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재벌 리카싱 | |
중국의 혁명가 쑨원(孫文)과 개방화의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 전 주석, 대만의 경제발전을 이끈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 싱가포르의 영원한 국부(國父)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 필리핀의 아키노(Aquino) 대통령, 태국의 탁신(Thaksin) 전 총리, 홍콩의 재벌 리카싱(李嘉誠) ….
국적도 개성도 다른 이 쟁쟁한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이들 몸속엔 중국 화교(華僑) 중 최고의 장사꾼으로 불리는 ‘객가(客家)’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다. 객가는 중국의 중원을 무대로 활동하다 1000여 년 전부터 각종 자연재해에다 왕조 교체기 때 ‘줄’을 잘못 선 죄 등으로 쓰촨(四川), 광둥(廣東), 푸젠(福建) 쪽으로 밀려난 사람들이다. 굴러온 돌이니 토착민들에게 얼마나 질시와 미움을 받았겠는가. 그래서 이들은 일찍이 진취적인 성향을 띠며 밖으로 눈을 돌려 장사 등을 하면서 세계 곳곳에 퍼져나갔다.
중국에 객가가 있다면 인도엔 마르와리(Marwari)가 있다. 마르와리는 인도 북서부 사막지역 라자스탄에서 시작된 상인 집단이다. 세계 5대(大) 부자로 꼽힌 락시미 미탈(Mittal)을 비롯, 인도의 억만장자(재산 10억달러 이상) 10명을 탄생시켰다. 왜 이곳에서 유달리 거부(巨富)들이 많이 나왔을까. 그 의문은 이들의 본거지를 찾아보면 단번에 풀린다. 비 구경 하기가 우리 눈 구경보다 힘든 곳이니, 황량한 들판에선 풀조차 보기 힘들다. 또 워낙 물이 부족하니 간간이 보이는 나무들은 줄기를 최대한 축소시킨 형태로 자라고 있어 마치 분재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물 한번 길어 오려면 수십㎞를 걸어야 한다. 집집마다 재산 1호는 물을 보관하는 물탱크다. 마르와리 협회의 프라샤마 메타(Mehta) 회장은 “농사가 안 되니 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세기의 장사꾼과 인물들은 이렇게 최악의 조건에서 탄생되는 모양이다. 힘들고 척박한 환경이 거꾸로 엄청난 성공의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그렇다고 ‘어려운 환경=성공’이란 방정식이 자동으로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궁하면 통한다’는 뜻의 ‘궁즉통(窮則通)’은,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이 줄어진 말이 아닌가. 궁하면 무조건 통하는 게 아니라 궁해서 변하게 되고, 그 변화가 결국 통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고서야 저절로 통하는 게 뭐가 있겠는가.
변한다는 것은 바로 혁신일 것이다. 혁신은 ‘건수’ 올리기 식(式)의 ‘일회용(一回用)’이 아니다. 세계 최대기업 GE(제너럴 일렉트릭)의 전 회장인 잭 웰치는 “기업의 혁신이란 1~2년 전에 비해 얼마나 바뀌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세계의 변화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느냐는 문제”라고 말했다. 객가와 마르와리의 성공 유전자 역시 그런 혁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들이 점점 열악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걱정이 많다. ‘국가대표 기업’으로 불리던 삼성전자의 실적마저 흔들린다고 한다. 유가(油價)나 환율, 외국 경쟁기업들의 공세 등 주변환경이 결코 좋지만은 않다. 하지만 믿을 곳이 변변찮은 국민들로선 어떤 변화에도 금세 적응하도록 노력해 온 우리 기업들의 혁신 성적표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역경을 이겨낸 ‘객가’ ‘마르와리’처럼 말이다. 제몫도 못하면서 혁신 운운했던 이들과 차별성을 보여줄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인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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