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Minor Leaguer Reports [ 끝 ]
말로는 중립 ?
역사에는 중립으로 기록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추축국에 협조적이었던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이념적으로는 동조를 하였지만 전쟁에는 직접개입하고 십지 않아서 중립을 유지하였던 경우도 있었고, 추축국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굴복하여 형식적으로는 중립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친독정책을 펼쳤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Spain, Portugal
[ 이베로 유럽의 두 독재자 스페인의 프랑코 (左) 와 포르투갈의 살라자르 ]
피레네 산맥 남쪽에 있던 두 나라는 당시 극우 파시스트 정권이 폭압적인 철권통치를 실시하고 있어 독일이나 이탈리아와 이념적으로 연대의식이 상당히 강하였습니다. 특히 좌파와 내전까지 치르며 정권을 잡은 스페인의 프랑코 ( Francisco Paulino Hermenegildo Teodulo Franco y Bahamonde 1892 ~ 1975 ) 정권은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군사적 개입같은 적극적인 지원 하에 탄생한 정권이었습니다.
[ 어떻게 생각한다면 천수를 누리며 독재를 하였던 프랑코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할 줄 알았던 인물입니다 ]
이와 같은 이유로 스페인은 비록 자원병 형식으로 병력을 파견하는 등 내놓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추축국을 군사적으로도 도와주었지만 형식적으로는 절대 중립을 유지하였고 ( 관련글 참조 ) , 포르투갈의 경우는 극우 정권임에도 지리적 이점을 살려 영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할 정도로 표면상으로는 독일과 거리를 두었습니다. 이 결과 전쟁 이후에도 이들 국가들은 정권을 유지 할 수 있었습니다.
스위스와 스웨덴 Switzerland , Sweden
이들 국가들은 전쟁과정 중 자연스럽게 추축국 세력에 의하여 지리적으로 포위되어 고립 될 수밖에 없었던 국가들이었습니다. 스위스의 경우는 독일 - 독일합병 오스트리아 - 이탈리아 - 비시프랑스에 의해서, 스웨덴은 점령지 노르웨이 - 점령지 덴마크 - 점령지 폴란드 - 점령지 발트해연안국 - 핀란드에 의해서 철저히 외부와 고립 되었습니다.
[ 스위스와 스웨덴은 전쟁 중 추축국세력에 의해 철저히 고립된 형국이었습니다 ]
때문에 연합국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도 직접적으로 연결 할 방법이 없었고 만약 그러한 정책을 추진하면 추축국의 군사적 도발을 불러올 수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추축국의 비위를 맞추는 선에서 표면적으로 중립을 지켜 독립을 유지 할 수 있었습니다. 후일 스위스나 스웨덴이 지도자를 비롯한 국민들의 일치단결된 대응으로 침략을 막았다고는 하나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자화자찬 수준의 공치사일 뿐입니다.
[ 헨리 기상 같은 유능한 지도자에 의해 중립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있었으나
엄밀히 말하면 추축국입장에서 굳이 희생을 하면서까지 점령할 필요는 없는 나라들 이었습니다 ]
추축국이 이들을 침략하여 점령한다는 것은 당시 전력으로는 손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고립 된 지역을 침략하는 것 보다 친독적인 중립정책을 쓰도록 압력을 행사하여 대외 무역과 금융조달창구 그리고 기계류 및 철광석 공급처로 이들 국가를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중립지역으로 남겨진 것으로 보는 시각이 타당 할 듯합니다.
터키 Turkey
제1차 대전 당시 독일, 오스트리아와 더불어 주요 동맹국이었던 오스만제국의 후예인 터키는 지정학적인 위치상 독일뿐만 아니라 연합국 측으로부터 구애를 받은 나라였습니다. 전쟁말기 국익을 고려하여 형식적으로 연합국 측의 손을 들어 주었지만, 전쟁 내내 터키는 추축국에 가담 하지는 않았고 연합국 측과도 일정 거리를 두면서 가깝게 지내지도 않았습니다.
[ 4호 전차로 무장한 터키의 기갑부대
중립이었지만 독일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
그 이유는 유럽에서의 전쟁을 그냥 수수방관만 하여도 전후 처리과정에서 이익을 챙길 수도 있었던 제1차 대전에 섣불리 뛰어들어 코피가 터지고 제국이 붕괴되는 뼈저린 기억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후 패전국으로 같은 아픔을 겪었던 독일에게 우호적이었던 것만큼은 사실이었고 대량의 독일제 무기를 구입하여 군비를 강화하였을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 하였습니다.
이라크 Iraq
영국의 오랜 간섭과 지배로 반영적인 정서가 강하였던 이라크는 당시 민족주의자였던 알-갈리니 ( Sayyad Rashid Ali al-Gailani 1892 ~ 1965 ) 가 정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표면적으로 중립을 주장하였지만 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 추축국세력이 득세하자 이 기회에 영국세력을 중동에서 완전히 몰아내려 뒤로는 적극적으로 이라크를 추축국에 가담시키려고 노력 하였습니다.
[ 이라크 기갑부대 (上) 과 1941년 이라크를 침공한 영국군 ]
하지만 이런 정황을 사전에 파악한 영국이 전쟁 수행을 위한 원유확보와 북아프리카 전선의 배후위협을 제거하고자 이라크에 대한 선제 침공을 강행하였습니다. 결국 연합국의 적극적인 저지로 이라크는 추축국 가담이 좌절되어 어쩔 수 없이 강요에 의해 중립을 지켰고 제2차 대전 후인 1947년까지 영국에 의해 군사적으로 점령당하였습니다.
아르헨티나 Argentina
극우세력이 득세하던 남미의 아르헨티나는 독일 및 이탈리아 극우 정권과 전쟁 전부터 상당한 유대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메리카대륙의 맹주인 미국이 연합국 측에 가담한 후 많은 압력을 당하였고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중립적인 노선을 견지합니다. 하지만 알려진 대로 전후 많은 독일 전범들이 아르헨티나로 도망간 것처럼 친독적인 중립노선을 유지한 나라입니다.
[ 아이히만의 예에서 보듯이 아르헨티나는 전후 많은 나찌 전범들이
도피처로 선택하였을 만큼 친독적 중립국가였습니다 ]
바티칸 Vatican
바티칸은 특성상 지금도 중립을 유지하여야만 하는 국가이고 물론 당시에도 표면적으로 중립을 유지하였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Pope John Paul II 1920 ~ 2005 ) 가 ' 가톨릭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시기 ' 라고 고백하였을 만큼 당시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독일과 이탈리아 극우정권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특히 전쟁 중 벌어진 수많은 전범행위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여 추축국을 옹호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 제2차 대전은 가톨릭 역사에 있어 부끄러웠던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
지금까지 몇 회에 걸쳐 살펴보았던 것처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독일-일본-이탈리아의 3국외에 많은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추축국의 편에 서거나 또는 소극적으로 동조내지는 묵인하였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 중 대다수가 국제 사회의 어쩔 수 없는 역학 관계 때문에 원하지도 않는 전쟁의 폭풍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음 또한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 결국 힘이 없으면 강대국의 눈치를 보아야하는 마이너리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
때문에 이들 마이너리거 국가들을 무조건 지금의 잣대로 일률적으로 재단하여 추축국에 가담하거나 동조하였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나쁜 집단이었다고 함부로 매도 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인 만고불변의 진리는 내가 힘이 없을 때 눈치를 보면서 생존을 추구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고, 그것이 바로 힘이 없는 자들의 비애라 할 것입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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