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응전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인하여 미국 태평양함대는 순식간 와해 될 정도의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구멍 난 태평양쪽 전력을 메우기 위해 CV-5 요크타운을 비롯한 대서양함대의 일부 전력을 긴급이동 전개하였으나 진주만의 후유증은 너무 커서 파죽지세로 뻗어가는 일본의 초기진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어려웠습니다.
[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의 태평양 함대는 일거에 무력화되었습니다 ]
미국이 진주만의 상처를 치료하고 전력을 보충하기 바쁜 사이 일본은 동남아시아를 향하여 그 세력을 넓혀나갑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Z 함대라고 불린 영국의 동양함대가 출동하였지만 말레카 해협에서 순식간에 고기밥이 되는 참담한 패배를 맞보았고, 불과 6개월도 되지 않은 1942년 4월말이 되자 일본의 세력은 남반구의 호주 대륙근처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 영국의 동양함대도 허무하게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
일본은 미국이 호주를 발판으로 남쪽에서 일본을 견제할 것을 우려하여 호주북부 파푸아 뉴기니 Papua New Guinea 의 군사 요충지인 포트 모레스비 Port Moresby 를 점령하여 미국과 호주의 연결을 막고 호주를 대외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작전을 세웁니다. 인근 라바울 Rabaul 을 점령한 일본군을 포트 모레스비로 이동 전개하여 상륙시키는 것이 작전의 핵심이었는데 이를 위해 10,000톤급 經 항모인 쇼호 祥鳳 가 상륙부대를 호위하도록 하였습니다.
[ 일본은 6개월 만에 서태평양을 석권하고 호주에 비수를 겨눕니다 ]
사전에 이러한 정보를 알게 된 미국은 이곳이 점령되면 서남태평양에서 미국의 작전거점이 완전히 상실됨을 깨닫고 결사적으로 방어에 나서기로 결심합니다. 미 태평양 함대 사령관 니미츠 ( Chester William Nimitz 1885 ~ 1966 ) 제독은 일본 상륙부대를 저지 할 곳으로 포트 모레스비 남부의 산호해 Coral Sea 를 지목하고 항모 요크타운과 렉싱턴을 주축으로 한 제17기동부대를 출동하도록 명령합니다.
[ 제17기동부대가 출동합니다 ( 요크타운에서 바라본 렉싱턴 ) ]
그런데 미국 항공모함 부대가 출동하였다는 사실을 일본의 정보기관이 감청하였고, 이를 보고받은 야마모토 ( 山本五十六, Yamamoto Isoroku 1884 ~ 1943 ) 일본 해군사령관은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그는 진주만 기습 시 자리를 비워 온전하게 보존된 미국의 항모 세력을 일거에 격멸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 야마모토는 미 항모부대를 격멸할 계획을 세웁니다 ]
야마모토는 즉시 남방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본토로 귀환 중이던 제4항모전단의 주력인 重항공모함 쇼가쿠 翔鶴 와 주가쿠 瑞鶴 에게 항로를 바꾸어 산호해로 향하라고 명령합니다. 아마도 진주만기습이나 미드웨이해전 당시처럼 야마모토는 항모들이 근처에 더 있었다면 최대한 끌어 모아 미 해군의 항모전력을 박살낼 건곤일척의 도박을 하였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당시 그럴만한 시간은 없었습니다.
[ 산호해는 사상 최초의 항모 함대간 전투가 예정됩니다 ]
쇼가쿠와 주가쿠의 증원을 받은 일본 원정군은 1942년 5월 1일 과달카날 Guadalcanal 근처의 툴라기 Tulagi 섬을 먼저 공격하여 점령하고 이곳을 전초기지 삼아 일본은 최종 목적지인 포트 모레스비의 공격에 나서고자 준비합니다. 그러나 툴라기섬이 공격을 받는다는 소식을 접한 미국은 이곳의 일본군을 공격하기 위해 요크타운과 렉싱턴의 함재기들을 날려 보내 즉각 응전에 나섭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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