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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 합니다. 전 학년에서 친구들에게 인기 있었던 아이는 새 학년에서도 여전히 인기 있는 아이가 되고 싶어 하고 그렇지 않았던 아이도 새롭게 시작하는 교실에서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외향적인 아이조차도 학기 초에는 누구와 어떻게 사귀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워하곤 합니다. 많은 아이는 새 학기가 곤혹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선택하는 전략이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가만히 있기는 쑥스럽기 때문에 누군가가 먼저 아는 체 해주기를 기다리면서 다른 일을 합니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문자를 보내거나, 게임을 합니다.
학기 초의 교실풍경을 보면 많은 아이가 가만히 앉아 각자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 년 가운데 교실이 가장 조용한 때가 바로 학기 초이기도 합니다. 서로 말을 걸어 주기를 기다리면서 서로 다른 일을 합니다. 이 상황에서 어떤 아이가 용기를 내서 친구에게 말을 건네는 일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다 눈이 마주치는 친구가 있으면 좋으련만 다들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있는 친구에게 말을 시키면 싫어할 것만 같습니다. 음악을 듣느라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는 친구는 아는 체하면 짜증을 낼 것만 같습니다. 책을 읽으며 동시에 음악을 듣고 있는 친구는 방해한다고 화를 낼 것만 같아 쉽게 말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다 슬그머니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식으로 행동해 버립니다.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한 사람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등 자신만의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 행동은 지금 나에게 가능하면 말을 걸지 말라는 낯가림의 신체 언어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누구나 쑥스러워 하는 초기 만남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요사이 학교에서는 많은 활동이 모둠별로 이루어집니다. 학기 초에 결성된 모둠에 따라 공부나 숙제, 발표 등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학기 초에 수줍음 행동이나 낯가림 행동을 하는 아이는 이 모둠 결성에서 주도권을 얻지 못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어떤 모둠에도 속하지 못하고 혼자서 학교 활동을 하거나 모둠에서 배제된 아이끼리 모인 모둠에서 힘겹게 학교생활을 해 나가기도 합니다. 학업성취도가 우수하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이겠지요.
학기 초에 심하게 낯을 가리거나 수줍게 보이는 아이는 본질적으로 그렇다기보다는 주위 친구에게 수줍거나 낯가림 행동을 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는 상호작용의 많은 부분이 비언어적 의사소통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등의 친구거부 행동을 하면서도 왜 다른 친구가 말을 시키지 않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속내는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친구들이 마음을 읽어 주기를 바라면서 혹은 알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면서 반응해 주지 않는 친구들에게 속상해 하고 그 속상함이 또 혼자 있는 행동을 하게 하는 악순환으로 흐르면서 결국은 위축행동까지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종래에는 능동적이고 활동적인 모둠 구성원이 되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의 의사전달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35% 정도이고 나머지는 비언어적 신체언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언어 교육만큼이나 신체언어도 중요하게 교육되어야 합니다. 학교에서 책을 읽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노는 시간에 책을 읽는 행동은 친구를 의도적으로 밀어내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노는 시간에는 친구에게 가까이 가서 눈을 맞추고 미소짓는 것이 공부시간에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신체언어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먼저 아이에게 다가가서 눈을 맞추고 미소지으며 말을 건네는 행동을 실천한다면 아이 역시 학교에서 신체언어를 어렵지 않게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