야기를 먼저 말씀드리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사회는 원래 모계사회 였습니다. 무사사회가 시작된것이 12세기말이였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는 왕족 귀족들에 사회였습니다. 조금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은 상당히 모계적인 사회.. 여성이 중심이 되어있는 사회였습니다. 한국하고도 비슷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결혼제도는 이런한 제도가 많이 시행되었는데.. 일본에서는 남자가 여성의 방을 방문합니다. 이것을 3일간 이여집니다. 그러나 여성이 남자가 싫으면 거절할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결혼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3일간 여성의 방을 다니면서 성립되면요 그 남자는 적어도 몇년간은 그 여성의 집에 노동력으로 여성의 집에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왕족이나 귀족들도 남자가 여성의 집을 방문하는데.. 그러나 동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다녀오는 남자가 싫다.. 그러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놓을수 있었습니다.
이런면에서 무사사회 이전에 일본사회는 여러가지 형태가 상당히 달랐다라고 말씀드릴수가 있는거죠. 그리고 무사사회가 된 이후에는 장군이 되는 이는 다 남자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군의 어머니라고 해도
어머니 이상의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어머니가 부하들한테 명령을 하거나 그런것 자체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왕 위에 효의 대상이 되는 왕의 어머니가 오히려 왕에게 여러가지 권의도 하고 가장 높은 어른이라는 위치에서 말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부분이 상당히 다른 부분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한국에 어머니는 누구누구의 어머니로 많이 기억되지만 일본에서는 누구누구의 아내로 많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런면에서도 상당히 다르다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효보다는 충 이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것이였습니다. 이것이 사실상 중요한 것이 된것은 근대화가 된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에서 근대화 이전에 단계에서는 장군이 최고에 권력자 였으나 메이지시대라는 근대화 와서 일본 왕. 천황이 최고의 권력자가 된 것입니다. 천황은 일본에 아버지 입장에 섰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효라는 것이 국가에 대한 충과 마찬가지 내용이 된 것이였죠.
천황에 대한 효가 결국은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충으로 완전히 연결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자기 집에 부모님에 대한 효보다 일본천황에 대한 효로써에 충 이것을 상당히 많이 중요시 하는 그런 사회가 되었다라고 할수 있죠. 그 이전까지는 한국 조선의 성리학을 받아드렸기 때문에 크게 사상적인 차이는 없었다라고 할 수 있었는데요. 근대화된 이후에 일본과 한국의 유교의 형태가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라고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장례의식에 대해 비교해 볼까 합니다. 특히 요즘 화장하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원래 유교 사상에서는 화장을 안 하는 것 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혼이 하늘로 올라간 후에도 "백"이라는 또하나의 영혼이 육체에 남아있다는 것이 유교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이 하늘에서 돌아올수 있는 그러한 육체를 그대로 남기는 것입니다. 혹시 혼이 돌아와 백하고 하나가 될때 다시한번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 유교사상이거든요. 화장시키는 것은 불교사상에서 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혼은 있지만 백은 인정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육체를 그대로 태워버려서 뼈를 가루로 만들어서 뿌려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불교사상이 강했기 때문에 화장을 오래전부터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도 유교사상이 조금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화장을 시켜서 뼈를 가루로 만들어서 뿌리지는 않았습니다.
유교적인 사상의 흔적으로 볼수 있는데요. 유골을 일단 남겼다는 부분입니다. 한국이 요즘에 일본 스타일을 조금 하고 있으지만 사상적으로 볼때 유교적인 내용이 일본하고 한국에 있다 라는 것을 말씀드릴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