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想像나래 마당

<스크랩> 다듬이질

鶴山 徐 仁 2009. 3. 26. 11:49

우리의 삶을 두드렸던 다듬이..

 

 
 

또닥 또닥 똑 또다닥….
 
삽살개 먼 산 향해 울음을 풀어놓는 야삼경(夜三更).
달은 함지박만하게 돋았는데
아련하게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
 
끊어질듯 이어지고,
홀아비 애간장 녹이던 애상의 가락.
 
노름방 서방 불러내듯,
시집살이 설움 풀어내듯,
옥양목을 흠씬 두들기면
뒤란 살구나무도 놀라
꽃을 펑펑 터뜨렸다.
 
두엄 속 노란 씨앗
속대 밀고 쑥쑥 올라오는 봄날,
집집마다 마당엔
하얀 빨래가 목련꽃처럼 날렸다.
 
시아버지 마고자에서 며느리 속곳까지
박속 같은 무명천이
바지랑대가 휘도록 하늘을 덮었다.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에서-

 
 
 
 
 
 
다림이질하는 여인의 젖가슴이.....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은연중 자랑하는 풍습이라네요
 
 
 
 
 
 
다듬이 소리. 이제는 끊겼습니다.
조선 말기 고종황제의 신임을 받던 선교사 호레이스 N. 알렌(1858~1932)은 남긴 책 `조선체류기”에서
100년 전 서울은 고요한 밤의 도시였다고 묘사했습니다.
아낙네가 두드리는 다듬이 소리만이 정막을 깨뜨렸다고 했습니다.

낮에는 논과 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방망이를 두드렸던 이 땅의 여인들. 그토록 열심히 두드렸지만
자신의 강팍한 삶은 펴지지 않았습니다. 아낙의 다듬이 소리는 엄한 가부장제의 사회에서
어떤 신호 같은 것이었습니다. 집안에서 내는 유일한 큰소리였습니다.
여인들은 다듬이 소리에 감정을 실었습니다. 강약과 장단으로 자신의 심경을 표출하였습니다.
그래서 담을 넘나드는 다듬이 소리는 같았지만 달랐습니다.

그때 아이들에게 다듬이 소리와 바람에 펄럭이던 하얀 옷가지는 하나의 평화였습니다.
참, 다듬이 소리가 끊긴 것은 그렇고, 그 때 휘날리던 그 흰 옷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김택근/시인〉

 

다듬이질 하는 여인
 
생활체제나 가옥구조가 극도로 인력과 노동을 요구했던 시대에 한국의 여인네들은
하루 낮 동안 내내 집안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절구에다 보리를 빻고,
 부엌에 들어가 쌀을 안치고 반찬을 장만한다.
상을 들여보내고 설거지하는 것도 몫,
집안을 대강 청소한 후 산더미같은 빨랫감을 이고 개울로 나간다.
그외에도 길쌈이며 밭일로 해가 짧다. 저녁이 이슥해져 몸이 푸솜같이 되었을 때 다듬잇돌을
건넌방으로 들여놓고 고부간에, 동서간에, 시누올케간에 마주앉아 다듬잇방망이를 두드린다.
한국의 대다수 서민 여인네들은 이런 소태나는 삶을 살아왔다.
목구멍에선 화근내가 받치고 굵은 땀방울이 목덜미를 적셔도 불평을 몰랐다.
그래도 마음속에 한가닥 앙금이 남아 있었다면
무명이나 삼베를 두드리면서 요샛말로 스트레스가 해소되기도 했겠다.
 하지만 고운 모시나 명주를 다듬이질할 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칫 졸아서 헛치기라도 할라치면 구멍이 송송 뚫려 못 쓰게 만들기도 할테니까.
 
 
똑같은 다듬이질도 형편 따라 경우 따라 다름을 다음의 시가 설명해준다.
 
 
이웃집 다듬이소리/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 잦아가네
/ 무던히 졸리기도 하련만/ 닭이 울어도 그대로 그치지 않네
의좋은 동서끼리/ 오는 날의 집안일을 재미있게 이야기하며
/ 남편들의 겨울옷 정성껏 짓는다면/ 몸이 가쁜들 오죽이나 마음이 기쁘랴마는
/ 혹시나 어려운 살림살이/ 저 입은 옷은 헤어졌거나 헐벗거나
/ 하기싫은 품팔이, 남의 비단옷을/ 밤새껏 다듬지나 아니 하는가
 
 
양주동의 '다듬이 소리'에서..
 
 
가난한 집에선 남의 빨래를 해주고 옷을 지어주는 품팔이가 일반화되었던 시대의 통증을
환기시키는 시편이다. 그럼에도 여인들에게 있어 다듬이질은 그 중 신명나는 노동에 속한다.
한참 동안 몰두하면 무아지경에 빠지고 어깨춤이라도 출 듯 없던 힘이 절로 솟구친다.
협동심과 조화감의 결정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갈등과 격의가 있었던 여인의 관계에서 이 시간은 이를 해소하고 간격을
좁히는 계기가 된다. 반드럽게 된 다듬잇감이 차곡차곡 쌓인 걸 보고는 어찌 서로 미소를
깨물지 않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보냐.
다듬잇돌은 주로 돌을 장방형으로 깍아 윗면을 매끄럽게 간 것이다.
여인이 혼자서 빠듯이 들고날 수 있는 무게라야 안성맞춤이다.
한 손에 쥐고 두드리기에 알맞도록 나무로 다듬은 방망이 네 개와 곁들여서 대개는
집집마다 마루 안쪽에 붙여놓았다. 피곤에 전 남정네가 마루에 몸을 누일때는 베개삼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에 족하지만 입이 비뚤어진다 하여 가까스로 삼간다.
다듬이질은 우리 고유의 풍정이다. 쪽찐 머리에 모시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인의 다듬이질
모습은 그지없이 아름답다. 저 다문 입술, 두어가닥 삐져나온 귀밑머리칼......
아, 그런데도 무정한 지아비는 목침을 돌쳐 누우며 이맛살을 찌푸린다.
<동지섣달에 베잠방이를 입을망정 다듬이 소리는 듣기 싫다>는 조다.
어느 마을이나 이 집 저 집에서 또닥또닥 들리던 다듬이 소리,
어느 집일까 하고 귀기울여봐도 가까운 듯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고 보살피려는 여인의 갸륵한 정성이 꿈결에도 적셔졌던
그 소리가 잠적하면서 한국인은 멋 하나를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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