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이혼 시대] <上> 100만명 넘은 이혼자
가부장적 남편에 ‘참지않는’ 아내 늘어나
10건중 7건꼴 여성이 먼저 “헤어지자”
노후·양육부담에 아내불륜 눈감는 남편도
김동섭 기자 / 최수현 기자
중소기업인 A사의 기획실 직원 14명 중 이혼자가 2명이다. 48세의 여성 부장과 43세의 남성 직원이다. 이혼한 지 3년이 된 여성 부장은 대학생 아들 2명을 데리고 살고 있고, 작년에 이혼한 남성 직원은 중학생인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한 반 30여 명의 학생 가운데 3분의 1 가량이 부모가 이혼한 경우라는 이야기가 떠돌 정도다. 중년 이혼은 이젠 직장 사무실이나 전국 어디서나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영하·선우은숙씨 부부처럼 20여 년을 함께 살아온 ‘잉꼬 부부’ 가정이 한순간에 깨지는 현실이다. 본지가 24일 통계청이 5년마다 실시하는 ‘2005년 인구센서스 결과’를 분석한 결과, 40·50대 중년 남녀들은 17명 중 1명이 이혼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40·50대 이혼자는 전체 이혼자의 70%를 넘는 77만6041명으로, 2000년(44만3166명)에 비해 75% 늘어났다. 2000년에 40·50대 이혼자는 27명 중 한 명꼴이었다. 15세 이상 전체 인구 중 이혼자는 114만명으로 1995년, 2000년 인구센서스 조사의 36만7000명, 70만5000명보다 크게 늘어났다.
◆남편은 70년대식 가부장 권위, 재산 나누기 요구하는 40·50대 여성들=결혼한 지 16년 된 맞벌이부부 임모(48)씨는 회사원인 남편(50)이 외도를 했다며 최근 이혼했다. 남편은 “술 많이 먹는 것이나 남자가 외도하는 것은 사업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달랬지만, 임씨는 “이혼해 재산도 나누자”며 완강했다. 남편은 임씨에게 “아내 씀씀이가 너무 헤프고, 본가의 시부모들도 잘 찾아보지 않는다”며 재산 나누기를 거부했고, 말다툼은 폭행으로 이어졌다. 결국 재판정에 선 이들 부부는 “남편이 부부관계를 회복할 노력을 하지 않고, 음주와 폭력을 일삼았다”며 아파트 등 재산 15억원을 절반씩 나누라는 판결을 받았다.
40·50대 중년 이혼이 늘고 있는 것은 이 세대의 남녀 간 의식 차이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학중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은 진단한다. 강 소장은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져 남녀 평등의식이 강해졌는데도 남성들은 가부장적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인 김준기 정신과 의사도 “여성들이 예전에는 남편의 외도나 학대, 무관심을 참고 살았으나, 요즘 40·50대 여성들은 더 이상 참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부인 불륜에 속수무책인 남편들도 많다=대기업 이사인 이모(52)씨는 20년을 함께 산 아내를 상대로 최근 이혼소송을 냈다. 이씨는 부인의 휴대전화에 남겨진 메시지를 보고 부인이 결혼 전에 사귀었던 직장 상사와 만나고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메시지에는 “남편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저주한다. 아이들이 대학 가면 결혼하자”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도 부인은 오히려 남편에 대해 의처증 환자라며 먼저 이혼하자고 나왔다. 화가 치민 이씨는 아들 두 명의 양육을 맡는 대신, 아들의 양육비도 부인에게 낼 것을 요구했다. 그리곤 부인과 상대 남성에 대해 위자료청구 소송을 냈다.
이처럼 부인의 외도로 이혼하는 남편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혼 전문 변호사인 김수진씨는 “5년 전만 해도 부인의 외도로 이혼 상담하는 남편의 경우가 한 달에 2~3건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한 달에 10건이 넘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인의 외도를 알고도 이혼을 주저하는 ‘무늬만 부부’들도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 직원인 최모(51)씨는 부인이 다른 유부남과 만나는 것을 알지만, 속수무책이라고 했다. 최씨는 “언제 퇴직 당할지 모르는데 아이들을 혼자서 키울 자신이 없고, 이혼하면 재산도 나눠야 하는데 그러면 노후를 어떻게 살겠느냐”고 한숨만 쉬었다.
기러기 부부 가운데도 이런 경우를 당하는 사례가 많다. 서울의 모 대학 교수인 김모(48)씨는 3년 전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갔다 오면서 부인과 중학생인 두 아들을 남기고 왔다. 김 교수는 부인이 바람 피는 사실을 알고 귀국을 권했지만, 부인과 두 아들은 거부했다. 김 교수는 이혼상담을 한 뒤 “이혼해도 자녀 양육·교육비는 계속 보내야 한다는 게 판례라고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변화하는 여성들의 가치관=‘경우에 따라 이혼할 수 있다’ ‘이유가 있으면 하는 편이 좋다’며 이혼에 대한 긍정적인 비율이 2000년 45.7%에서 작년에는 48.6%로 늘어났다(보건사회연구원 작년 7월조사). 이 때문에 이혼을 부인이 먼저 제의하는 경우가 10건 중에 7건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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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이혼 “경제문제 탓” 가장 많아
조기실직·퇴직 늘어난 사회 분위기 반영
남편의 무능→불화→가정폭력으로 이어져
김동섭 기자
중소업체에 다니던 남편이 지난 2002년 실직한 뒤 의처증을 보이는 바람에 3년 전 별거에 들어간 정모(49)씨는 최근 가정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남편이 말로는 이혼에 합의해 놓고도 “아이들은 내 핏줄이니까 내가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실직한 뒤 재취업이 안 되자 술로 지새우기 일쑤였고, 그런 상태에서 아이들을 혼자서 키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씨는 “남편과 갈라서게 된 근본 원인은 남편의 실직”이라고 말했다. 그는 “딸이 결혼하는데 부모의 이혼이 문제가 될까봐 정식 이혼을 미뤄왔다”며 “남편이 경제적으로 무능해지면서 성격마저 변해 더이상 함께 살 수 없을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7월 이혼한 여성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40대는 이혼 사유로 경제 문제를 가장 많이 꼽았다. 성격차이, 외도 등은 그 다음이었다. 50대도 성격차이와 함께 경제문제를 가장 많이 지적했다. 반면 30대는 이혼사유로 성격차이를 가장 많이 들었고, 이어 경제문제, 외도 순으로 꼽았다.
이처럼 40·50대에서 경제문제를 이혼사유로 꼽은 것은 최근 조기 퇴직과 실직 등 사회분위기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가정에서는 부부간의 말다툼이 잦아지고 가정 내 폭력, 대화단절을 거치면서 이혼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김승권 보건사회연구원 사회정책본부장은 “40·50대는 자녀들의 학비나 생활비가 많이 드는 때인데, 경제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가정 내 불화가 더욱 심해져 이혼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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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여성 보호 법적장치 늘어
재산 절반 분할… 재혼해도 연금
최수현 기자
이혼 여성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가 많아져 여성들의 이혼 결심을 쉽게 하도록 하고 있다. 우선 재산을 남편과 40~50%씩 나누라는 법원 판결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결혼 25년차인 이모(52)씨의 경우가 그렇다. 이씨는 남편(55·건축업자)의 외도로 이혼재판을 벌여 아파트 등 23억원의 재산을 절반씩 나누었다. 이씨는 또 8년 뒤 60세가 되면 남편이 받을 국민연금(월 110만원 예상)의 절반 가량인 40만원 정도를 받게 된다. 국민연금은 이혼한 부인에게 결혼 기간에 비례해 남편의 연금을 절반 주고, 부인이 재혼해도 같은 액수를 계속 지급한다. 또 아내의 불륜으로 이혼해도 결혼 후 남편과 일군 재산을 절반씩 보장하는 것이 최근의 추세이다.
그러나 재산을 나눌 것이 없는 저소득층들은 이혼으로 오히려 빈털터리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 택시회사에 다니는 이모(50)씨는 술 먹기만하면 행패 부리다가 부인의 이혼 요구로 이혼하게 됐다. 그의 재산은 아파트 전세금과 예금을 합쳐 1억2000만원이지만, 부인에게 위자료로 5000만원을 주기로 했다. 결국 아파트 전세금을 빼고, 남은 것은 7000만원뿐이다. 이씨는 요즘 10평짜리 원룸에서 자취생활을 한다. 그는 이혼 후 아내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씨는 “아내와 살 때가 그래도 행복한 것인데, 이제는 모두 엎질러진 물이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