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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철진의 山房閒筆 / 추석(秋夕)과 한가위(대구일보, 2010.9.20.월)

鶴山 徐 仁 2010. 9. 20. 10:53



추석(秋夕)과 한가위




모레가 음력 팔월 보름, 추석(秋夕)·중추절(仲秋節)·가배절(嘉俳節)·가위·가윗날 등으로 불려지는 한가위다.
그런데 추석(秋夕)·중추절(仲秋節)은 중국 한자어에서 나온 말로서, ‘추석(秋夕)’은 중국 유가(儒家) 경전인 오경(五經) 중, 「예기(禮記)」에 나오는 ‘춘조일 추석월(春朝日 秋夕月)’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중추절(仲秋節)은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仲秋), 종추(終秋)로 나눌 때 가운데에 해당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라 하겠다.

‘추석(秋夕)’의 순수한 우리말은 한가위·가위·가윗날이다. ‘한가위’의 ‘한’은 ‘큰[大]’의 뜻이며 ‘가위’는 ‘가배’에서 유래하여 ‘가외→가위’로 변천해 온 말이다.
이 ‘한가위’의 유래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신라 제3대 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나오는 다음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왕이 6부를 정한 다음 한가운데를 갈라 둘로 나누고서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기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끼리끼리 편을 지어 가을 7월 기망(旣望;음력 열엿새 날)부터 날마다 일찌감치 대부(大部)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고 한밤중에 파하되, 8월 15일이 되면 그 성적의 다소(多少)를 살펴 진편이 주식(酒食)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도록 하였다. 그날 밤에는 가무(歌舞)와 온갖 놀음놀이가 벌어졌다. 그것을 가배(嘉俳)라 일렀다. 그때 진편에서 한 여자가 나와 춤추고 탄식하며 회소회소(會蘇會蘇;모이는 뜻)라고 했는데 그 소리가 애절하고 청아하였다. 뒷사람이 그 소리로 인하여 노래를 짓고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

또한 중국의 「수서 열전(隨書列傳)」 <동이전(東夷傳)> 신라 조에도 ‘음력 8월 15일이면 왕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쏘게 하였으며 잘 쏜 자에게는 상으로 말이나 포목을 주었다.’라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 이 한가위는 이미 신라 초부터 비롯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추석(秋夕)’을 ‘한가위’라는 순수한 우리말 이름으로 부르도록 해야 하겠다.

설·한식·단오·추석 등 우리나라의 4대 명절 중에서도 이 한가위는 양력을 사용하고 신정이 생기면서부터 우리 겨레 최대의 명절이 되었다. 이날에는 모두 고향을 찾아가 한복으로 곱게 차려 입고 햅쌀로 빚은 송편과 새로 수확한 여러 가지 햇과일을 마련하여 일년 농사의 수확(收穫)에 감사하고,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다례(茶禮)를 지내고 성묘(省墓)를 다닌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못 만났던 일가친척은 물론, 고향의 이웃들과도 따뜻한 정을 나누고, 지방에 따라서는 소싸움·길쌈·강강술래·달맞이·농악 등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민속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일상이 생존을 위한 전장(戰場)으로 변해 버린 현실과 그로 인해 각박해진 인심(人心)과 전쟁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교통난의 탓도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핵가족화로 인한 효(孝) 사상의 쇠퇴로 조상을 모시는 다례는 물론, 성묘 제수조차도 정성 없이 대행업체에 맡겨 돈으로 해결하려 들거나 아예 벌초도 하지 않고 조상의 묘를 묵혀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설령 고향을 찾아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는 우리 속담처럼, 내려와서 부모님 뵙고 다례(茶禮) 지내고 성묘(省墓)하고 돌아가기 바쁘니, 어느 겨를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한 그 한가위 달 같은 너그럽고 풍성한 마음의 ‘여유(餘裕)’를 가질 수 있으랴. 어디 그뿐인가.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 옥도끼로 찍어내어 금도끼로 다듬어서 /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 천년만년 살고지고 천년만년 살고지고’
어릴 때부터 꿈 키우며 부르던 이 정겨운 전래 동요도 이제는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필자는 늘 한가위만 되면 이 동요를 떠올리며, 미국이 발사한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케네디 우주센터를 이륙한 지 나흘만인 1969년 7월 20일 달에 착륙하여 선장 닐.A.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 사라져 버린 내 푸르던 꿈을 생각하게 된다.
달에는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당 나라 시성 이백(李白)이 놀았다고 믿으며 살아온 동화(童話) 같은 꿈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린 것은 과학이 이룩한 인간 승리가 아니라 과학이 가져온 인간의 패배였고, 인간 정신에 있어서 너무나도 큰 아름다운 꿈의 상실(喪失)이었다.
때문인가. 요즘은 한가위가 되어 하늘 가득 둥글게 빛나는 환한 한가위 달을 봐도 그리 기쁜 줄을 모르게 되다 보니 지어지는 글에도 그림자가 깃드는 것을 숨길 수 없다.

가윗날 달 둥글어 / 사랑도 눈물로 가멸다 // 귓전 스치는 바람에도 / 더욱 고향 그리운 오늘 // 산 이와 죽은 이 만나 / 술잔에 핏줄의 정을 나눈다 // 둥글면 이울고 / 이울면 둥그는 // 가배 달 같은 우리 삶 // 그림자 차마 그래 서럽다 // (졸시 ‘한가위’ 전문)

(시인, 예술촌 촌장)

출처 : 경대사대 부중고1215회 동기회
글쓴이 : 村長(김철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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