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하루 끌어다가 왕이 대량원군에게 선위한다면 만사가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었다.
목종 십이년 정월, 김치양은 자기 집에 심복들을 불러 모았다.
"이제는 별 수 없게 됐네. 비상수단을 쓸 수밖에 없어."
심복들은 숨을 죽이고 상전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김치양은 한층 목소리를 낮추어 밀계를 내렸다.
그 날은 바로 십육일, 마침 동편에서 떠오르는 밝은 달빛을 받으며 치양의 심복 무사들은 어디론지 흩어져 갔다.
이때 궁중에선 왕이 상정전(祥政殿)에 나와 관등(觀燈)을 하고 있었다.
"이해 들어 처음 보는 만월이라 곱기도 하구먼. 금년도 나라 일이 저 만월처럼 둥글고, 밝고, 부족한 데 없기를 바랄 뿐이요."
왕이 곁에 시립한 한 신하를 보고 이렇게 말했을 때였다. 갑자기 대부유고(大府油庫) 쪽에서 불길이 솟아오르더니 궁녀들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 어찌된 일인고?"
왕은 크게 놀라서 시신에게 물어보았으나 누구하나 진상을 알려 주는 자는 없었다. 기름 창고에서 일어난 불길은 삽시간에 퍼져서 태후가 거처하는 천주전까지 연소되었다.
"아니, 모후가 계신 천주전까지…"
효성이 지극한 왕은 김치양에게 농락되어 자기를 해치려는 모친을 그래도 누구보다 염려했던 것이다. "태후께서는 급히 피신하시었다고 하옵니다."
한 궁녀가 알려 준다.
그제야 겨우 마음을 놓은 왕은 곧 호부시랑 최사위(崔士威)를 부르도록 했다.
"아무래도 이번 화재의 원인이 심상치 않으니 군사를 통독하여 수상한 자가 있으면 잡도록 하라."
왕의 명령을 받은 최사위는 즉시 군사를 거느리고 왕의 신변을 호위하는 한편 궁중을 수색했다.
이번 불은 김치양이 심복을 시켜 지르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사위의 재빠른 조처로 왕의 신변이 철통같이 호위되는 것을 보니 더 일을 벌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단 단념하고 궁성밖에 숨겨 두었던 무사들을 급히 철수시켰다. 이렇게 해서 왕은 위기를 모면했으나 이번 일로 말미암아 받은 마음의 충격은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궁성에 불을 지르고 짐의 목숨까지 엿보는 역도가 있으니 내 무엇을 믿고 살아가겠는고…"
왕은 매사에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큰소리만 나도 역도들이 쳐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시신들을 불렀다.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헛소리를 하기가 일쑤였고, 정사는 돌보지 않고 자기 신변의 안전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사 이승(國師 二僧)과 대의 기정업(大醫 奇貞業), 대복 진사조(大卜 晋舍祚), 대사 반희악(大史 潘希渥), 참지정사 유진(參知政事 劉瑨), 중추원사 최항(中樞院使 崔抗), 부사 채충순(副使 蔡忠順) 등을 은대(銀臺)에서 숙직시켰으니, 은대는 곳 승정원(承政院)의 별칭이다.
그리고 지은대사 이주정(知銀臺事 李周禎), 우승선 이작인(右承宣 李作仁), 좌사낭중 유충정(左司郎中 劉忠正), 합문사인 유행간(閤門舍人 庾行簡)등은 안에서 숙직하게 하고 친종장군 유방(親從將軍庾方), 중랑장 유종(中郞將柳琮), 탁사정(卓思政), 하공진(河拱辰)은 근전문(近殿門)을 지키게 하고, 호부시랑 최사위를 대정문별감(大定門別監)을 삼아 모든 궁문을 닫고 엄중히 경계하게 하였다.
말하자면 문무의 중요한 신하들과 중과 의사와 점장이까지 곁에 두어 신변을 보호하였으니 목종이 얼마나 겁을 집어 먹게 되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삼엄한 경비 속에 거처하면서도 왕의 마음은 놓이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의 불안은 신병을 만들어 항상 병석에 눕게 되었다.
왕이 병석에 눕게 되니 대신들이 염려하여 문병하려 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왕은 그런 것조차 한사코 마다했다.
"뭐라고? 문병을 하겠다? 아마 그놈이 문병을 빙자해서 짐을 해치고자 하는 것일 게다. 절대로 들여보내면 안 된다."
이렇게 펄펄 뛰는 형편이었다. 다만 좌사랑중 유충정과 합문사인 유행간 두 사람만 곁에 두고 모든 일을 대행시키게 했다.
유충정은 원래 발해 사람으로 별 재주는 없었으나 성품이 착실한 탓으로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이와 반대로 유행간은 풍채가 미려하여 마치 어여쁜 여인과 같았고, 구변과 재치 또한 남달리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의 부친 품렴(稟廉)은 위위소경(衛尉小卿)이었으나 행간은 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아 마침내 벼슬이 합문사인에 이르렀다. 왕은 또 선지(宣旨)를 내릴 때엔 반드시 먼저 행간에게 묻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자 행간은 점점 교만방자해져서 백관을 수족처럼 부려먹었으며 근시(近侍)들은 행간을 대할 때 마치 왕을 대하듯 했다.
그러므로 왕을 해치려면 먼저 이 두 폐신(嬖臣)을 자기 패에 끌어들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요한 일이라고 김치양은 생각했다.
어느날, 치양은 행간과 충정을 따로 따로 불러서 그 마음을 떠 보았다.
"우복야께서 분부하신다면 어찌 물불을 가리겠습니까?"
약삭 빠른 유행간은 김치양의 소생이 등극했을 때의 일을 계산에 넣고 그 자리에서 충성을 맹세했다.
그러나 유충정은 달랐다.
"글쎄올시다. 아시는바와 같이 아는 것도 없고 별 재주도 없으니 아무런 도움도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이렇게 완곡히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한통의 밀서를 써서 행간이 없는 사이에 임금께 바쳤다.
김치양이 야망을 품고 심복을 모으며 거사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충정이 올린 글을 읽자 가뜩이나 불안에 떨고 있던 왕은 대경실색했다. 급히 대책을 강구해야 할 텐데 가장 좋아하던 유행간마저 치양 일당에 가담했다 하니 믿을 만한 자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은대에서 숙직하고 있는 중추원부사 채충순을 침전으로 불러들였다. 채충순은 왕이 즉위한 후 특별한 총애를 받아 급사중(給事中)을 거쳐 중추원부사까지 된 인물이니 중추원부사는 곧 정삼품(正三品)의 고관이다. 이렇게 특별한 총애를 받았으면서도 언동이 겸허하고 심지가 강직하여 가히 믿을 만한 인물이었다. 채충순이 침전에 들어왔을 때 마침 유행간이 시립하고 있었다. 왕은 행간에게 물러가라는 뜻으로 눈짓을 했다. 그러나 방자한 행간은 모른척했다.
왕이 어째서 채충순을 불러들였나 알고 싶기 때문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마음이 약한 왕은 그 이상 뭐라고 하지 않고 눌러 두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이 중대할 뿐만 아니라 유행간이 이미 김치양의 일당이 되었다는 정보를 들은 이상 그냥 둘 수가 없었다.
"너는 잠깐 자리를 피하도록 하라."
그래도 유행간이 멈칫멈칫 하니까 왕은 마침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감히 너는 짐의 명을 어기려 드느냐?"
그제서야 행간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다. 유행간의 발소리가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 왕은 채충순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가까이 오오. 채부사."
채충순은 왕의 침상 두어자까지 가까이 가서 부복했다. 그러나 왕은 다시 손짓을 하며 말했다.
"더 가까이 오오."
충순은 침상 곁에 바싹 다가가서 엎드렸다.
"고개를 드오."
고개를 드니 충순의 얼굴과 왕의 얼굴은 거의 마주 닿을 지경이었다. 그제야 왕은 소리를 죽여 말했다.
"짐의 병이 심한 것을 기화로 왕위를 엿보는 자가 있다고 하는데 경은 알고 있소?"
충순은 잠시 망설이다가 왕의 귀에 입을 갖다 대고 속삭였다.
"신도 그런 풍문을 듣기는 했사오나 확실한 증거는 잡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 이제 증거를 보이지."
왕은 이렇게 말하고 베개 밑에서 두 통의 봉서를 꺼내 보였다. 한통은 대량원군이 보낸 것이며, 한통은 유충정이 올린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김치양의 역모를 폭로한 글이다.
두 통의 글을 다 읽고 나자 충순은 안색이 변하며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일이 심히 급하옵니다. 속히 대책을 강구하셔야 할 줄로 아뢰오."
"짐의 병이 날로 우중하여 언제 무슨 일이 있을는지 알 수 없은즉 무엇보다도 급한 일은 후사를 정하고 대통을 물려 주는 일이오."
이 말에 충순은 눈물을 뿌리며 말했다.
"슬픈 일이오나 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하온데 어느 분을 후사로 삼으시겠습니까?"
"대량원군 순이 가장 마땅할까 하오. 혈통으로 보아 태조대왕의 손자가 될 뿐 아니라 그 인품이 족히 왕자의 풍모를 갖추고 있으니 말이요."
"그 점도 신이 생각하던바와 같사옵니다."
"짐이 보기에 궁중에 사람은 많지만 믿을 만한 신하는 경과 최항 뿐이요. 최항과 의논해서 태조께서 창업하신 사직이 다른 성 가진 자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힘써 주오."
이렇게 말하는 왕의 눈에서도 눈물이 비오듯 했다. 채충순은 즉시 최항을 만나 왕의 뜻을 전했다. 최항은 평장사 언휘(平章事彦 )의 손(孫)이니, 성종 때, 나이 이십으로 갑과(甲科)에 급제한 수재이다. 성종은 그 재주를 아끼어 우습유지제고(右拾遺知制 )란 벼슬을 주었으며, 후에 내사사인(內史舍人)을 시켰다.
그리고 목종 또한 그 인품과 재주를 사랑하여, 나라 일의 대소사를 일일이 의논하였으며, 이부시랑(吏部侍郞)을 거쳐 중추원사를 명하였으니 중추원사는 종이품의 고관일 뿐만 아니라, 중추원의 최고 책임자였다. 즉 채충순의 상관이 되는 셈이다. 최항은 총명이 과인하고, 말이 적고, 과단성이 있고, 청렴결백한 인물이었다. 그가 요직에 참여하게 되자 간혹 뇌물을 바치는 자가 있었으나 꾸짖어 물리치고 정당히 입수된 물건이더라도 사치스런 물건이라면 손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또 전하는바에 의하면 자기 집안 부녀자들에게는 화장과 옷치장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나라의 녹(祿)도 일년치를 한꺼번에 받는 것이 아니라 다달이 최저한도로 필요한 것만 청했으므로 집에는 쌀 한 섬 남아돌아가는 것이 없었다고 하니 그의 인품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최항은 채충순의 말을 듣자 한참 동안 묵묵히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신혈사에 사람을 보내어 대량원군을 모셔오는 수밖에 없구료."
그러자 채충순이 물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누구를 보내야 할는지요? 워낙 치양의 무리가 도처에 침투해서 섣부른 자를 보냈다간 오히려 큰 화를 당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그려."
"그럴 염려도 없지는 않소만 선휘판관 황보유의(宣徽判官 皇甫兪義)를 보내면 어떨는지?"
"황보유의 말씀입니까? 그 사람 좋겠습니다. 원래 성품이 강직할 뿐 아니라 그의 선친이 창업에 공훈을 세운 바도 있으니 가문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뜻에서도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황보유의는 문관이니 만일 치양이 자객이라도 보내어 일을 방해하면 어찌 하겠소?" "그렇다면 무반랑장 문연(武班郞將 文演)에게 군교 십여 명을 주어 따르도록 합시다. 문연도 또한 충직한 사람이니까요." 이렇게 해서 대량원군을 모셔올 준비는 갖추어졌다. 그러나 비록 대량원군을 모셔다가 선위를 한다 하더라도 무력을 장악하고 있는 김치양이 최후의 발악을 한다면 어떤 변이 일어날는지 저으기 염려되었다.
"김치양 일당을 누를 만한 힘이 없을까?"
최항은 채충순을 돌아보며 묻는다.
"글쎄올시다. 서울 안의 무변은 어느새 그놈이 구슬러서 심복을 만들어 놓았으니까요."
"그렇다면 강조(康兆)를 불러오는 것이 어떨까?" "서북면도순검사(西北面都巡檢使)로 있는 강조 말씀입니까?"
"그렇소. 그 사람이 좀 사나운 데는 있지만, 잘 달래서 쓰면 못 쓸 바도 아닐뿐더러, 무엇보다도 김치양을 누를 만한 무력을 장악하고 있는 인물은 그 사람뿐이니 말이요. 그렇다면 폐하께 아뢰어 강조를 불러오도록 합시다."
채충순도 최항의 말에 찬동하고 즉시 그 뜻을 왕에게 아뢰었다.
강조는 미미한 무변의 출신이었으나 용력이 과인하여 차츰 관직이 올라 중추사우상시를 거쳐 서북면도순검사로 북녘 땅에 가 있으니, 그가 거느리는 장졸은 국경을 지키는 장병이다. 만일 입경한다면 김치양의 오합지졸들을 일소할 힘은 넉넉했다. 왕은 곧 밀서를 써서 강조에게로 보냈다.
강조가 펴 보더니 -즉시 군사를 대동하고 입경하도록 하라.-라는 간단한 사연이었다.
'조정에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입경하라는 것일까?'
의심은 되었지만 왕의 명이니 어길 수 없어 곧 휘하 장졸을 거느리고 서울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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