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과 세월] "우리집은 세계인의 집, 외국인 항상 환영" | |
| |
| |
(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 )
|
이종운 전 영남대 생물학과 교수(66)는 ‘교수촌’이라고 불리는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의 한 주택에 산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가인데다 주변에 눈에 띌만한 건물도 없어서 모르는 사람은 ‘설명’만으로 찾아오기 어려운 집이다. 그럼에도 이 집에는 외국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간격을 멀리 잡는다고 해도 한 달에 한번 이상은 손님들이 방문한다. 손님들 중 상당수는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씩 묵어간다.
손님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하면 5개 국어가 난무한다. 다른 언어,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의 ‘수다’는 끝없이 이어지지만 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언어가 좀 서툴러도 손짓 발짓이 있고, 한 두 개 언어를 다리 삼아 거치다 보면 모두 알아듣는다. |
석류나무, 감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 등 마당에서 자라는 이십 여 그루 나무도 외국인들에게는 감탄의 대상이다. 그들 나라에는 없거나 보기 힘든 나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종운 교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학자, 음악인, 관광객, 사업가, 군인 등 직업도 다양하고, 학술대회, 관광, 친교 등 한국 방문 목적도 다양하다.
처음 방문한 사람이든, 종종 찾아오는 사람이든 한번 묵어간 사람들은 이종운 교수 부부와 친구가 된다. 집에 머무는 동안 전국 각지의 역사와 문화 전통이 배어 있는 장소와 한국의 아름다운 강산을 함께 구경한다. 그렇게 다녀간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이종운 교수 부부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그런 일이 이어지다 보니 그 외국인의 지인들 역시 한국을 방문할 때 이종운 교수 집을 방문하고 싶어 한다. 이 집에 외국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이유다.
이종운 교수는 스스로 ‘한국 홍보대사’를 자처한다. 몸은 한국에 머물 때가 많지만 생각은 언제나 세계를 떠돌며, 세계인과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모두 세계인이며, 세계인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인 모두와 친구가 될 때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고, 더 잘 살 수 있고, 더 안전하다는 것이다.
1996년 이종운 교수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생태학회’에 참석한 일이 있다. 논문 발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동남아계로 보이는 한 남자가 옆자리에 앉더니 불쑥 ‘당신 코리안인가?’라고 물었다.
“그렇소만?”
“나는 한국인을 싫어한다.”
그는 대뜸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참 희한한 사람도 다 있다, 싶었다. 괘씸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논문 발표준비를 하느라 이유를 따져 물어볼 틈도 없었다. 논문 발표를 마치고 식당에서 또 그 사람을 만나게 됐다.
“당신은 한국인인 내게 첫 인사가 한국인이 싫다는 거냐?”
“그래, 싫다. 너희는 미국과 친하니까 싫다.”
“무슬림인가?”
“그렇다.”
이종운 교수는 웃으며 그 친구와 대화를 이어갔다.
“당신은 앞으로 친구가 필요한가, 적이 필요한가?”
“그야 물론 친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왜 나를 적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좀 머쓱했던 그 방글라데시 교수는 우물쭈물했다. 그 뒤로 일주일 동안 이종운 교수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그 교수와 자주 만났다. 조금씩 친해지자 그는 이것저것 이종운 교수를 도와주었다. 그렇게 친구가 됐고, 그는 크리스마스 때면 눈이 펑펑 쏟아지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서 한국으로 보내주었다. 눈이 내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도 챙기지 않는 방글라데시에서 말이다.
“마음을 열면 세계인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소한 이유로 마음을 닫으면 적이 됩니다. 친구가 될 때 우리는 모두 안전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이종운 교수가 외국인을 집으로 자주 초대하는 것은 물론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가지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 이 교수와 그의 부인인 안추자 교수는 젊은 시절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했다.
“유학 시절 아내와 나는 모두 장학금을 받아 학교에 다녔어요. 하지만 생활비는 늘 쪼들렸지요. 우리나라는 가난했고, 당시 유학 생활은 요즘과는 비교할 수 없었어요. 그때 오스트리아 현지인이 아무런 조건도 없이 다락방을 내어 주었어요. 결혼하기 전이었는데 아내는 그 집에서 3년 동안 방을 공짜로 얻어 썼지요. 그 사람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유학 생활이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이종운 교수는 그렇게 오스트리아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었고, 오스트리아와 그 나라 사람들을 좋아하게 됐다고 말한다.
“내게 오스트리아는 제 2의 고향입니다.”
오스트리아라는 나라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아름다울 리 없다. 그 나라에도 흠이 있고, 좋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종운 교수 부부가 만났던 사람들은 아름다웠다. 그 덕분에 그들 부부에게 오스트리아는 멋진 나라로 각인됐다. 그것이 이종운 교수가 외국인을 초대하고, 그들에게 아름다운 한국, 멋진 한국인을 보여주는 이유다.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에게는 한국의 불교 문화와 유교 문화, 박물관 등을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아름다운 알프스 산을 끼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2천 개에 이르는 남해의 섬들을 보여주지요. 그들에게 섬은 낯설고 낭만적이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는 알프스를 동경하지만 그들은 우리나라 남해의 섬을 동경합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자동차를 직접 운전할 기회도 만들어 주는데, 한번 한국 자동차를 운전해본 사람은 그 매력을 잊지 못합니다.”
방문객의 직업과 국적에 따라, 문화권에 따라 그들이 접해보지 않았거나 접할 기회가 적은 것들을 보여주고 체험하게 함으로써 한국의 매력을 물씬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시애틀에 사는 미국인은 한국 방문 때 1만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을 자신의 집에 ‘슬라이드’로 상영하면서 한국에서 보고 들은 것, 먹고 마신 것, 체험한 것들을 지인들에게 소개하기 바쁘다. 슬라이드를 통해 한국을 간접 체험한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럽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고, 지방마다 친구 한둘은 있기 마련입니다. 외국인 친구들과 가는 곳마다 친구들이 나와서 안내해주고 챙겨주면 외국인들은 깜짝 깜짝 놀랍니다. 이것이 한국의 매력이지요.”
그렇게 그의 집에서 묵어간 외국인들 중에는 직접 찍은 사진과 느낌 등을 담아 ‘한국 방문기’를 책으로 엮은 사람도 있다. 세련된 출판물은 아니지만, 친구들에게 ‘아름다운 한국, 아름다운 한국인’ 책을 나누어 주니 그보다 나은 한국 홍보도 드물 것이다. 그것이 이종운 교수가 한국의 한적한 주택가에서 세계인과 교유하는 비결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 출처 : 매일신문(2010.3.12) > | |
| |
| |
|
'Free Opin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걸어보지 못한 길 (0) | 2010.04.03 |
---|---|
자연을 지키는 청지기 (0) | 2010.04.02 |
땅이여, 땅이여…. ② (0) | 2010.03.31 |
괴팍한 나로인한 상처들 무심한 강물에 흘려주오 (0) | 2010.03.17 |
[스크랩] 세계 최고 부자들의 집 (0) | 2010.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