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차학봉 산업부 차장대우
일본 기업들의 비명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달러에 90엔대였던 환율이 순식간에 82엔대까지 치솟으면서 기업들의 수출 채산성이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자존심'이던 소니가 삼성에 밀린 데 이어 이제 자동차산업까지 경쟁력을 잃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일본 정부는 하루에 2조엔을 투입, 엔고 저지에 나섰다. 금리를 다시 제로 수준으로 낮추는 등 긴급 대책을 연이어 발표했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다. 장기 디플레이션, 노인 대국, 잦은 총리 교체 등으로 '몰락한 선진국'이라는 비아냥을 받던 일본 통화 가치가 갑자기 급등하는 이유는 뭘까. 엔화 가치가 치솟는 것은 달러보다 엔화를 '안전 자산'으로 보고 엔을 사들이는 기업과 투자가들이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택 판매 감소, 실업자 증가 등 미국 경제에 부정적인 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엔화 가치가 치솟는다. 진정한 엔고 대책은 미국의 경기 회복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미국 음모론'도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이 수출을 늘리기 위해 달러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바람에 엔화가 치솟는다는 것.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기초 체력을 들여다보면 음모론이 끼어들 여지는 많지 않다. '취업 빙하기'라고 아우성이지만 일본의 실업률은 5.2%, 미국은 9.6%이다. 경상수지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미국은 작년 4200억달러의 적자를 낸 데 반해 일본은 13조엔이 넘는 흑자를 냈다. 일본은 여전히 1조달러의 외환보유고를 지닌 거대 채권국이다.
미국은 주택 버블로 인한 장기 침체 우려가 여전하지만 일본은 20년간 부동산 가격이 하락, 버블의 여지조차 없다. 그래서 요즘 같은 불확실성 시대에는 일본 경제가 미국 경제보다 훨씬 강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달러 약세, 엔화 강세'는 금융위기를 계기로 '부채 대국 미국'과 '외환 대국 일본'에 대한 재발견이 근본적인 원인일 수 있다.
'한국 기업만도 못한 일본 기업'이라는 한탄이 열도에 퍼지고 있지만 일본 기업 경쟁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엔화 가치의 급등으로 기업들이 적자 타령을 하고 있지만 1달러당 1엔이 오를 때마다 오히려 무역수지는 1000억엔이 증가한다는 분석도 있다. 엔고로 수출은 줄지만 그만큼 원자재 등의 수입 부담이 줄기 때문이다. 또 일본은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1.4%에 불과, 한국(43%)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환율 변동에 강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더군다나 일본의 수출품은 가격 경쟁에 덜 민감한 독점형 핵심 부품들이 많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완제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뿐만 아니라 제조 장비도 상당 부분 일본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수출이 늘수록 일본의 부품 수출이 급증한다. 우리나라의 수출이 1% 증가할 때 대일 수입도 0.96% 증가한다는 분석도 있다. 그래서 삼성전자의 수출이 늘수록 일본 부품기업의 흑자도 급증한다.
환율 탓에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치면서도 일본 기업들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엔고를 활용, 해외 기업 인수와 해외 자원 사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생산기지 통폐합 등 구조조정도 본격화하고 있다. 엔고 덕분에 수출 경쟁력이 좋아졌다고 한국 기업들이 환호하기에는 일본 기업은 여전히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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