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한복판에서 매우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이미 보도가 됐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삼청동 입구의 국제갤러리에서 S대 K교수가 'Post 1945'란 퍼포먼스를 했는데, "여러분 사이를 유유히 걸어다니며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창녀가 누구인지 찾아낸 분에게 120만원을 지급한다"고 한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자극 불감증시대'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 안내 문구면 눈이 번쩍 뜨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시장에 가슴 높이쯤 붙은 안내문에는 '지금 이곳에는 의도적으로 창녀가 초대되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관객들 누구도 누가 창녀인지를 모르므로 그녀의 옷차림, 얼굴 화장, 헤어스타일, 걸음걸이, 분위기 등등을 보고 집어내라고 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 공식적으로 '창녀'란 직업은 없다(어떤 신문은 이 퍼포먼스 기사를 쓰면서 아무래도 민망했던지 '성매매 여성'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그런데도 작가는 창녀를 초대했다고 했고, 우리가 하는 일(직업)에 따라 외모와 옷차림이 전형적으로 결정될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고 있었다. 작가는 우리가 이미 오래전에 땅에 묻어 버린 사회 차별적 외모의 선입견을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예술의 이름으로, 예술을 방패막이 삼아 시도할 수 있는 행위에도 분명히 미학적 최저 한계선은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 예술이란 인간만이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생면부지의 여성에게 다가가 "당신 창녀 맞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폭력적인 욕설이다. 네가 범인이지? 네가 살인자지? 네가 거짓말쟁이지? 네 아빠 ○○지? 하는 식의 어떤 모욕보다 인성(人性) 파괴적이다.
이날 전시 개막 한 시간 반 만에 '창녀'를 정확히 집어낸 사람이 있었다. 20대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나는 그저 낯선 사람에게 '당신 창녀냐'는 질문을 던질 용기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상금을 건넨 K교수는 "1945년 이후 한국 사회에 정착된 자본주의의 모순을 고발하고, (타인에 대한) 예의와 윤리의 한계에 질문을 던지려 했다"고 말했고, 국제갤러리 측은 "이 시대를 적나라하게 꼬집는 기획"이라고 자평했다고 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술은 무엇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린테우스1'이라는 네티즌의 생각처럼 한 사람은 60만원에 몸을 팔고, 한 사람은 120만원에 사람의 도리를 팔았다면 도대체 누가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가. 그들은 100만원 안팎의 돈이면 몸이든 마음이든, 정신이든 윤리든 뭐든 팔아 치울 수 있는 사회에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었을까. 혹시 그들은 이번 퍼포먼스가 그런 모순을 드러낸 '예술적 증명'이라고 말하고, 그 정도 엽기와 도발을 용인할 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해 있다고 증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예술이란 그런 것일까. 그날 '유유히' 전시장을 둘러본 우리들은, 그것을 기사로 게재하고 읽은 우리 모두는, 남창이 되고 창녀가 된 것은 아닐까. 그날 전시장에는 이와 별도로 토끼 인형 속에 북한 출신 불법 체류 노동자 이만길씨가 누워 있다고 돼 있고, 또 영상 작품에는 동티모르 출신 외국인 노동자라는 남자도 등장한다고 했는데 둘 다 가짜였다. 그렇다면 혹시 그곳에서 창녀 역할을 한 여성도 진짜 직업 여성이 아니라 차라리 이번 퍼포먼스에 참가하고 있는 익명의 배우였던 것은 아닐까.
이쯤 되면 이번 전시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 비틀기인지 '의도적으로' 흐려져 있는 것이며, 정말 '의도'를 갖고 그 일을 벌였다면 그들은 예술적 범죄를 자행하고 유유히 자리를 뜬 것이 된다. 예술은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무엇이 되어서는 안 되는 하한선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김광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