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文學산책 마당

겨울 편지를 쓰는 밤 - 박남준

鶴山 徐 仁 2008. 2. 7. 09:35


겨울 편지를 쓰는 밤 - 박남준


무서리가 눈처럼 하얗게 내리던 날들이 지나갔다.
툇마루에 떠다 놓은 물이 꽁꽁 얼음이 되는 날들도 있었다
그 겨울밤 문밖에 나서면
쩡쩡거리는 소리가 들릴 듯한 푸른 별들 부끄러워서
고개를 묻던 날들이 있었다 반문처럼
그 별들에게 보이지 않는 길의 나침반을 묻기도 했었다.


불쏘시개로 쓰던 잔 나뭇가지들이며 소나무잎들 다 떨어진 지도 십여일에 가깝다
나무청의 나무들은한 사흘은 버틸 수 있을까 새벽부터 구들장이 한기를 느끼게 한다
새우처럼 웅크린 채 미적거린다 새들이 또 흉을 보고 있겠지 갈퀴와 큰 자루를 찾아
들고 앞산에 오른다
노란 소나무잎들 어느새 저렇게 수북하게도 떨어져 내렸구나 나 여기 숲에 살며
그간 나무 한 그루심지 않은 채 나뭇잎들 긁어가거나 새파랗게 살아 있는 나무들
베어 오지 않았던가 내 한 몸 따뜻한 잠자리를 얻고자 그 나무들 깜깜한 아궁이 속에
들이밀고 불을 때며 살아왔는데
갈퀴를 내려놓고 한동안 우두망찰로 앉아 있었다 해가 뉘엿거린다 너 뭐 하니 저만큼에서
직박구리가 꾸짖음처럼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 그래 나무하러 왔었지 갈퀴나무 한 짐을
지고 서둘러 내려온다


툇마루에 앉아 담배 한 대 불을 댕긴다
뜰 앞에 무성하던 지난여름의 풀들이,
나무들의 낙엽들이 경배를 하듯 낮게 엎드린 채
다시 돌아올 거름으로 돌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나도 그 길을 갈 수 있겠지
무엇에게인가의 거름이 되어 돌아갈 수 있겠지
하루해가 진다
새들이 돌아간 겨울 저녁 숲에 적막처럼 어둠이 깃든다
되뇌어본다
이 겨울 나의 오늘이 참되지 않고 어찌 내일의 참됨을 바라랴


편지를 써야겠다 세상의 모든 그리운 것들을 위하여
올겨울 길고 긴 편지를 써야겠다
내가 나에게 써야겠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어찌
세상의 그리운 것들에게 떳떳할 수 있겠는가
뉘우침의 편지를 그리움의 편지를 쓰는 그 겨울밤
밤새 세상을 하얗게 눈은
흰 눈을 내릴 것이다 그 눈길 위에 첫발자국을 새기며 걸어
편지를 전하러 갈 것이다 그 발자국을 따라 그리운 것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올 것이다



Remembrance / Ernesto Cortaz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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