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의 성공 비밀(?)
운전을 하던 직원이 뒷자리 사장에게 불쑥 말을 건다.
"전자계산기처럼 생긴 (액정 화면) 게임기를 만들면 팔리지 않을까요?"
빚더미에 휘청거리던 화투회사 사장은 친하게 지내던 계산기 회사 간부에게 이야기를 전한다.
얼마 후 함께 만들자는 승낙을 받았다.
1980년 이렇게 탄생한 액정(液晶) 화면 게임기가 '게임&워치'다.
세계 휴대용 게임기의 역사는 여기서 시작됐다.
일본 교토(京都)의 작은 기업에 불과하던 닌텐도(任天堂)에서 일어난 일이다.
화투업체 사장과 의기투합해 액정을 공급해준 회사는 1970년대 '덴타쿠(電卓·전자계산기)전쟁'에서
카시오에 참패했던 샤프였다. 아이디어를 낸 운전석 직원은 도시샤(同志社)공대의 성적 불량 졸업생
요코이 군페이(橫井軍平).
그는 훗날 강연에서 "전자회사에서 모두 낙방해 고향 회사라면 어디든 감지덕지였다"고 말했다.
닌텐도 역사에는 젊은 주역 2명이 더 등장한다.
먼저 가나자와(金澤)미대를 졸업한 미야모토 시게루(宮本茂). 지방대 출신 디자이너였다.
미야모토는 집안 인연이 있던 닌텐도에 샐러리맨으로 입사해 요코이와 함께
그 유명한 '마리오'와 '젤다'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또 한명은 외부인이다. 16년 동안 게임 동인지(同人誌)를 만들던 공업전문학교 출신
다지리 사토시(田尻智). 그는 어린 시절을 숲이 많던 도쿄 변두리에서 지냈다.
그때 친해진 곤충을 소재로 게임 기획서를 만들어 닌텐도 문을 두드렸다.
지금도 세계 어린이의 마음을 꽉 잡고 있는 '포켓몬스터'다.
이들 3명을 묶어 닌텐도를 일군 경영자는 화투가게의 창업 3세 야마우치 히로시(山內溥).
지금은 세계적 인사가 된 샐러리맨 미야모토가 "사장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서 모두 열심히 했다"고
회고할 만큼 카리스마형 독재자였다. 야마우치는 숨어 있던 인재를 정확히 뽑아내 전폭적으로 밀어준
이유 하나로 세계적 경영자 반열에 올랐다.
닌텐도는 엄청난 발명을 내놓은 적이 없다. 기술도 없었다. 한물간 소형 액정을 게임기에 붙이고,
누구나 시간을 때울 수 있는 단순한 캐릭터의 게임을 만든 것이 전부다. 게임기의 기술력,
소프트웨어와 캐릭터의 정교함 모두 경쟁자 소니에 밀렸다. 그러나 시장을 석권한 것은 닌텐도였다.
"시든 기술의 수평사고." 샐러리맨 요코이가 말한 성공 비결이다.
게임기에 액정을 붙인 것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흔한 기술을 누구나 아는 다른 분야에 적용하는
응용력을 말한다. 그의 말대로 '훌륭한 상품'이 아니라 '팔리는 상품'이 중요한 것이다.
요코이는 1997년 교통사고로 숨진 뒤 일본 경제계에서 '게임산업의 신(神)'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닌텐도' 언급 이후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정부부터 게임산업을 지원하라"는 비판에서, '명(明)텐도 MB'란 조롱까지.
하지만 정부 지원이 닌텐도 성공에 역할을 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뚝심의 경영자, 엉뚱한 상상력의 샐러리맨,
자연에서 성장한 청년 마니아의 흥미진진한 모험담만 있을 뿐이다.
누구나 닌텐도가 될 수 있다는 희망 이외에, 어떤 절망적 메시지도 그곳엔 없다.
우리가 닌텐도에서 배워야 할 것은 '수평사고'다.
옆을 살피면 요코이·미야모토·다지리와 같은 인재,
깃발을 꽂으면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경영자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림없다"고 아우성이다. 정부만 올려다보는 습관,
옆자리 인재를 경시하는 '수직사고'가 한국의 닌텐도를 어림없게 만드는 것이다.
- 선우정·도쿄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