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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2년 발굴된 경주 구정유적 이야기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당시 이곳에서 높이 40m의 원형 구릉 정상부에 있는 무덤 3기를 발굴했다. 이 유적은 초기 신라의 비밀을 밝혀줄 유적으로 각광받았다. 4세기초 즉, 신라가 이사금 시대일 때의 무덤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발굴된 지 무려 25년 만인 6일 구정동 유적에 대한 발굴보고서(경주 구정동 고분)를 ‘드디어’ 펴냈다.
그리고 보고서를 펴내는 과정에서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이 유적에서는 발굴 당시 4세기 대의 철제판갑옷 2령이 발견된 바 있다. 이 유물은 철제 초기 신라의 위상을 추정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됐다.
그런데 당시엔 갑옷의 몸통과 경갑(목을 보호하는 장치)만 확인하고는, 그것만으로 보존처리한 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왔다. 하지만 그것은 불완전한 보존처리 및 복원이었다.
그런데 유물정리 과정에서 갑옷의 몸통(종장판갑)과 경갑을 세트로 이어주는 후동장식판(조끼를 연상하면 됨. 어깨를 보호하는 장치)과, 착용한 판갑(몸통)이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하면서 어깨까지 보호해주는 견갑(어깨끈 처럼 만든 철제)을 확인한 것이다.
함순섭 경주박물관 연구관은 “이로써 몸통과 경갑, 그리고 어깨 보호를 위한 후동장식판과 어깨 보호 및 지탱장치인 견갑까지 한 세트를 완벽한 모습으로 재현할 수 있었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 어깨를 보호하는 부속구는 5~6세기대의 유적인 부산 복천동 유적과 경주 사라리 유적에서 보이는 것이며, 일본에서도 5세기 후반대 유적에서 보이는 것이다.
이 판갑옷(철판을 재단해서 이어붙인 갑옷)은 동북아시아에서만 나타나는 갑옷의 제작기법으로 알려져 있다. 4세기 초반대 판갑옷의 완벽한 세트 확인으로 뒤이은 시대의 갑옷의 변천사를 일목요연하게 알아볼 수 있는 근거를 만든 것이다. 함순섭 연구관은 “신라가 백제와 가야 등 열국들과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단계에 돌입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한상 동양대 교수는 “이 유적에는 갑옷은 물론 철제창들이 마치 레일처럼 깔려 있었다”면서 “신라가 이미 이 시대에 고대국가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기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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