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아침논단] 여성과 권력

鶴山 徐 仁 2008. 1. 25. 22:26

이재경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美메릴랜드대 객원교수

 

 

안식년이라 지난 가을부터 미국에 머물고 있는데, 이곳은 신년에 들어서면서 대통령 후보 선출 예비선거로 떠들썩하다. 특히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의 접전은 남의 나라 선거 이상의 흥미를 제공한다.

현재 클린턴은 여성 표에서, 오바마는 흑인 표에서 우세하다. 텔레비전 토론에서 두 사람은 구체적인 정책에서는 열띤 논쟁을 벌이지만 자신들이 여성과 흑인이라는 사회적 소수자(minority)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음을 말하며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소수자의 경험을 강조하는 선거 전략은 차별 현실과 권력에 대한 인식이 다른 백인 후보자들과 차이가 있음을 드러내는 정체성의 정치학(identity politics)이다. 쉽게 말하면 불리한 입장을 겪어 본 사람이 불평등의 현실을 더 잘 보고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과 흑인들이 각각 두 사람을 지지하는 것은 '이기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같은 경험을 한 후보가 자신들이 처한 불리한 입장을 대변하고 사회적 권력을 재편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평등의 추구는 권력(power)을 나누자는 것이다. 흔히 지배와 착취를 통해 행사되는 힘으로서의 권력은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독재 권력, 권력 남용 등에 대해서는 비판이 따른다. 반면 정치, 법, 경제적 권리에서의 평등을 추구하는 권력의 재편은 정의(justice)의 실현으로 이해되며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평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많은 논쟁과 투쟁이 뒤따른다. 19세기 여성의 참정권 운동이나 20세기 남아프리카의 흑백차별정책 폐지운동, 미국의 민권운동 등이 그 예이다. '무엇을 평등(또는 불평등)으로 볼 것인가?' '어떤 집단이 더 많은 권력을 가져야 하는가?' '어떤 집단은 권력을 가지면 안 되는가?' '권력유지에 대한 정당성은 누가 부여하는가?' 등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나 진리는 없으며,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기도 쉽지 않다.

"여성부는 여성권력을 주장하는 사람들만의 부서다"라고 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발언은 앞에서 말한 권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근거로 한 것으로 추측된다. '여성 권력'이 권력 지향적인 여성을 지칭하는 것인지,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에게 정책을 통해 권리를 찾아주고 권력을 나누는 것을 문제로 보는 것인지 불확실하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대통령 당선인의 여성문제에 대한 낮은 이해와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 2007년 여성의 정치·경제적 참여와 의사결정권, 소득 수준 등을 평가하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여성권한척도 조사에서 한국은 93개국 중 64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여성권력'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임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1980년대 이후 여성운동이나 여성부(또는 여성전담부서)는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정책 성과에 대한 평가보다는 여성의 이기심이나 과도한 권력 추구 행위로 감정적인 비난을 받아 왔다. 왜 그런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정치와 권력은 남성의 영역이며 몫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과 '권력'은 자연스럽지 못한 조합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이나 장관 등 고위 공직에 진출하려고 하는 여성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남성과는 달리 권력욕이 지나친 사람으로 매도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러한 반응은 권력을 가진 여성 개인에 대한 감정적 불편함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감정적 불편함이 여성정책 또는 사회적 평등 실현에 장애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소수집단의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적 권력을 평등하게 나누고자 하는 노력은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는 행위와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여성정책 전담부서가 '영원히' 존속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동일한 직종에서 남성이 월급 100만원 받을 때 여성이 60만원 받는 엄연한 현실, 세계적으로 여전히 낮은 수준의 여성 권한척도가 남성과 대등하게 올라올 때까지는 평등과 권력에 대한 소수자의 시각을 가지고 국가정책의 기획과 조정을 담당하는 여성전담부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1/24/20080124014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