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지난달 31일 '마침내' 새 조직개편안과 수석비서관 8명, 특보 6명의 진용을 발표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청와대 수석·특보들의 국정(國政)에 대한 영향력과 발언권은
부처 장관들의 그것보다 세고 큰 게 현실이다.
새로 기용된 사람들이 얼마나 일을 잘할지는 앞으로 당사자들이 입증하면 될 일이다.
다만,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번 개편을 통해서도
수석·특보 중 여성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청와대 핵심 참모진의 여성 부재(不在) 현상은 현 정부
1기 청와대 때 한 여성 수석이 임명 2개월여 만에 재산 문제로 낙마한 이후 계속되고 있다.
우선 이런 현실은 현 정부의 대선 공약을 거스르는 것이다. "여성 성공시대를 열기 위해…
여성할당제를 확대 실시하며, 공공 부문의 양성평등을 실현하겠다"던 그 약속이다.
지금 청와대에는 여성 수석·특보가 한 명도 없을 뿐 아니라,
그다음으로 영향력이 있다는 비서관급 45명 중에도 여성은 3명뿐이다.
8·31 개편에서 남녀 공동대변인 중 한 사람으로 임명된 김은혜씨도 이 비서관급이다.
이런 정권이 '공공 부문의 양성 평등'을 말하는 건 공허(空虛)한 다짐으로 들릴 뿐이다.
가장 심각한 건 주요 정책 논의 및 결정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목소리와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겠느냐는 것이다.
남성들만으로 이뤄진 청와대 수석회의의 결론은 남성 국민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남녀 국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단지 여성정책뿐 아니라 다른 모든 주요 국정 현안을 논의할 때
여성의 의견과 주장을 무겁게 다루는 건 필수다.
그러지 않으면 행정결정 과정에서의 '다양성 배려' 원칙이 무너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권 차원의 관심사라는 저출산 문제를 놓고 보자.
출산 정책은 다른 어느 부문보다도 아이를 직접 낳는 여성의 시각과 의견이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이들을 빼놓고 남성 수석들끼리만 모여 "출산율을 높여보자"고 고민하는 건
모양 자체부터가 영 어색하고 우습지 않은가.
국제적 체면도 생각해 볼 문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정상이 외국 국가 원수와 회담하는데
배석자에 여성이 한 명도 없다는 걸 국제사회는 어떻게 바라볼까.
오죽하면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경제포럼(WEF)의 '2008년 글로벌 성(性) 격차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순위가 세계 130개국 중 하위권인 108위에 그쳤을까.
이는 2007년 128개국 중 97위에서 더 떨어진 수치였다.
대한민국의 중요한 인적 자산인 여성계의 사기와 의욕은 또 얼마나 꺾어 놓는 일인가.
지금 검사, 판사, 외교관 임용자의 40~50%가 여성일 정도로
한국 여성의 능력은 만개(滿開)하고 있다.
이들에게 여성은 한 명도 없는
최고 권부(權府) 청와대의 수석비서관 회의 광경은 기가 막힐 일일 것이다.
청와대는 "사람을 찾지 않은 게 아니라 마땅한 인재가 없어서"라고 말해왔다.
과연 그럴까? 이 정부에서도 어김없이 중요한 인재 풀이 된 교수 분야만 놓고 봐도
현재 전국 4년제 대학 여성 총·학장이 11명이고, 여성 교수가 9603명이다.
이들 중 대통령을 보좌할 만한 경력과 인품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한 명 찾아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적임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를 찾기 위한 의지와 노력이 부족한 탓은 아니냐"는 물음이다.
정부엔 마침 만회할 기회가 바로 앞에 있다. 곧 이뤄질 개각이다.
이를 통해서라도 "여성의 힘이 우리 사회를 선진 대한민국으로 도약시킬 수 있도록
국가적 총의를 모아나가겠다"(3월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나라당 논평)는 정권의 다짐이
구체화할지 주시하는 눈길들이 적지 않다.
- 신효섭 정치부 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