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對北 관련 자료

북한의 국보 제21호부터 제41호까지

鶴山 徐 仁 2010. 3. 4. 19:41





제21호 - 박천 심원사 (보광전)

평안북도 박천읍에서 동쪽으로 약 5km 떨어진 심원산(봉린산)의

제일 봉우리를 배경으로 하고, 그 동서 양쪽에 발양산과

부흥산이 둘러선 아늑한 곳에 박천 심원사가 자리잡고 있다.

심원사에는 중심건물인 보광전과 전등루, 향로각 등이 관리,

보존되고 있는데 보광전은 막돌로 면을 맞추어 쌓은

기단 위에 정면 3간(10.85m), 측면 2간(7.2m)으로 세운

합각집으로 9세기에 처음 지었으나, 지금

남아 있는 것은 1368년에 고쳐 지은 건물이다.

이 건물은 고려 말기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는

귀중한 건물로서 우리 나라 중세건축술

발전의 한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 준다.



제22호-보현사

묘향산 보현사는 평안북도 향산군 향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조선 후기의 사찰로 1042년에 창건한 것을 재건한 것이다.

보현사는 남북 중심축을 따라 절의 첫 문인

조계문으로부터 시작하여 해탈문, 천왕문,

9층탑, 만세루, 그리고 그 뒤로 12층탑과 대웅전을

전개하고, 그 좌우로 크고 작은 건물들을 배치하여 큰 건축 군을 이루고 있다.

1216년, 1634년, 1761년의 세 차례의 큰

화재로 여러 차례 보수, 중건되었다.

묘향산 보현사에는 국보급 유물인 8만대장경과 이를

영구 보존하기 위한 보존고도 있어

불교도서관의 기능도 겸하여 수행하고 있다.



제23호-묘향산 보현사 8각13층탑

묘향산 보현사 8각13층탑은 평안북도 향산군 향암리 보현사

대웅전에 앞에 있는 석탑으로 높이는 10.03m이다.

이 탑은 3단으로 된 대돌, 연꽃 대좌형 기단,

13층의 탑 몸 그리고 탑 머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탑에 있는

무늬의 형태로 보아 고려말의 탑으로 추정된다.

고려시기 대표적인 탑의 하나이다.



제24호-해주 5층탑

해주 5층탑은 황해남도 해주시 옥계동에

위치한 고려 초기의 석탑이다.

이 탑은 대돌과 기단, 5층의 몸 그리고 탑 머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이는 4.63m이다.



제25호-해주 다라니석당

해주 다라니석당은 황해남도 해주시 해청동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돌 구조물로 높이는 5.3m이다.

6각으로 된 두 겹 바닥 돌 위에 역시 6각의

받침대가 놓여 있으며 6각 몸돌에는 '

대불정다라니당'이라는 당명과 함께

범어로 된 다라니경문이 새겨져 있다.
지붕 돌은 2층으로 되었다. 지붕돌의 모서리에는

귀꽃이 돋쳐 있으며 아래 지붕 돌 밑면에는

2단의 받침과 한 면에 5개씩 모두 30개의

겹잎 연꽃을 새겨놓았다.

지붕 돌 위에 복박과 보개가 있다.

이 다라니석당은 굳은 화강암을 다듬어 만든

것으로서 풍화를 입었으나 원래의 아름다움이 비교적 간직되어 있다.



제26호-안악 1호무덤 (안악1호고분) (안칸 서쪽 천장 벽화)

황해남도 안악군 대추리 산지마을 뒤 언덕에는

고구려 벽화 무덤 2기가 있는데 그 중 앞에 있는 것이

안악 1호무덤이다. 이 무덤은 인물풍속도를

그린 외칸 무덤으로 무덤무지는 방대형이며,

무덤칸은 안길과 안칸으로 이루어졌다.

인물풍속도가 있는 고구려 벽화 무덤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안칸 북벽에 주인공의 실내생활도를

그렸는데 여기에서는 전각을 그렸다. 천장에는

이상한 짐승 그림이 있는데 봉황, 기린, 사람의

머리를 가진 네 발 짐승과 사람의 머리를 가진 새,

날개 돋친 물고기인 비어와 날개 돋친 네 발 짐승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것은 고구려 사람들의

풍부한 상상력과 신앙생활의 한 부분을 반영하고 있다.
안악 1호무덤은 독특하고 풍부한 벽화를 통하여

고구려의 건축, 회화, 신앙 등 당시의 문화와

풍습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4세기 말의 유적이다.



제27호-안악 2호무덤 (안악2호고분) (안칸 천장 중심부 벽화)

황해남도 안악군 대추리 산지 마을 뒤 언덕 중턱에는

고구려 벽화무덤 2기가 있는데 그 중 뒤에 있는 것이

안악 2호무덤이다. 함박뫼라고도 불리는

이 무덤에는 인물풍속도를 그린 감이 있다.
무덤 벽화 중에서 가장 잘 그린 것은 동벽의 비천이다.

이 비천은 웃음 지은 얼굴, 따뜻한 살결,

균형 잡힌 몸매, 부드러운 율동, 어느 모로 보나

아름다운 고구려 여인을 높은 예술적 착상과 기량으로

형상한 미인도로서 당시로서는 세계적인 걸작이다.
이 그림은 섬세하고 우아한 고구려 화풍의 특성을

훌륭하게 살려 고구려 회화사의 한 장을 빛나게

장식하고 있다. 5세기 말-6세기 초의 유적이다.



제28호-안악 3호무덤 (앞칸 입구 돌문)

황해남도 안악군 대추리 오국리의 벌판에 있는

안악 3호무덤(하무덤)은 왕릉으로서 지금까지 알려 진

고구려 벽화 무덤들 가운데서 그 규모에서나

벽화 내용에 있어서 단연 으뜸가는

우리의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이다.
이 무덤은 인물풍속도를 그린 곁칸이 있는

무덤으로 무덤무지는 방대형이며,

그 크기는 남북 약 33m, 동서 약 30m,

높이 약 6m 이다. 무덤무지 자체도 크지만 산 위에

자리잡았고 무덤과 산이 한 덩어리처럼 되어서

그 모습이 실로 산악처럼 웅장하다. 지하궁전을

방불케 하는 무덤 칸의 복잡한 구조는 고구려

왕 공 귀족들의 웅장하고 화려한 주택을

그대로 옮겨다 놓으려는 데서 나온 것이다.



제29호-관산리 고인돌

관산리 고인돌은 황해남도 은률군 관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오덕형 고인돌이다. 무덤 칸의

길이는 3.3m, 너비는 1.4m, 높이는 무덤 칸 바닥으로부터 2.15m이다.

뚜껑돌은 장방형으로 길이 8.75m, 너비 5.4m, 두께 0.31m에 달한다.

이같은 규모로 보아 관산리 고인돌은 당시 권력자의 것으로 추정된다.



제30호-학림사 5층탑

학림사 5층탑은 황해남도 장연군 장연읍에서 서쪽으로

약 16km 떨어진 송월산 기슭 학림사 터에 있는 높이 6.62m의 석탑이다.

거친 화강암을 다듬어 만든 이 탑은 연꽃 대좌형 기단과 5층의 탑 몸,

높이 2m 되는 탑 머리로 되어 있는데, 5층 몸 돌과 탑

머리는 조선시대에 보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31호- 성불사 (극락전)

성불사는 황해북도 봉산군 정방산의 주봉인 천성봉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 극락전, 응진전, 명부전, 청풍루,

운하당, 산신각, 그리고 5층탑이 보존되어 있다. 사찰의 중심건물인

극락전은 898년에 지어진 것으로 6.25전쟁 때

폭격에 의하여 파괴되었던 것을 1955년 복구했다.
응진전은 898년 처음 지은이래 여러 차례 고쳐 내려오기는

하였으나 그 구조에서 배부른 기둥, 안팎을 허식 없이 3포로

짜 올린 두공, 도리를 맞추기 위하여 윗면을 둥글게 판 장여,

화반대공 좌우에 뻗쳐 세운 ㅅ형의 활개 등 고려 건물의

특징이 뚜렷하다. 지금의 건물은 1327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제32호-성불사 5층탑

성불사 5층탑은 황해북도 봉산군 정방리 성불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이 석탑은 대돌과 기단, 5층의 몸

그리고 탑 머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이는 4.36m이다.



제33호- 연탄 심원사 (보광전)

연탄 심원사는 정방산 줄기에서도 제일 높은 천녀봉

벼랑 바위들을 등지고, 주위에 백운봉, 청학대, 청룡봉,

관음봉 등 높고 낮은 여러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늑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심원사에는 보광전과 청풍루,

응진전, 향로각, 칠성각이 보존 관리되고 있는데 중심 건물인

보광전은 1374년 고려 말기에 재건된 것으로

고려 건축술의 수준과 특징을 보여 준다.



제34호-개성 남대문

개성 남대문은 개성시 북안동 네거리 한복판에 있는

개성성 내성의 정 남문이다. 이 문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세워졌는데 6·25전쟁 때 소실되고

축대도 적지않게 파괴되었으나 1955년에 복원되었다.
남대문은 곱게 다듬은 화강석 축대위에 앞면 3간(13.63m),

옆면 2간(7.96m)인 합각집을 세웠다. 축대는

무지개형 문을 냈으며 크고 듬직하게 쌓아 장중한 감을 준다.
건물은 모를 죽인 4각돌기둥 위에 나무기둥을 세웠으며

두공은 안팎 3포이고 천장은 통천정이며 이 문은

축대로 이룬 무지개형 성문루 구조가 잘 조화되어

장중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여운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문은 고려시대의 우수한 건축술과

기교를 계승하여 지은 특색있는 문루건물로서 장식이

소박하면서도 짜임이 견실하여 문루로서의

위용을 잘 갖추고 있는 귀중한 건축유산이다.



제35호-불일사 5층탑

불일사 5층탑은 개성시 판문군 선적리 보봉산 불일사에

세웠던 돌탑으로 고려 시대(951년)에 창건된 불일사는

현재 터만 남아있다. 이 탑은 현재 고려박물관으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는데 높이는 탑 머리 없이 7.94m이며

탑 몸, 탑 머리로 이루어져 있다.



제36호-선죽교

선죽교는 개성시 선죽동에 위치한 고려 후기의

길이 8.35m, 너비 3.36m인 석조 다리로 『고려사』에 의하면

1216년 이전에 건설되었으며 당시의 이름은 선지교였다.

그 후 고려말 유학자인 정몽주가 이 다리에서 피살된

그 때로부터 이 다리 이름을 선죽교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난간을 둘러 세운 다리와 다른 다리가 하나

더 있는데 난간을 세운 것이 선죽교이다. 난간은

1780년 정몽주의 후손들이 사람이 다니지 못하도록

설치한 것이고 난간이 없는 다리는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그 곁에 새로 놓은 것이다. 다리의 옆에는

'선죽교'라고 쓴 비석이 있는데 이 비의

글씨는 명필 한석봉의 것으로 전한다.



제37호- 령통사 5층탑(중앙)

령통사 5층탑은 개성시 룡흥동 오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령통사 터에 위치한 고려 초기의 탑으로 높이는 6.48m이다.

5층탑을 가운데에 두르고 3층 탑 2기가 동서에 나란히 서있다.

그 중 5층탑의 기단은 한 단으로 되어 있으며 모서리 기둥은 돋아 새겼고

돌과 평평하게 넓은 갑돌(한 변의 길이 3.24m)을

사용했다. 이 탑은 그 구조와 형식으로

보아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제38호-령통사 서 3층탑

개성시 룡흥동 오관산 남쪽 기슭에 있는 영통사에는

5층탑을 가운데에 두고 3층 탑 2기가 동, 서에 나란히 서있는데

이 중 서쪽의 것이 령통사 서 3층탑이다. 이 탑은

그 구조와 형식으로 보아 선행한 돌탑 형식을

이어받은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제39호-공민왕릉

공민왕릉은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 위치한

서기 1365년∼1374년 사이의 고려시대 왕릉이다.

2기의 무덤을 동서로 나란히 세워 쌍릉 형식으로 만든 이 무덤은

고려 31대 공민왕의 무덤 현릉(서쪽의 것)과 왕비(노국 공주)의

무덤 정릉(동쪽의 것)으로 이루어졌다.
이 무덤 건축에서는 고려 사람들이 해당 건축물을

웅장하게 돋보이기 위해 궁전, 무덤, 기타 건축에서 건축

구획을 여러 개의 층단으로 배치하던 수법을

그대로 도입하여 제일 윗단에 무덤무지를 두고,

그 아래로 여러 개의 층단을 구성하면서 조각과

시설을 적절히 배합함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그리고 무덤구역에 배치되어 있는 돌조각들,

특히 문인상과 무인상은 선 새김을 위주로 하면서도

야외기념물로서의 입체감을 잘 살리고 있으며,

대상에 맞게 문인과 무인으로서의 직업적 특징은

물론, 젊은이와 늙은이의 성격상 특징까지도

잘 드러내었다. 이 조각상들은 고려 조각가들이

개척한 높은 경지를 실물로 보여 주는 대표작일 뿐 아니라

동양식 조각의 특성과 고유한 맛을 잘 살린 걸작품들이다.



제40호-현화사비

현화사비는 개성직할시 장풍군 월고리에 있던 현화사의

창건연기 등을 기록한 고려시대의 사적비로

현종 12년(1021)에 건립되었다.



제41호-현화사 7층탑

현화사 7층 탑은 개성직할시 장풍군 월고리의 현화사 터에 있는

고려시대의 7층탑이다. 이 석탑은 대돌과 기단, 5층의 몸 그리고 탑

머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이는 8.64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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