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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조국을 수호한 겨울이야기 [ 9 ]

鶴山 徐 仁 2008. 12. 28. 18:14

august 의 軍史世界

 

조국을 수호한 겨울이야기  [ 9 ]

 

 

 

막을 내린 저항 그러나 빨리 찾아 온 복수의 기회

 

불굴의 신념으로 저항하였지만 이러한 상태로 전쟁을 계속하면 핀란드는 바로 직전 재분할된 폴란드나 소연방에 강제 편입된 발트3국처럼 독립한지 20여년 만에 나라가 다시 사라질 위기에 처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국제사회는 소련의 침공을 맹비난하고 핀란드를 지원하겠다고 전쟁발발직후부터 공언하였지만 대부분 립서비스인 경우가 많았고 수수방관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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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의 도발은 고립무원으로 저항하던 핀란드의 의지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

 

결국 만네르하임을 비롯한 핀란드의 지도부는 전부를 지킬 수 없으면 차라리 일부를 잃는 차선책을 선택합니다.  핀란드는 소련에게 강화를 제의하였는데 사실 자신만만하게 핀란드를 침공한 소련도 코피가 터지면서 지금까지 예상을 초월하는 끔직한 피해에 넌덜머리가 나있었기 때문에 쉽게 대화에 응하게 되었고 1940년 3월 13일에 모스크바에서 전격적으로 강화조약 ( 1940 Moscow Peace Treaty ) 을 체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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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조약을 체결하면서 핀란드의 저항은 막을 내립니다 ]

 

강화결과 소련은 전략적요충지인 광대한 카렐리아해협 지역과 핀란드의 광물 자원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는 등 애당초 전쟁 전에 내세웠던 대부분의 요구조건을 오히려 초과하는 전략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지난 4개월간 전쟁에서 전술적으로는 참패에 가까운 대패를 당하였습니다.  전쟁을 계속하였다면 핀란드의 피해가 커졌겠지만 소련은 겨울전쟁에서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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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는 평화의 대가로 영토를 소련에 할양하였습니다 ]

 

핀란드군은 전쟁에 동원하였던 병력의 50% 에 해당하는 25,000명의 전사자와 45,000여명의 부상자를 내어 상대적인 손실은 컸지만 절대량에서 소련은 항공기 800기, 전차 500대, 야포 500문의 파괴 및 노획을 포함하여 20만의 사상자가 발생하여 무려 핀란드의 5~6배에 이르는 어마어한 피해를 당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소련은 전쟁에서는 우격다짐으로 핀란드로부터 항복을 받아냈지만 전투에서는 참혹한 패배를 당한 형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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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에서 승리한 소련의 피해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

 

이러한 소련이 입은 피해의 대부분은 전쟁개시 2개월 동안 발생한 것이었는데 이러한 소련군의 무능한 행태는 이후 독일이 소련군의 전력을 과소평가하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히틀러는 스페인내전 등을 통하여 소련군의 군비와 능력을 내심으로는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는데 겨울전쟁에서 보여준 소련군의 모습은 한심함의 극치였고 이로 인해 바바로사작전을 예정보다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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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군의 한심함은 독일의 소련 침공을 앞당기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 스틸 컷 ) ]

 

그런데 소련은 핀란드와의 강화협상에서 큰 실수를 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핀란드군에 대한 어떠한 군비 제한도 가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겨울전쟁에서 비록 절대 수에서는 소련에 비해 한참적지만 상대적으로 따져 볼 때 전쟁 전에 편제되었던 핀란드군의 절반이상이 이번 전쟁으로 소멸되었다고 판단하여 쉽게 전력을 회복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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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은 강화조약에서 핀란드의 군비를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

 

군비의 제한을 받지 않게 된 핀란드는 이를 악물고 내실을 다지면서 언젠가는 소련에게 반드시 복수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빠른 불과 15개월 만에 기회가 찾아왔는데 1941년 6월  22일 독일의 전격적인 소련침공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핀란드가 나찌 독일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소련이 너무 너무 미웠기 때문에 핀란드는 독일 편이 되어 소련을 함께 침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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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의 군비는 재건되었고 복수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 겨울전쟁 당시 노획한 BT 전차로 무장한 핀란드군 기갑부대 ) ]

 

언젠가는 독소불가침조약 이전처럼 독일과 소련이 적대국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인지하였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스탈린은 악마간의 밀약을 어느 정도 맹신하고 있었습니다.   1940년 초만 해도 독일은 소련과 폴란드를 반분하였고 발트3국과 핀란드에 대한 소련의 침략을 사전에 인정하였을 만큼 전략적인 동반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야비하기로는 스탈린과 맞먹는 히틀러는 불과 2년도 못가 소련을 침공하였던 것입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