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Stones & Bones
인간의 진화 과정은 일직선이 아니라 수많은 가지가 복잡하게 얽힌 형태
치아나 두개골 등의 뼈와 달리 털은 날씨, 지질 융기, 세월의 가혹한 풍상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수백만 년 전의 두개골들은 인류의 조상이 한 종에서 다음 종으로 진화하면서 뇌의 크기가 증가했음을 말해주고, 척추와 고관절의 구조는 우리 조상이 언제 직립 보행을 시작했는지 말해주는 반면에 화석 기록은 조상들이 언제 신체의 털을 완전히 잃고 옷으로 대신했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덕분에 마크 스톤킹은 이(곤충)에 착안했다.
머릿니는 머리털 속에서 산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변종인 몸니(body lice, 우리 말은 옷엣니)는 이름부터 잘못됐다. 몸이 아니라 옷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종으로서의 머릿니는 수백만 년의 역사가 있지만 옷엣니는 좀 더 후에 생겨났다. 진화 인류학자 스톤킹은 머릿니와 옷엣니의 DNA를 비교하면 후자가 언제 전자에서 진화했는지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DNA에는 정기적 속도로 변화가 누적되기 때문이다(타이피스트가 분당 여섯 자의 오타를 친다는 사실을 아는 경우 서류 하나를 완성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계산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독일의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에서 일하는 스톤킹과 동료들은 이의 가계도에서 분기점이 발생한 때가 고작 11만4000년 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새 서식지가 생길 때 새로운 유형의 생물체가 등장하게 마련이므로 인류 조상이 털을 영영 잃어버린 때가 그 무렵임이 틀림없다. 옷으로 털을 대신하면서 보온 외에도 새로 진화한 옷엣니에 집을 마련해줬다.
만일 한 세대 전의 고인류학자에게 이의 DNA 분석에서 인간의 진화과정과 관련한 어떤 정보가 나오느냐고 물으면 어처구니없다면서 밖으로 쫓아냈으리라. 그러나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연구가 크게 발전했다.
한때 이 지구상에 다른 유형의 인간이 살았음을 말해주는 화석(1856년 독일 네안데르 계곡의 광산에서 발굴한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이었다)의 첫 발견에서 시작해 돌과 뼈로부터 인류의 계도를 추정했다.
화석과 도구는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나왔고, 직립 보행하는 능력을 얻었으며, 도구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등 많은 사실을 입증했다. 이제 두 이야기꾼이 새로 등장해 입을 열었다. 다름 아닌 DNA와 뇌다.
인간의 진화 과학은 현재 자체 혁명을 겪는 중이다. 우리는 종의 행진이 (후손이 조상의 뒤를 줄줄이 잇듯이) 일렬횡대로 진행된 줄 안다. 그러나 최신 연구에서는 인류 진화사가 성경말씀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동시에 신앙에 구애받지 않는 과학자들의 생각보다 더 복잡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과학자들은 현대 인류와 함께 침팬지와 기타 종(심지어 이까지)의 DNA 분석을 통해 언제 어떻게 언어가 발달하고, 인류의 조상이 언제 아프리카를 떠났는가 등등 진화의 전환점을 향해 다가갔다. DNA를 통해 심지어 그 여행에 참가한 순례자가 몇 명인지도 알아낸다. 미국자연사박물관(뉴욕)에 새로 지은 인류기원관에서 DNA의 지위는 화석과 동등하다.
“고신경학”은 뇌가 두개골 안쪽에 남긴 흔적을 비교함으로써 인간의 의식에 동력을 공급하는 구조가 언제 생겼는지를 연구하고, 우리 조상이 어떻게 살고 생각했는지를 규명한다. 그런 변화를 신의 손이 이끌었다고 믿든 말든, 새로운 발견들 때문에 인간의 진화과정에 관한 오랜 생각이 뒤바뀐다.
화석이 무용지물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새 발견들은 인류의 가계도를 분재처럼 근본적으로 다듬어 재형성한다. 성경에 나온 “아무개가 아무개를 낳고” 식으로 한 종이 다른 종을 낳는 깔끔한 전통 모형은 수많은 가지로 대치됐다.
그 가지들은 인류의 직접적 조상이며 동시에 살았지만 계보가 다 죽어버린 종들을 대표한다. 알고 보니 고조할아버지가 실은 외아들이 아니라 여러 형제가 있었으며 그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두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셈이다.
새 연구에서는 또 “발달”과 “인간의 진화”가 늘 동시에 진행되지는 않았다는 점도 밝혀졌다. 인류 선사에서 진화를 통해 앞으로 튀어나온, 원숭이 같은 눈썹과 턱이 없는 얼굴이라는 현대적 특성이 만들어졌다가 그냥 사라져버리고 몇백만 년 뒤 다시 시도하는 일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인간 종의 시간 여행도 발작적으로 이뤄졌다. “아무 일 없는” 기간이 오랫동안 이어지다가 갑자기 정신없는 변화가 일어나고는 했다고 미국자연사박물관 신관의 공동 학예사로 일하는 고생물학자 이언 태터솔이 말했다.
증거물에 나오듯이 동아프리카 대초원에 인류의 뿌리가 깊이 박혔다. 그곳에서 인간과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촌 침팬지의 공동 조상인 마지막 생물이 살았다. 중요한 만큼 논쟁도 심한 가계보의 갈림길이다. 화석 연구로는 언제 혈통이 갈라졌는지를 규명하지 못했다. DNA는 가능할지 모른다. 인간의 DNA와 침팬지의 DNA는 고작 1.2%만 다르다. 그리고 DNA는 꽤 정기적인 속도로 변이를 일으킨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그 속도를 이용해 “분자시계”를 계산하며 어떤 유전적 변화가 일어난 세월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아낸다. 예컨대 현 침팬지와 인간 DNA의 화학 “문자” 차이가 약 3500만 개라는 사실은 두 혈통이 500만~600만 년 전 갈라졌음을 뜻한다. 650만 년 전 지구가 극심하게 추워지면서 메말랐다는 사실의 발견과 맞아떨어진다.
새로운 종의 출현을 부르는 기후변화였다. 숲에 머문 원숭이들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들이 현 침팬지의 조상이다. 메마른 초원이라는 새로 만들어진 서식지로 떠난 원숭이들은 인간으로 가는 첫걸음을 떼었다.
이제 논란이 분분한 부분이다. 2001년 차드에서 작업하던 발굴팀은 침팬지가 아닌 인류 조상의 가장 오래된 화석을 발굴했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두 혈통이 갈라진 뒤에 살았음이 틀림없다.
문제는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현지어로 ‘어린이’를 뜻하는 투마이로 불린다)가 살던 시기가 700만 년 전에 가깝다는 점이다. 인간과 침팬지가 그로부터 100만 년 뒤 갈라졌다고 지적한 유전적 자료에 따르면 투마이는 결코 우르호미니드(침팬지 사촌들과는 관계없이 오직 인간만의 최초 조상인 동물)가 아니다.
투마이가 우리 조상이 아니라면 왜 500만 년이나 어린 종들과 같아 보인, 사람과 너무나 흡사한 얼굴과 치아를 가졌을까? “700만 년 전의 호미니드(사람과 동물)는 호미니드의 생김새를 막 갖추기 시작했으며 훨씬 훗날의 화석 기록에서 보는 특질은 없었다”고 조지워싱턴 대학의 고인류학자 버너드 우드가 말했다. 투마이는 설령 우리의 조상이 아닐지라도 인류 진화의 “낳고” 모형을 깨뜨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투마이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낳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호모 하빌리스를 낳고, 호모 하빌리스가 호모 에렉투스를 낳고, 호모 에렉투스가 호모 사피엔스를 낳았다는 식의 모형 말이다. 낳고 모형은 직립 보행이나 큰 뇌, 또는 기타 등등 모든 생물학적 발달이 단 한 차례 일어난 뒤 고정됐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사실 진화는 포테이토헤드 씨(얼굴이 수시로 바뀌는 플라스틱 감자인형) 같았다. 고대 호미니드가 갖가지 특징의 조합을 얻었다가 그냥 내버리고 훗날 종이 다시 그렇게 진화했다. “비슷한 특징이 두 번 이상 진화했다. 다시 말해 그것을 근거로 한 화석이 다른 화석의 후손이라거나,
또는 발달된 특징을 지녔다는 이유로 한 화석이 현대 인류의 직접 조상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증거는 못된다”고 우드는 말했다. “인류 가계도의 수많은 가지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실은 400만 년 전부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屬)에 속하는 대여섯 부류의 호미니드가 아프리카에 살았다. 1974년 발견된 루시라는 화석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큰 턱과 튀어나온 얼굴 등 원숭이의 특성을 지녔고, 아마도 나무 꼭대기를 안전한 쉼터로 삼았을 성싶다.
그러나 루시 역시 현대 인류의 특징인 직립 보행으로 초원을 돌아다녔다. 360만 년 전의 화산재에 보존된 발자국은 큰 아파렌시스와 좀 더 작은 아파렌시스 한 쌍(암수 짝이거나 부모와 자식)이 현재의 탄자니아 초원을 걸어다녔음을 말없이 증언한다.
무엇이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를 일으켰는지, 무엇이 우리를 완전한 인간으로 가는 길에 올려놓았는지는 오래전부터 전문가들의 수수께끼였다. 돌이나 뼈는 별 도움이 안 됐지만 유전자와 뇌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 과학자들은 닭·침팬지·사람 등의 동물에 존재하는 HAR1(Human accelerated region)이라는 유전자를 발견했다. 이 유전자는 3억1000만 년 전(닭과 침팬지의 혈통이 갈라진 시점)에서 500만 년 전 사이에 118개의 화학 “문자” 중에서 단 두 개만 바뀌었다.
그러나 인류 혈통이 침팬지와 갈라진 뒤로는 (비교적) 눈 깜짝할 사이에 18개 문자가 바뀌었다고 캘리포니아 대학(데이비스)의 캐서린 폴라드와 동료들이 보고했다. 그렇게 빠른 변화 속도는 어쩌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필두로, 한 유전자가 진화를 통해 그 유전자를 지닌 후손들에게 계속 장점을 부여했다는 증거가 된다.
다른 기관보다 뇌가 더 많이 그런 유전적 장점을 획득했는지 모른다. 인간의 HAR1은 임신 7~9주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뇌의 성장을 촉진하는 듯하다. 이 유전자는 인간 대뇌피질의 6중 신경단위를 만드는 세포들 속에 많이 들었다.
“HAR1은 대뇌피질의 배열과 구조에서 역할을 맡는 신경단위 속에 존재한다”고 폴라드가 말했다. 이 유전자 덕분에 우리 조상의 대뇌피질이 복잡한 뇌의 특징인 정교한 주름을 개발하게 됐을 가능성이 있다.
유전자 변화는 뇌의 구조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일 외에도 뇌의 화학작용을 촉진했다. 2005년 듀크대의 매슈 록먼과 동료들은 PDYN이라는 유전자가 가장 오래된 인류의 직접적 조상이 출현한 직후인 700만 년 전 변화를 축적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 유전자는 프로디노르핀이라는 분자의 생산을 조절한다.
말하자면 뇌의 국물 재료인 셈이다. 어떤 성분을 첨가하느냐에 따라 인식과 행동, 또는 기억의 토대가 되는 신경화학물질로 바뀐다. “화석이 우리에게 많은 말을 하지만 어떤 경로로 언어가 탄생하고 현재와 같은 뇌가 만들어졌는지를 말해주는 것은 지놈”이라고 미국자연사박물관 신관의 공동 학예사 롭 드샐이 말했다.
단지 프로디노르핀의 마법 하나 때문에 뇌가 현대화되고 새 종의 탄생에 가속도가 붙지는 않았다. UCLA의 신경유전학자 대니얼 거시윈드가 이끄는 과학자들은 그 다른 요인을 알아내려고 고등 사고가 이뤄지는 자리인 침팬지와 인간의 대뇌피질에서 어떤 유전자 조합이 활동하는지를 연구했다.
이들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의 경우 많이 활용되는 유전자 중에는 전기신호가 각 신경단위 사이를 건너뛰는 속도에 영향을 주고 따라서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들, 세포들 간의 연락을 향상시키고 따라서 학습과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유전자들, 그리고 뇌의 성장을 촉진하는 유전자들이 있다. 이런 유전자 활동의 패턴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의 출현과 때를 맞춰 출현한 듯하다.
이것은 루시 종족의 생활을 설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아파렌시스 암수는 일어섰을 때 키가 90~150㎝이고 몸무게는 27~45㎏ 정도였다. 과일과 견과류를 먹기 좋은, 그러나 고기를 씹기는 어려운 작은 이를 가졌다(잡아먹을 만한 동물들을 보면 당연히 채식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덩치가 곰만 한 하이에나, 칼 같은 송곳니를 가진 고양이과 맹수, 기타 초대형 파충류와 맹금들이었으니 말이다).
초기 인류는 포식자보다 먹이 신세가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이야기라고 워싱턴 대학의 인류학자 로버트 서스먼이 말했다. 그는 2005년 다른 사람과 함께 ‘쫓기는 인간(Man the Hunted)’이라는 책을 냈다. 맹수에 의해 구멍이 뚫리거나 맹금류의 발톱 자국이 찍힌 두개골 화석이 많이 발견되는 등 그 증거는 엄연하다.
초기 인간이 사냥꾼이 아니라 사냥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종의 번창 원인에 관한 전통 관념이 뒤집혔다. 수십 년 전부터 우리 조상이 진화에 성공한 데는 사냥 솜씨와 경쟁자를 물리치는 능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20세기 대부분의 기간에 남성이 고고학 분야를 장악했기 때문에 육성된 생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약한 종이 무슨 그런 능력이 있어서 살아남았겠느냐고 서스만은 주장했다. 대신 꾀를 써서, 특히 사회적 능력을 이용해 생존했다. 쫓겨다니는 신세인 우리 조상은 서로 협력하고 집단을 이뤄 살도록 진화해야 했다. 공격과 전쟁보다는 그것이 우리의 진화적 유산이다.
이 사실은 유전학과 고신경학으로 뒷받침된다. 여성의 분만과 젖 분비를 촉진하는 호르몬으로 잘 알려진 옥시토신이 남녀 모두의 뇌 속에서도 활동한다. 뇌 속에서 다른 사람과 교류할 때 신뢰감을 촉진하고, 여기에서 나오는 협조적 행동 덕분에 인간 집단이 공익을 위해 동거하게 된다.
과학자들은 침팬지와 인간의 지놈을 비교해 두 종의 공동 조상이 옥시토신을 가졌다고 추론했다. 그러나 그 뒤로 변화를 겪었다. 뇌가 어느 정도 강력히 그것에 반응하고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에 따라 달라졌다고 보인다. 연구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우리 조상이 약 170만 년 전 암수의 항구적 결합을 토대로 하는 제도에 정착할 무렵 그 변화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성공 비결이었으며, 뇌에 흔적을 남겼는지도 모른다. 고신경학은 뇌의 크기를 알려주는 일 말고도 뇌가 두개골 안쪽에 남기는 표면적 특징의 흔적을 검사한다. 거기서 뇌조직의 단서가 나온다. 과학자들은 250만 년 전 살았던 두 호미니드(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와 파란트로푸스)의 뇌 모양을 비교해, 고등 인식을 관장하는 전두엽 모양새의 중대 차이를 알아냈다.
“파란트로푸스는 눈물방울 같은 모양이고 아프리카누스는 좀 더 사각형에 가깝다. 아프리카누스는 아래쪽으로 처진 데 비해 파란트로푸스는 위로 솟은 편”이라고 플로리다 스테이트 대학의 딘 포크가 말했다.
그런 모양은 아프리카누스가 10구역이라는 좀 더 잘 발달된 부위를 가졌다는 뜻이다. 의사결정, 솔선수범, 사전계획 등에 주로 활약하는 부위다. 그래서 아프리카누스는 진화하고 파란트로푸스는 멸종했는지 모른다.
크기만을 따졌던 옛날 뇌의 단순한 연구로는 풀지 못할 의문, 다시 말해 우리 조상의 대도약 원인을 고신경학이 해결할 전망이 높다. 약 25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라는 새 속이 아프리카에 등장했다.
전설적인 루이스와 메리 리키 부부가 발견한 하빌리스는 침팬지보다 큰 뇌를 가진 최초의 호미니드였고, 최초로 도구를 만들었다. 하빌리스의 출현과 때맞춰 석기(날카로운 돌 조각)가 출현했다.
그들의 직계 후손인 호모 에렉투스는 도구의 발명 못지않게 중요한 걸음을 떼었다. 아프리카를 떠나 다른 곳으로 진출했다는 말이다. 과학자들은 그루지야 공화국의 드마니시 발굴현장에서 180만 년 된 에렉투스의 화석을 발굴했다. “우리가 아는 아프리카 밖의 첫 전초”라고 빙엄튼 대학의 G 필립 라이트마이어가 말했다.
“이 인간들이 밖으로 나가 유라시아 도처에 퍼져” 여러 원인(原人) 중 자바 원인도 되고 베이징 원인도 됐다(베이징 원인의 원래 화석은 2차대전 때 모두 없어졌다. 안전보관 차원에서 미국으로 보내려 했으나 운송과정에서 실종됐다. 현재는 주형만 남았다). 원인들은 걷기만 하지 않았다. 6만 년 전 대양을 건너 호주에도 갔다.
에렉투스는 뇌의 크기만으로 종의 재능을 측정하려는 발상이 엉터리임을 보여준다. 드마니시에서 발굴된 뇌들의 용량은 600~770㏄로 좀 더 원시적인 하빌리스와 비슷했다. 에렉투스의 뇌 용량은 대단하지 않지만 뇌의 구조가 인상적이다.
에렉투스는 현대 인간처럼 비대칭적 뇌를 가진 최초의 조상이다. 한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은 그렇지 않다. 비대칭은 증가하는 특화의 표시이며 따라서 복잡한 인식능력을 갖췄다는 증거가 된다. 에렉투스는 그 능력을 무엇보다도 우선 불을 발견하고 다스리는 데 썼다.
기술 개발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드마니시 화석들과 함께 발견된 도구를 보면 절단용 돌조각, 돌조각을 만드는 원 바위, 돌도끼 등이며 그 당시 기준으로 봐도 모두 원시적이다. “석기를 정복해 석사학위를 받은 뒤에야 비로소 아프리카를 떠났다는 옛날 생각은 황당하다”고 버너드 우드가 말했다.
에렉투스는 200만~100만 년 전 유라시아 전역에 퍼졌으나 DNA 분석에 따르면 거의 확실히 멸종했으며 일부 과학자의 주장처럼 우리의 조상은 아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구세계 곳곳에 퍼진 에렉투스 집단이 모두 동일한 돌연변이를 축적하고 동일한 자연선택을 거쳐 호모 사피엔스로 이어졌다.
그러나 Y염색체를 연구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Y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그대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성(姓)과 같아 조상을 추적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미국에 이민 오면서 이름을 영어식으로 바꾼 성처럼 간혹 Y도 바뀐다. 바뀐 변형이 모든 남성 후손에게 그대로 이어진다. 스탠퍼드 대학의 분자 인류학자 피터 언더힐은 세계 전역 21개 인구집단의 남성 1062명의 Y 중 그런 돌연변이 160개를 추적했다.
분자시계 기술을 이용해 모든 현대인 남성의 가장 최근 시조가 8만9000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초의 현대인간은, 따라서 현 인류의 조상은 100만 년 전 아시아에 진출한 호모 에렉투스의 초기 물결과는 달리 약 6만6000년 전 아프리카를 떠났다.
이 순례자 대열의 수는 놀라울 정도로 적었다. 인구 유전학자들은 오늘날 Y염색체 돌연변이의 양을 토대로 이 “창시자” 인구가 몇 명이었는지 추산했다. 남자의 수가 최다 2000명이었다. 같은 수의 여자가 있었다고 가정하면 아프리카를 떠날 용기를 낸 인간은 오로지 4000명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후손이다.
초기 호모 종에 관한 한 가지 의문은 아주 먼 옛날에도 그들이 인간과 너무 흡사했다는 점이다. “60만 년 전께는 모두들 큰 뇌가 있었고, 20만 년 전에는 아프리카에 살던 사람의 생김새가 모두 현대인을 닮았다”고 스탠퍼드대의 고고학자 리처드 클라인이 말했다.
“그러나 5만 년 전까지도 표현미술이나 입상(立像), 장신구 따위는 없었다. 언어나 순간 기억력 등을 획득하려면 일종의 인지력 발달이 요구됐다. 그러나 뇌의 크기는 잘 변하지 않기 때문에 행동적으로 현대인간을 낳은 뇌의 변화는 구조에서 일어났다.”
그런 구조변화의 원천은 인간 생리의 모든 면과 마찬가지로 유전자에서 나온다. 연구자들은 언어·미술·문화, 기타 고등 지능의 산물이 출현할 무렵 등장한 유전자를 찾아 지놈을 샅샅이 뒤진 끝에 시기가 일치하는 세 가지를 찾아냈다.
FOXP2라는 첫째 유전자는 인간의 언어에서 역할을 수행하지만 다른 종에서는 다른 일을 수행함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분명 말을 못 하는 쥐도 그 유전자의 이형(異形)을 지녔기 때문이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스반테 파아보와 동료들은 표준 분자시계 기법을 이용해 인간형 FOXP2가 출현한 지는 20만 년도 채 되지 않았으며(해부학적 현대인류가 세계무대에 등장할 무렵이다),
어쩌면 5만 년 전인지도 모른다고 추산했다. 그렇다면 진보한 구어(口語)를 개발한 인간은 마지막으로 아프리카를 떠난 현대인류일 수밖에 없다. 시기가 흥미로운 또 하나의 유전자는 뇌의 크기에 영향을 미치는 마이크로세팔린이다.
이것의 역사는 3만7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시 가장 최근의 조상들 머릿속에 상징적 사고가 자리 잡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ASPM이라는 셋째 유전자도 뇌의 크기에 관여하는데 5800년의 역사가 있다. 인간이 준근동에서 첫 도시들을 세우기 직전이며, 호모 사피엔스가 현대의 형태에 이르고 훨씬 뒤에 일어난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전히 진화 중이라는 의미다.
물론 화석의 이야기는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수많은 그 과거의 엽서는 여전히 구세계의 바위들 틈에 갇혀 누워 있다. 그러나 이제는 옛 DNA와 회백질이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인류가 어디서 나와 어떻게 이곳에 이르렀는지 이해하려는 오래된 탐사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With MARY CAR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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