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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가 22일 오전(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첼시와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연장까지 이어진 120분간의 대사투 끝에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6-5로 극적으로 이겨 1968년, 1999년에 이어 세 번째 유럽 챔피언에 올랐다. 그러나 4강전까지 4연속 풀타임을 뛰며 결승행을 이끈 박지성은 18명의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불운을 겪었다. 아무도 예상못한 귀결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본래 중앙 미드필더 출신인 오언 하그리브스를 오른쪽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깜짝 결정을 통해 박지성을 엔트리에서 빼는 강수를 뒀다.
퍼거슨의 운명론에 빗댄다면 박지성에게는 가혹한 운명이었다. 예상못한 파격에 대해 맨유 홈페이지(www.manutd.com)는 ‘끊임없이 뛰어다니며 맨유를 모스크바행으로 이끈 박지성이 빠진 것은 가장 큰 충격(The Biggest Shock)이었다’고 평했고, 왼쪽 풀백 에브라 또한 “박지성이 결승전에 못뛴 건 나에게 큰 고통(Big Pain)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승부는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혈전으로 진행됐다. 맨유는 전반 26분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의 선제골로 승기를 잡았지만 전반 45분 프랭크 램퍼드에게 동점골을 내주며 이후 주도권을 첼시에 뺏겼다. 후반에 첼시의 중원장악에 막혀 제대로 힘을 써보지 못하고 끌려다녔고, 몇 차례 위기를 넘기며 연장승부까지 펼쳤다. 현지시간 오후 10시45분 시작된 경기는 자정을 훌쩍 넘기고 이튿 날까지 진행됐고, 혈투는 결국 ‘잔인한 11m의 룰렛’인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퍼거슨 감독의 운명론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 선축을 한 맨유는 세 번째 키커 호나우두가 어이없는 실축으로 끌려갔고 4-4 상황에서 첼시의 다섯 번째 키커 테리의 킥만 성공한다면 우승이 날아갈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신은 이때 장난을 걸었다. 비가 와 젖은 그라운드 때문에 테리는 킥하는 순간 미끄러지며 중심을 잃었고, 그가 킥한 공은 오른쪽 골문을 벗어나 버렸다. 이후 페이스는 맨유에 넘어갔다. 첼시의 일곱 번째 키커 니콜라 아넬카의 킥이 맨유 반데사르의 선방에 막히며 경기는 그렇게 끝나 버렸다.
경기 후 테리와 호나우두는 진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눈물의 의미는 달랐다. 한 명은 지울 수 없는 멍에 탓에 슬픔에 잠겼고, 또다른 한 명은 실축으로 지옥까지 갔다가 천당에 오게 된 감격을 맛봤다.
오광춘기자 okc2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