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Minor Leaguer Reports [ 4 ]
그 힘을 이용하고자
글 [ 3 ] 처럼 자의에 의해서 추축국에 가담한 국가들입니다. 그런데 앞전에 설명한 국가들과는 일견 비슷한 면도 있지만 조금은 차이가 있습니다. 추축국이 좋았다기보다는 독일이나 일본의 주적들이 더 싫어서 추축국에 가담하거나 아니면 독일이나 일본의 힘을 빌어 자국 또는 정권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추축국에 참여한 나라들 입니다.
[ 나찌의 힘을 빌려 유고슬라비아의 맹주가 되려하였던 크로아티아군 ]
핀란드 Finland
사실 제2차 대전 당시 핀란드가 소련과 벌였던 겨울전쟁 ( Winter War 1939~1940 ) 과 실지회복을 위한 계속전쟁 ( Continue War 1941~1944 ) 은 다른 전역과 비교하여 상이한 점이 많습니다. 그중 가장 큰 차이라면 전쟁의 성격이 오로지 소련을 상대로 벌였던 反제국주의 독립전쟁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 추축국 가담 당시의 핀란드국기 ]
겨울전쟁 당시에 핀란드는 영국과 프랑스의 후원을 받았으나 계속전쟁 때는 독일편에 붙어 소련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1941년 연합군으로 전쟁에 참전한 미국의 경우는 당시 독일과 한편이 되었던 핀란드를 적으로 여기지 않아 선전포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만큼 핀란드와 소련의 전쟁은 역사적으로도 제2차 대전의 독소전과는 별개의 전역으로 여기고 있을 정도입니다.
[ 핀란드에 공급된 독일의 Me-109 와 미제 수송기 DC-2 핀란드의 미묘하였던 입장을 대변하는 모습 같습니다 ]
계속전쟁 초기에는 겨울전쟁에서 잃었던 실지회복의 꿈을 이루는듯하였으나, 결국 1944년 7월 31일 패전하여 국토의 많은 부분을 소련에 할양하고 강화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전후 동부유럽의 여타 패전국처럼 소련의 위성국으로는 전락하지 않고 다만 냉전시기에 친소 중립정책을 펼치는 조건으로 국권을 유지 할 수 있었습니다.
크로아티아 Croatia
제1차 대전 직후, 승전국 세르비아를 주축으로 하여 탄생한 유고슬라비아왕국은 한동안 발칸반도의 대국으로 군림하던 신생왕국이었으나 내재적으로는 왕국을 구성한 소속 국가나 민족 사이에 많은 문제점을 않고 있었습니다. 그중 같은 南슬라브계통이면서도 종교적으로 상이한 세르비아와 전쟁 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일원이었던 크로아티아의 대립은 상당히 심각하였습니다.
[ 추축국 가담 당시의 크로아티아국기 ]
유고슬라비아왕국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이자 패전국의 일원이었던 크로아티아는 승전국 세르비아로부터 간섭과 차별을 많이 받았는데 제2차 대전이 발발하고 유고슬라비아가 독일의 침공으로 와해되자 크로아티아는 추축국의 도움으로 즉시 독립을 선포하고 크로아티아의 나찌라 할 수 있는 우스타샤 Ustasha 극우 민족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자발적으로 추축국에 가담합니다.
[ 세르비아인들을 무참히 학살하여 악명 높았던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
1991년 이후 벌어진 유고내전 당시 세르비아에 의한 인종청소 사건도
사실 이같은 뿌리깊은 원한이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크로아티아는 전쟁기간 동안 세르비아에 대한 철저한 탄압에 들어가 수십만 명을 학살하는 등 전범행위를 이끌어왔으나 1945년 5월 1일 티토가 영도하는 파르티잔에 의하여 그 짧은 독립을 마감합니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가 와해 될 때 이웃 슬로베니아는 쉽게 독립이 되었던 반면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의 침공을 받았을 만큼 두 민족 간의 감정은 아직도 뿌리가 깊습니다.
자유인도 망명정부 Free India
[ 추축국 가담 당시의 자유인도 망명정부의 국기 ]
일종의 해외 망명정부인데 당시 영국의 지배를 받던 인도의 독립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1943년 보세 ( Netaji Subhas Chandra Bose 1897 ~ 1945 ) 의 영도 하에 일본 점령 싱가포르에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당연히 일제의 영향과 지원이 있었고 인도국민군 Indian National Army 이라는 군대도 있었으나 주로 일본군에 편입되어 동남아에서 실전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 1938년 간디와 함께한 보세 (上) 와 추축국 가담 후 대동아공영회의에 참석한 모습 ]
보세는 간디와도 사상적 교분이 있었을 만큼 영국으로부터 인도대륙을 독립시키고자 노력하였던 선각자이기도 하였으나, 문제는 사자를 물리치기 위해 그가 손을 잡았던 상대가 하이에나였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자유인도 망명정부는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던 일제의 좋은 선전수단으로만 이용되다 일본의 패전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 흥미로운 사진인데 2007년 인도를 방문한 아베 전 일본총리가 보세의 후손과 면담하는 장면입니다
일제가 인도의 독립을 도왔다고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서였을까요 ? ]
태국 Thailand
[ 추축국 가담 당시의 태국국기 ( 현재와 동일합니다 ) ]
제국주의 시대 영국과 프랑스의 묵인아래 독립국으로 남아있던 태국은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침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직전 프리디 ( Pridi Phanomyong 1900 ~ 1983 ) 와의 권력투쟁에서 패하였던 태국군 참모총장 송크람 ( Phibun Songkhram 1897 ~ 1964 ) 은 일본에게 동맹을 조건으로 정전을 제의하면서 일본의 후견으로 정권을 획득하였습니다.
[ 송크람은 정권획득을 위해 일본과 동맹을 맺고 일본의 꼭두각시가 되었습니다. 전후 1948년 다시 정권을 잡았는데 쿠데타로 실각하였고 일본으로 도망가서 여생을 보내다 1964년 동경에서 사망합니다 ]
이후 추축국에 가담한 태국은 영국과 미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였고 버마전선에서는 일본 편에 붙어 참전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쇠퇴와 함께 연합군의 반격으로 태국은 패전국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으나, 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 미국의 영향으로 일부 친일 정치인들의 행위로 인정받아 영국과 프랑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패전국의 멍에를 쓰지는 않았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