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오늘도 꿈을 싣고 이 새벽을 달린다"

鶴山 徐 仁 2008. 12. 28. 20:16

"오늘도 꿈을 싣고 이 새벽을 달린다" 서민들의 강남행 특급 '8541'
시흥~강남역 하루 3번 운행 '생계형 맞춤버스'
오전 5시 이전 출근 수단 없는 시민위해 개설
김어진 기자 hanme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이신영 기자 foryo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양희동 기자 eastsu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23일 새벽 4시 서울 금천구 시흥동 호압사 앞 버스정류장. 출발을 30분이나 앞둔 시각이었지만 관악교통 버스기사 이금선(49)씨가 8541번 버스에 시동을 걸고 히터를 켰다. 영하 5도 추위 속에 눈길을 걸어온 8명의 승객은 덕분에 몸을 녹일 수 있었다.

시흥을 출발해 서울대 입구~사당역~강남신세계~강남삼성타운~강남역을 돌아 다시 사당역~서울대 입구를 거쳐 봉천동으로 돌아오는 8541번 시내버스는 '생계형 맞춤버스'다.

서민들이 많이 사는 시흥·난곡·신림 등지에서 새벽에 강남 일대로 일 나가는 서민을 위한 노선이어서 '생계형'이고, 이들의 출근시간인 오전 4시30분부터 10분 간격으로 단 세 번만 운행해서 '맞춤형'인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8월부터 이 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이금선씨는 "하루 승객 300~350명 대부분이 청소, 주방보조, 경비를 하는 사람들"이라며 "항상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타기 때문에 이름은 몰라도 직업과 주소는 다 안다"고 말했다. 택시를 탈 수 없는 이들에게 8541번 버스는 하루 세 번 운행하는 '강남행 특급'인 셈이다.
▲ 21일 오전 4시30분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이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서 출발하는 8541번 첫 버스에 오르고 있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요구르트 아줌마·건물 미화원 등 서민들의 버스

"항상 놓칠까봐 조마조마해요. 이 버스 놓치면 6시까지 출근하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8541번 기점에서 강남역까지 가는 노모(여·53)씨는 '요구르트 아줌마'였다. 강남 대치동에서 오전 6시부터 200여 곳의 사무실과 아파트에 요구르트를 배달하고 버는 수입이 150만원 남짓.

시흥동 은행나무 앞 단독주택에서 단란하게 살던 노씨 가족은 1998년 외환위기로 임대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한다. 사업을 하던 남편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로 전락하자 한동안 멍하게 지냈던 노씨도 요구르트 배달을 시작한 것이다.

노씨는 "새벽 4시 집에서 나와 밤 8시에 들어가면 몸은 고달프지만 남편과 함께 집안을 지켜 나간다는 생각에 뿌듯할 때가 더 많다"고 했다. 그녀는 "새해 소원은 불경기 때문에 20%쯤 줄어든 배달 가정이 절반이라도 회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순이(여·71)씨는 중풍에 걸린 남편을 30년 넘게 수발한 '또순이' 할머니다. 그는 변호사 사무실이 많이 입주해 있는 강남의 한 건물에서 미화원으로 일한다고 했다.

"남편은 2년 전 죽었어. 내가 서른여섯 때 중풍에 걸린 남편을 평생 병 수발하느라 젊었을 땐 벽돌도 지어 날랐고, 이 일도 벌써 8년째야. 그전에는 4년간 공공근로도 했고…."

고단한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오씨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엷은 붉은색 립스틱에 파운데이션까지 바른 멋쟁이 모습이었다.

"이 일을 하려면 젊어 보여야 해. 강남 좋은 빌딩에서 일하는데 허름해 보이면 일 안 시켜줘. 그래서 오늘도 봐. 입술도 찍어 바르고 나왔잖아"라며 웃었다.

◆강남역을 돌면 귀가버스로

버스 승객은 다섯 번째 정류장인 난우초등학교에서 70여명으로 불어나 서로의 콧김을 느낄 정도로 만원이 됐다. 승객 중 70%는 파마머리를 한 '아줌마'들이었다. 아줌마들은 의자 앞과 버스 통로 등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어 발 디딜 공간이 없었다.

간혹 빈자리가 생기면 자리 경쟁도 벌어졌다. 재빠르게 새치기한 한 아주머니에게 다른 아주머니가 "이건 불법이야"라고 하자 "야근한 사람 먼저야"라며 웃으며 대꾸했다.

문예자(51)씨는 "매일 한 버스를 타고 서로 힘든 일을 하는 처지여서 다들 친구가 됐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요구르트 아줌마 20년째라는 문씨는 "부자 동네 배달 다니면 부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잘 큰 아들 둘을 보면 세상에 아쉬울 것이 없다. 식구들 밥은 남편이 벌어 먹였지만 애들 공부만큼은 내 손으로 시켰다"고 자부했다.

강남역 7번 출구 회차지점에서 승객 수십 명이 우르르 내리고 남자 손님 8~9명만 남았다. 한 정거장 앞에서 탄 윤모(55)씨는 "이 시간에 타는 사람 99%는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대리기사"라고 귀띔했다. 새벽 5시까지 대리운전을 하고 PC방에서 버스를 기다렸다는 윤씨는 "어제는 눈이 와서 정말 힘들었다"며 목덜미를 주물렀다.

김형우(23)씨는 강남역 한 호프집에서 밤새 일을 마치고 사당동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2주 전 군에서 제대한 그는 "부모님한테 손 벌리지 않고 등록금 마련하려고 매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일한다"고 했다.

김씨는 "새벽버스에서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우르르 내리는 모습을 보면 '많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과 '나는 이제 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주5일과는 먼 서민들 "주말에도 버스 있었으면"

8541번 승객들은 저마다 소망이 달랐지만 한 가지는 공통적이었다. 승객 대부분이 토요일에도 일하는 서민들이므로 주5일 운행하는 버스를 토요일에도 운행하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건물 청소를 하는 오순이씨는 "토요일에는 버스가 없어서 차비를 아끼려고 금요일 밤에는 회사에서 자기도 한다"고 말했다.

요구르트 아줌마 문예자씨는 "새해 소망은 경제가 좀 풀리고 8541번이 토요일에도 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빌딩의 미화원으로 일하는 김명숙(여·61)씨는 "건강하게 몸이 허락할 때까지 일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입력 : 2008.12.24 03:05 / 수정 : 2008.12.24 0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