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역사학
요즘 북한에서 ‘후계자 문제’ 관련 소식이 흘러 나오곤 한다. 김정일 매제 장성택이 노동당 행정부장으로 승진했고 김정일 장남 김정남이 해외에서 북한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이다. 그 때문에 북한 정치의 최대 미스터리로 여겨질 수 있는 후계자 문제가 다시 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면 정권이양은 참 어렵다. 혈통세습을 하는 왕국도 아니고 선거제를 하는 공화국도 아니기 때문에 독재국가 대부분은 안정된 정권이양 메커니즘이 없다. 그래서 통치자가 죽으면 그의 측근들이 정권을 잡으려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소련과 중국의 경험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김일성은 정권이양 문제를 해결하려 그의 절대정권이 절정에 달한 1970년대 초에 후계자를 임명해서 20여 년 동안 훈련시켰다.
그러나 70세에 가까워지는 김정일은 후계자를 아직 지명하지 않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김정일의 사망까지 후계자가 없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북한 정치엘리트 내부의 갈등과 분쟁, 또 이 분쟁에 의해서 야기될 혼란이 생길 가능성은 불가피해 보인다. 물론 후계자가 있을 경우에도 김정일 사망 후에 북한 체제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지만 후계자가 없으면 이 과제는 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김정일이 이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지금까지 후계자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을까? 이 의문을 설명하려는 가설이 적지 않다. 물론 정답을 아는 사람은 김정일뿐이지만 필자는 또 하나의 가설을 제시하고자 한다. 김정일이란 정치인의 목표가 김정일이란 인간의 목표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이다.
역사는 김정일을 체제유지를 위해서 수십만명의 인민을 아사(餓死)시키고 경제를 파괴시킨 독재자로 평가할 것이다. 그래도 인간으로 본 김정일은 어느 정도로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요즘 나온 증거를 보면 김정일이라는 인간은 자식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연인들을 돌보는 남자로 나온다. 또, 고립국가인 북한에서 김정일만큼 해외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세계동향을 잘 이해할 뿐만 아니라 이 경향을 이용할 줄 안다. 아무것도 없는 북한이 남한은 물론 중국, 미국과 같은 강대국을 교묘하게 조종할 수 있는 것은 김 위원장의 국제정치 분석력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세계동향을 잘 아는 김정일은 북한 체제에 미래가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소련식 경제구조를 지탱하려 노력했던 정권은 다 무너졌다. 김정일은 분단국가인 북한에서 중국식 개혁도 체제붕괴와 흡수통일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개혁을 통해서 나라를 재생하기 어렵다는 걸 안다. 교묘한 외교와 쇄국정책을 통해서 체제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말하면 체제붕괴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할 근거가 있다.
이러한 조건하에 아들을 후계자로 임명하는 것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독재체제가 붕괴할 때에 나라를 다스린 사람은 거의 불가피하게 희생양이 된다. 그는 혼란 속에서 암살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새로운 정권하에서 감옥에 갈 가능성이 높다. 김정남이나 김정철 통치 밑에서 체제가 무너지면 그 불쌍한 후계자만이 아니라 김정일이 사랑하는 온 가족들은 특권과 재산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반대로 김정일의 사망 후 야심있는 군인이나 고급 간부가 정권을 잡으면 체제가 무너질 경우에도 국민들은 거의 모든 책임을 그 군인과 그의 측근들에게 돌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김정일의 가족은 벌을 피할 뿐만 아니라 스위스은행에서 숨어 있는 돈 일부도 유지할 희망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후계자 문제를 결정해야 하는 김정일 앞에는 가족 구원이냐 아니면 체제구원이냐 하는 선택이 놓여 있다. 그는 참혹한 독재자일 뿐 아니라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이기도 하므로 이 선택은 결코 쉽지 않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2/11/20071211014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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