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조국을 수호한 겨울이야기 [ 5 ]
지도자 그리고 위대한 국민
압도적 전력으로 침공을 개시한 소련군은 핀란드와의 전쟁을 한마디로 누워서 떡 먹기로 생각했습니다. 일부 병사는 스칸디나비아의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름철 군복을 걸치고 참전하였을 정도였고 지휘관들도 " 너무 전진하다 국경을 넘어 스웨덴까지 들어가는 실수는 하지마라 " 는 지시를 하였을 만큼 한마디로 자만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 허우대만 믿은 전쟁 초기 소련군은 한마디로 오만의 집합체였습니다 ]
그들은 어디든 신속히 점령하여 따뜻한 실내에서 희희낙락하면 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였고 전쟁의 초기 모습은 그렇게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외세의 지배를 받은 후 어렵게 독립을 쟁취한 핀란드 인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런 위난의 시기에 핀란드군을 지휘한 사람은 만네르하임 ( Carl Gustaf Emil Mannerheim 1867 ~ 1951 ) 이었습니다.
[ 핀란드군 총사령관 만네르하임 ]
그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군사학교를 다닌 후 러시아 근위대의 장교가 되어 군무를 시작하였고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실전 경험도 많이 쌓은 군인 이었습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이 기회를 틈타 조국 핀란드가 독립하자 反볼셰비키 성향의 만네르하임은 고국으로 돌아가 신생 핀란드군의 최고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건군활동에 힘씁니다.
[ 창군초기인 1920년대 핀란드군 박격포부대 ]
만네르하임은 러시아 주둔군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곧 이어 발생한 핀란드 내전 때 백군을 지휘하여 적군을 물리치고 독립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였습니다. 핀란드내전 당시 핀란드 적군의 후원세력이 소련 볼셰비키였는데 당시 소련 적군도 러시아 백군과 치열하게 내전을 벌이던 중이었습니다. 이 때 러시아 백군으로부터 연대제의가 있었지만 외세의 간섭을 막기위해 이를 단호히 거절하였을 만큼 만네르하임은 뚝심있게 독립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 그는 창군기부터 뚝심있게 핀란드군을 이끌었습니다 ]
1919년 대통령 선거에 패한 후 정치에서 물러난 그는 핀란드 군의 발전을 위해 주로 2선에서 티나지않게 묵묵히 활동 하였습니다. 그러나 1939년 소련의 침략이 예상되고 위험이 점점 증가하자 만네르하임은 국민들의 요청으로 다시 핀란드군 최고 지휘관으로 복귀 하였습니다. 그는 소련과 핀란드의 국경이 1천여 km가 넘기 때문에 핀란드의 능력으로 이를 모두 방어할 수는 없고 소련군도 한정된 돌격로를 이용할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 국경이 길지만 만네르하임은 소련군이 한정된 통로만 이용할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
따라서 만네르하임은 가장 중요한 침공로로 예상되는 핀란드와 소련사이의 전략적 통로인 카렐리아 회랑을 비롯한 주요 병목지점에 이후 그의 이름을 따서 만네르하임라인 Mannerheim Line 으로 불린 일련의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는데 소련의 야욕이 노골화 된 1939년 여름에 10만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작업에 참여하였을 정도로 지도자를 비롯한 온 국민이 외세의 침략에 철저히 대비를 하였습니다.
[ 국경선에 설치된 만네르하임라인 방어물 ]
전술한 바와 같이 전쟁이 발발하여 별다른 저항없이 소련군이 핀란드 영토 깊숙이 들어오고 열흘이 지나자 침략자들은 서서히 지쳐갔습니다. 별다른 핀란드의 저항을 받지 못하자 자만의 극치를 달린 소련군은 모든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부대를 재정비하고자 12월 6일 진격을 일시 중지하였습니다. 이때 만네르하임은 배후에 준비시켜 놓은 6개 사단을 방어선에 전진 배치하면서 드디어 회심의 반격에 나섭니다.
[ 설상복은 물론 동계전투용 피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소련군 사진의 자신만만한 모습은 얼마지나지 않아 피눈물로 바뀝니다 ]
12월 8일, 유격전술을 사용한 소규모의 핀란드군이 2개 연대규모의 소련군 선도부대의 숙영지를 사방에서 동시 기습하였습니다. 무방비의 상태로 예상외의 타격을 입은 소련군은 어둠 속에서 아군끼리 총질을 하는 아수라장을 연출하며 핀란드군 저격수들의 정확한 사격에 하나하나 쓰러져가며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습니다. 소련에게는 잊고 싶을 정도로 악몽 같은 겨울폭풍속의 피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었고 이런 패턴은 겨울전쟁 내내 반복된 일상이 되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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