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주 영산강을 지나갔다. 다리가 있어 강은 분명 강이었던 것 같은데,
물은 보이지 않고 강 가운데 듬성듬성 솟은 모래 언덕에 잡초만 무성했다.
"아, 과거에 여기에 큰 강이 있었고 배가 드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다리를 건넜다.
옛날엔 제법 큰 장이 섰을 법한 다리 근처 상가(商街)는 폐허처럼 보였다.
말라 비틀어져 죽어가는 강(江) 주변 사람들이나,
차창 밖으로나마 그런 황폐한 강을 목격한 국민이라면 차마 입에서
"4대강 살리기는 안 된다"는 말을 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한 주장은 4대강과 강 마을 사람들에겐 '저주'를 퍼붓는 것과 같다.
강 주변에 콘크리트 시설을 마구 지어 환경을 파괴하는 '선심용' 개발이 아니라면
4대강 살리기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 대통령은 얼마 전 비공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한국 경제, 10년 돼야 '747' 성과가 나올 것이다.
이제 나는 임기 중 선진화의 기초를 닦는 일을 하겠다.
욕을 먹든, 안 먹든, 기초를 잘 닦으면 다음 정권이 승승장구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기초를 닦는 일'의 하나로 4대강을 꼭 살리겠다고 했다.
세종시 원안을 수정하려는 것도 더 솔직한 표현을 써가며 '기초를 닦는 일'로 거론했다.
"막상 부처를 (세종시로) 옮기게 되면 그걸(원안) 결정한 노무현 대통령이나
그걸 그대로 만든 이명박이나 먼 훗날 퇴임 후 똑같은 사람이란 소릴 들을 것이다.
당장 다음 정권 때 (전임) 대통령이 비겁하게,
문제 있는 줄 알면서 그렇게 했다고 말이 나올 것이다."
그날 이 대통령이 한 말 중 일부는 지난달 28일 생방송된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나왔지만,
임기 중반을 맞는 그의 요즘 생각은 "나라의 기초를 닦겠다"는 데 쏠려 있는 것 같다.
수많은 '기초' 가운데
요즘 이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와 세종시 원안 수정, 남북관계 개선, 노조개혁이라는
'4개의 기초 닦는 일'을 동시에 벌이고 있다. 모두 반대세력이 만만치 않은 '전쟁' 같은 일이다.
이 중 4대강 살리기와 남북관계 개선은 청와대와 여당이 합심해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세종시 문제와 노사개혁은 여권 내부에서 후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은 세종시를 꼭 수정해야겠다고 했지만 여권 내부에선 원안대로 할 수도 있다는,
퇴로를 열어두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내년부터 시행하려던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도 유보하려는 분위기다.
대개 노조개혁에서 '유예'는 후퇴나 포기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노조개혁은 한국이 선진국이 되느냐, 주저앉느냐를 결정하는 '기초 닦기'의 근간 중의 근간이다.
두바이가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세계 경제가 언제 또다시 뇌관이 터질까 불안에 빠져 있다.
상업용 부동산 버블이 꺼지기 시작한 미국은 상당 기간 회복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우리 경제는 선방하고 있다지만, 실은 그동안 투입한 수십조원 재정의 힘으로 버티고 있다.
대기업들이 79조원의 현금을 쌓아두고도 하이닉스나 대우건설 같은 매물을 사지 않는 것은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빨리 예산을 투입해야 그나마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데
국회는 예산안 처리를 늦추고 있다.
일부 국책은행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높여 국민들에게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경쟁국들은 위기 속에서 더 강해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우리는 위기가 끝난 것처럼 축배에 취해 다시 싸움을 하고 있다.
여당은 두 갈래로 찢겨 있고, 야당은 반대만 하고, 노조는 파업에 열중이다.
- 윤영신 경제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