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하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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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 대학 전경
며칠 전 독일 연주 여행에서 돌아와 모처럼 하버드 대학 계정의 이메일 함을 열었다. 몇몇 친구들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친구는 “21세기에 성공하는 의사가 되려면 의학은 물론, 경영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메디컬 스쿨과 비즈니스 스쿨을 동시에 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했다. 다른 한 친구는 “대학 졸업 후 런던에서 2년간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아무래도 경영보다는 의학이 나의 적성인 것 같아 다시 의학 박사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는 내용을 보냈다.
내가 하버드에서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이들 친구가 ‘악착 같은 공부벌레’로만 보였을 것이다. 하버드에서 인문학 과정을 밟겠다고 하자 실제 많은 분들이 “하루 종일 첼로 연습과 공부만 하려나 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체험한 하버드는 학생들이 공부에만 전념하기를 원하는 대학은 아니다.
짧은 대학 생활 동안, 나는 학생들이 몇 가지 과목에 쏟는 시간보다는 그 외의 인생 공부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학생들은 세상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학교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런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하버드는 우선 학생을 뽑을 때부터 학생이 어떤 관심 분야를 지니고 있는지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원서를 제출할 때 인생관을 바꾼 사건이나 경험에 대한 에세이를 제출해야 하고, 내가 가장 많이 읽는 신문과 잡지, 나의 별명, 나를 가장 짜증나게 하는 것 등 지원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다양한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
대학은 또 지원 학생이 학교를 새롭게 만들고 활성화시키는 데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중요하게 여긴다. 학교가 원하는 학생이 있으면 학장이나 교수들, 또는 관심 분야가 비슷한 하버드 학생들과의 만남을 직접 주선해준다. 한마디로 학생을 ‘스카우트’하는 것이다. 끊임없는 호기심을 가진 학생이라면, 좋은 성적 또한 갖추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학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입학하고 나면 2학년 2학기 정도까지는 전공을 여러 차례 바꿀 수 있다. 물론 전공을 바꿀 때에는 해당 전공 과목 학장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하지만, 적성과 관심 분야에 맞지 않는 공부를 억지로 시키는 것보다는 전공을 바꾸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 학교의 입장이다. 전공 가운데 본인에게 딱 맞는 분야가 없다 싶으면 학생이 4년간 여러 가지 수업을 통해 새로운 분야에 대해 논문을 쓰겠다고 학교에 제안서를 제출할 수 있다. 이런 ‘맞춤 전공’은 학교의 승낙을 받기 아주 힘들지만, 본인의 숨은 의욕을 다시 발견하고 적성에 맞는 학업으로 들어설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많은 학생들은 대학 안에서 새로운 모임들을 만든다. 내 친구들도 문학이나 실내악 모임 등을 시작했는데, 졸업한 뒤 후배들에게 그 모임을 물려주고 계속 유지되면 곧 하버드의 새로운 관습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들을 통해 학교는 더욱 다양해지고 새로워진다.
시험은 거의 주관식 형태로 한 학기에 2번 정도뿐이다. 소규모 강의일수록 시험 대신 질문과 토론 논문 작성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결국 나만의 해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의 성격과 개성을 기르는 훈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줄줄 외워서 시험 문제를 푸는 것은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내가 연주하는 음악이 마치 내가 창조한 음악인 것처럼 친밀하게 여길 수 있어야 감동이 있는 연주가 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나의 친구들에게 하버드 대학이 목표가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장한나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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