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남해 금산 쌍홍문이 좋아지는 까닭

鶴山 徐 仁 2007. 6. 21. 08:35
[오마이뉴스 김연옥 기자]
▲ 금산 쌍홍문에서 바라본 남해 바다.
ⓒ2007 김연옥
지난 6일 유치원에서 놀이 수학을 가르치는 조수미씨와 단둘이서 남해 나들이를 했다. 우리는 오전 8시 30분께 남해고속도로 서마산 I.C 입구에서 만나 진교 I.C를 거쳐 아름다운 현수교남해대교를 달렸다.

나는 남해군이라 하면 대학 시절의 추억이 어린 남해대교가 늘 생각났다. 상주해수욕장에 가고 싶어 어렵게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내고 고향 친구들과 그 당시 명물인 남해대교를 걸으면서 마냥 좋아라 했던 풋풋한 여대생의 내 모습이 문득 그립다.

우리는 한려해상국립공원(금산지구) 복곡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근처 식당에 들어가 산채비빔밥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저수지 풍경이 잔잔하고 아늑했다. 금산(681m, 경남 남해군 상주면) 산행을 하고자 한다면 상주해수욕장 쪽에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는 것이 훨씬 나을 듯하다.

복곡주차장을 이용하는 사람 대부분은 편도 요금을 내고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10분 정도 지나면 보리암 매표소에서 내리는데, 거기서 15분 남짓 걸어가면 보리암에 이르게 된다.

금산 쌍홍문에서 신선을 꿈꾸다

▲ 쪽빛 바다와 어우러진 남해 금산.
ⓒ2007 김연옥
금산(錦山)이란 이름에는 조선 왕조를 세운 이성계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금산의 본디 이름은 보광산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린 끝에 자신의 뜻대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그 영험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겠다고 말한 것에서 비단 금(錦) 자를 써서 금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거다.

쪽빛 바다,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보리암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 30분께. 우리나라 3대 관음 기도처의 하나로 불리는 보리암은 금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망대 정상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해수관음보살상과 보리암전 삼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제74호)이 있는 탑대로 갔다.

▲ 금산 보리암의 해수관음보살상.
ⓒ2007 김연옥
▲ 보리암전 삼층석탑.
ⓒ2007 김연옥
보리암전 3층석탑은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 월지국에서 가져온 불사리(佛舍利)를 원효대사가 그곳에 모셔 세웠다는 전설이 있지만 고려 시대의 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느 삼층석탑에 비해 키가 작고 몸집도 작아 보였지만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 금산 쌍홍문.
ⓒ2007 김연옥
쌍홍문(雙虹門)을 보지 않으면 금산에 갔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고운 쌍무지개를 뜻하는 이름이지만 첫인상은 해골을 보는 것 같은 기괴한 모습에, 침울하면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곳에 들어앉아 있으면 어찌나 시원한지 신선이 된 기분이다. 게다가 쌍홍문 안의 돌계단은 사람들의 모험심을 자극하는 듯한 비밀스러운 느낌을 주어 우리들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

그리고 쌍홍문 안벽에는 구멍 세 개가 나란히 뚫려 있는데, 누구든 돌멩이를 구멍마다 던져 한번에 다 넣게 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지루한 일상의 유쾌한 유머처럼 재미있는 발상이다. 못 넣어도 친구들끼리 한바탕 까르르 웃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 쌍홍문 안의 돌계단.
ⓒ2007 김연옥
ⓒ2007 김연옥
남해 금산에는 쌍홍문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하는 장군암, 동서남북에 흩어져 있던 네 신선이 모여서 놀았다는 사선대, 불법(佛法)을 지키는 제석천(帝釋天)이 내려와 놀다 갔다는 제석봉, 가까이에서 보면 일자형(日字形)이고 멀리서 보면 월자형(月字形)인 일월봉 등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많다.

▲ 금산의 주봉 망대 정상에서.
ⓒ2007 김연옥
오후 3시 40분께 금산 정상에 있는 봉수대(경남기념물 제87호)에 이르렀다. 남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한 군사 통신 시설의 하나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신호를 보내던 곳이다. 고려 명종 때 축조된 것으로 비교적 원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봉수대에서 바라보는 남해 바다의 경치 또한 일품이다.

<환상의 커플> 촬영지 독일마을서 추억의 해오름 예술촌으로

우리는 지난해 방송된 MBC 드라마 <환상의 커플>의 촬영지인 독일마을(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을 찾았다. 1960년대 가난 때문에 간호사와 광부라는 이름으로 조국을 떠나야 했던 독일 교포들의 노후를 위해 남해군에서 지난 2001년에 조성한 마을이다.

▲ 남해 독일마을.
ⓒ2007 김연옥
독일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강아지와 산책하고 있는 독일인 할아버지를 우연히 만나 몇 마디 이야기를 건넸다. 이국적인 독일마을 풍경은 마치 동화 속의 먼 나라 이야기처럼 환상적으로 내게 와 닿았다. 무엇보다 그림엽서에서나 볼 수 있는 예쁜 집과 푸른 바다의 어울림이 너무 부러웠지만, 관광객들의 잦은 발걸음이 꽤 성가신 일로 여겨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괜스레 들기도 했다.

독일마을 가까이에 있는 해오름 예술촌(촌장 정금호)에도 잠시 들렀다. 폐교된 물건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을 하여 멋진 예술 동네를 만들어 놓았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예쁜 집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것저것 물건을 쌓아 둔 창고였다. 그곳은 그런 식으로 주인장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낭만의 예술 공간이었다.

▲ 해오름 예술촌.
ⓒ2007 김연옥
커다란 주판, 난로 위의 철제도시락 등을 볼 수 있는 옛날 교실에 들어가서 조수미씨는 풍금을 쳤다. 추억의 도시락이라 하면 고등학교 시절 밥 위에 반찬을 얹어 뚜껑을 덮은 뒤 도시락을 마구 흔들어서 즉석 비빔밥을 만들어 친구들과 맛있게 먹었던 일이 기억난다.

나는 그 교실에서 '참! 잘했어요'라는 글자가 파여 있는 도장을 보고 몹시 반가웠다. 초등학교 시절 숙제를 잘했거나 일기를 바르게 썼을 때 담임선생님이 '참! 잘했어요'라고 찍어 놓은 도장의 힘은 대단했다. 어린 가슴에 자신감을 심어 주고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던 칭찬의 도장이라 할 수 있다.

저녁 7시가 벌써 넘었다. 우리는 서둘러 마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해오름 예술촌에서 본 글, "삶이란 원래 골이 아파야 살맛이 난다"는 말이 떠올라 혼자서 피식 웃었다. 요즘 부쩍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다. 이제 스트레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해야겠다.

/김연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