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의 33년에 걸친 교단생활중 마지막으로 강의를 하는 날이다.
나는 44년 생이지만, 생년월일이 일러 (학교는 3월 1일이 기준이다.) 43년 생들과 함께 교단을 떠난다.
나는 나의 교단 데뷰학교인 전남대학에서 3년 반, 지금의 단국대학에서 29년 반을 보냈다. 그전에 서울 중앙고등학교에서 3년동안 불어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제외하고 대학에서만 만 33년을 보냈다.
오늘 오후 2시부터 나의 마지막 강의가 두 시간동안 진행된다.
그리고는 나로서는 영원히 강의와는 결별한다.
시간으로나마 강의를 더 해주기를 바라는 눈치지만, 나는 내년 2월 정년과 더부러 교단을 완전히 떠날 결심이다.
전업작가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살 작정이다.
약간은 착잡한 마음을 음미하기 위해, 지난 밤을 연구실에서 보냈다.
죽전으로 학교가 옮겨온 이후로, 나는 연구실에서 다섯번 쯤 밤을 새웠다. 옥수동 집에서 죽전캠퍼스까지 대략 두 시간쯤 걸리므로, 오후 늦게 강의가 끝나면 퇴근을 했다가 다음날 첫째 혹은 둘째 시간 강의에 맞추어 등교하기가 어렵다. 그럴 경우 교수 숙소나 강의실을 이용하여 하룻밤을 지샌다. 연구실에는 라꾸라꾸 침대가 있어서 전기 담요도 깔려있고 그런대로 지낼만 하다.
언제나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는데, 지난 밤은 아주 푹 잤다. 눈을 뜨니 새벽 네시이다.
즐겁고 행복한 감정이 전신을 감싸왔다.
마지막 수업이라고 하지만 별다른 감동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강의 이외에 소설을 줄기차게 써왔기 때문일까(장편소설 13편, 창작집 5권) 무슨 일의 현장에서 물러나는 감각은 없다.
사실 나의 머릿 속에는 강의나 연구보다도 소설이 절대적으로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같다. 그래서 일까, 인생의 현장에서 떠난다는 기분은 전혀 없다. 오히려 전업작가로서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한결 홀가분하디. 약간의 후회가 있다면 한 5년 정도 일찍 직장을 떠났더라면 더 많은 소설을 썼을텐데하는 생각이 든다.
어제 나는 마지막 수업 바로 직전 수업을 하였는데, <프랑스 영상문화의 이해>라는 과목이었다.
영화가 내 전공은 아니지만, 몇해 전부터 나는 이 과목을 강의해 왔다.
나는 프랑스 영화사에서 가장 쇼킹한 장면을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며칠 전부터 고심하다가, 가까이 있는 두 작품을 선택하였다.
그것은 프랑스와 트뤼포 감독의 <이웃집 여인>과, 앙리 배르늬 감독의 <시실리안>이었다. 두 작품 다 한 사람(주인공)의 인생이 마지막으로 결산되는 장면이다. <이웃집 여인>에서는, 미혼시절 열렬히 사랑했으나 어쩔 수 없이 헤어졌던 두 남여가 각기 가정을 이룬 후 우연히 이웃이 되었는데, 두 남여는 다시금 사랑이 불붙어 사련에 빠진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가정을 깰 수 없어서 헤어지기로 하고 마지막 정사를 나누기로 하고 이별을 결심한다.그러나 마지막 정사가 있고 난 후, 여자주인공이 남자를 권총으로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장면이다.
<시실리안>은, 전설적인 배우 쟝 갸방과 알랭들롱의 연기대결로 유명한 영화이다. 암흑계의 대부인 두 사람은 합작하여 막대한 보석을 실은 비행기를 납치하여 성공하지만, 분배과정에서 자신의 며느리와 사련에 빠진 행동대장 들롱을 암흑계의 대부 쟝갸방이 죽이는 장면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자존심으로 살고, 사랑으로 사는 것 같다.
자존심이란 대타관계에 의한 자아의 의미이고, 사랑이란 자신의 감정과 긍지에 의한 자아의 인식인 것 같다.
전자는 사회적인 자신의 위상으로 이룩되어지고, 후자는 대 이성관계로 형성되어진다.
지난 60평생을 뒤돌아보면, 별 볼일 없는 세월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남은 세월을 잘 살면, 어떤 새로운 의미를 창출할 수도 있는 불씨만큼은 살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은 건방지고 오만한 생각같지만 어쩌면 꺼지지 않는 영원의 생명력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왜 허구로 만들려진 두 편 영화의 충격적인 장면에 감동을 느끼는가.
사람은 예술작품화한 사랑을 통해 영원을 획득하는 것 같다. 이런 각도에서 먼 눈으로 보면 사실 사람의 대타관계에 의한 사회적인 업적이란 오랜 세월의 풍랑에 견디기 어렵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랑으로만 사는 것 같이 느껴진다. 나머지는 오랜 세월 속에서는 모두 의미를 잃게 되는 것 같다.
마지막 수업의 새벽이 오고 있는 지금, 나의 새로운 갈 길은 뚜렷이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12월1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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