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미지근한 믿음

鶴山 徐 仁 2010. 10. 2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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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근한 믿음


형식적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자여,
당신은 미지근하여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안주하고 있구나.
덥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상태를 끝내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라.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조셉 얼라인의 ‘돌이켜 회개하라’ 중에서-

미지근한 믿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미지근한 믿음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거룩함으로 자신을 포장할수록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모두 외면 받게 됩니다.
이제 미지근한 신앙인의 모습을 벗어나
우리 안에 있는 참된 하나님의 영으로 승부하십시오.
세상의 법칙에 휘둘리지 않는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의 능력으로
당당히 싸워 승리하십시오.
가식을 벗고 뜨거운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주님이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며
결국 세상은 우리를 통해 주의 살아계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영혼의 점자 보도블록
맹인들에게 점자 보도블록은 바른 길을 알려 줍니다
육체의 눈이 보이지 않지만 그것을 믿고 걸을 수 있습니다

육체의 길은 자신의 눈으로도 걸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길은 육체의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당신의 영혼을 바르게 인도하시는
영혼의 점자 보도블록이신 성령님께 늘 마음을 두십시요.
글쓴이 : 임효식 2002년 좋은생각 디지털 사진전 입상
2007년 조선일보 사이버 신춘문예 디카에세이 부문 입상
다음 카페 '♥독서클럽♥ 책으로만나는세상' 서평단 활동중
구원의 하나님이여! - 시편 79:1~13
1.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2.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3.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4.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 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 거리가 되었나이다
5.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6. 주를 알지 아니하는 민족들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들에게 주의 노를 쏟으소서
7. 그들이 야곱을 삼키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함이니이다
8. 우리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긍휼로 우리를 속히 영접하소서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
9.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10. 이방 나라들이 어찌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나이까 주의 종들이 피 흘림에 대한 복수를 우리의 목전에서 이방 나라에게 보여 주소서
11. 갇힌 자의 탄식을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해진 자도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12.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
13.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1-3절).
BC 586년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이 유다를 침공해 성전을 파괴하고 기물을 탈취하고 불을 질렀으며(렘 52:13-23), 수많은 제사장들을 살해하고 나라의 지도자들을 다 포로로 잡아가는 초유의 비극이 벌어졌습니다(왕하 25:1-7). 그러나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다 유다가 범한 죄악의 징벌이었으며 선지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경고되고 예언되어온 심판의 결과였습니다(렘 9:1, 사 13:22).

우리를 도우소서!<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9절).
생각해 보십시오. 무자비한 외적이 침략해서 예루살렘을 초토화하고 하나님의 성전까지 약탈하고 방화하고 수많은 주의 종들을 살해하여 독수리의 먹이가 되게 하고 성도들을 처단하여 짐승의 밥이 되게 하는 참혹한 상황에서 그 무엇이 도움이 되고 그 누가 과연 그들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시인은 오직 주께 <우리를 도와 달라>며 부르짖고 있습니다. <주를 알지 아니하는 민족들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6절)가 <야곱을 삼키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고 있다>(7절)며 도와 달라고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최후의 한 분은 오직 주님 뿐이십니다. 부르짖으십시오! 주님만이 우리에게 도움을 베푸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1).

우리를 건지소서!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1절). 지금 유다는 급류에 휘말려 죽음의 바다로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누가 과연 그들을 저 소용돌이치는 탁류에서 건져낼 수 있을까요? 오직 풍랑을 딛고 물 위를 걸어오신 주님 한 분뿐이십니다. 물에 빠진 자는 결코 물에 빠진 자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원죄의 유전 질서를 피해 성령으로 잉태 되사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게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실 수 있는 이유입니다. 소경은 소경을 인도할 수 없습니다. 죄인은 죄인을 건질 수 없습니다. 죄 없으신 주님 만이 우리를 구해 내실 수 있습니다. 얼마나 옳은 표현입니까?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소서!>

우리를 사하소서!
<… 우리 죄를 사하소서>(9절).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은 죄에 대한 응분의 대가입니다. 절대 공의로우시고 공명정대하신 하나님은 <의>도 어김없이 보상하시지만 <죄>도 가차없이 응징하십니다. 따라서 죄를 지은 경우에는 반드시 그 죄를 치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구약시대에는 대속의 제물을 드리든가 아니면 죄값에 상당하는 징계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대신 죄의 보응을 다 받으셨으므로 우리는 단지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죄와 구원의 문제가 일거에 다 해결되는 은혜의 시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나를 사하소서!>가 아니라 <사하셨음을 믿나이다!> 하면 족합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며 주의 성호를 찬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할렐루야!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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