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을지문덕’의 성은 을·을지·울지… 어떤 게 맞나?

鶴山 徐 仁 2007. 2. 3. 07:54
[성석제의 ‘이야기 카페’] ‘을지문덕’의 성은 을·을지·울지… 어떤 게 맞나?
종로·오십륙·이삭 등 이름마다 재미난 유래 담겨 있어…
형제자매 숫자 담은 이름 수두룩

서울의 도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길인 종로는 한양 천도 당시부터 도성의 8개 문을 여닫게 하는 종의 누각이 세워져 있어서 ‘종로(鐘路)’라고 했다. 종을 침에 따라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흩어졌다 한다고 해서 운종가(雲從街)라는 이름이 붙었다.

종로 남쪽의 길은 복원된 청계천을 따라가는 청계천로이고 그 남쪽이 을지로, 그 다음이 퇴계로이다. 퇴계로는 조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1501~1570)의 호를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종로 북쪽,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이화동 사거리를 거쳐 동대문에 이르는 율곡로는 율곡 이이(1536~1584)가 살았던 집이 관훈동에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율곡로는 율곡의 본의와는 아무런 관계 없이, 율곡의 가치관으로는 상상할 수 없게도 1932년 일제에 의해 원래는 붙어 있던 종묘와 창경궁을 가르는 길이 되고 말았다. 율곡과 같은 가문인 덕수 이씨 충무공 이순신의 시호를 딴 충무로, 충무공의 동상이 세워진 세종로, 세종 임금 당시의 음악가였던 난계 박연의 호를 딴 난계로 등 역사상 위인의 호를 딴 길은 대단히 많다.

을지로는 1946년 10월, 서울 곳곳에 붙어 있는 일본식 동명을 정리하면서 고구려 장군 을지문덕(乙支文德, ?~?)의 성을 따서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그런데 의문부호로 표기된 을지문덕의 생몰연대처럼 ‘삼국사기’에 실린 을지문덕의 전기적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저자인 김부식은 중국 사서(史書)의 기록을 인용, 편집하면서 “세계(世系)를 알 수 없다”, 곧 조상이며 집안 같은 뿌리가 뭔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을지문덕의 성 ‘을지’에 관해서 여러 차례 논란이 있었다.

▲ 그림·권오택

먼저 고구려 고국천왕 시절의 명재상 을파소(乙巴素, ?~203)처럼 ‘을’만 성이고 ‘지’는 존대를 뜻하는 접미사로 보는 견해가 있다. 또는 ‘을지’라는 성이 고구려 관위명의 하나인 우태(于台)와 같이 연장자ㆍ가부장을 뜻한다는 해석도 있다. 우태는 고국천왕이 을파소에게 최초로 제수한 벼슬인데 을파소가 그 정도로는 나라 살림을 제대로 하기에 부족하다고 사양해 버렸다.

중국 역사서 ‘자치통감’에 인용된 ‘혁명기(革命記)’라는 책에는 을지문덕의 이름이 ‘울지문덕(尉支文德)’으로 나온다. 선비족에 ‘울지’라는 성이 있고 중국 왕조에도 관료로 여럿 진출했으며 당 태종의 신하에 울지경덕이 있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을지문덕은 선비족 계통의 귀화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고구려는 본시 광대한 영토의 통일국이자 다민족국가였으므로 ‘귀화인’이라는 호칭은 구구한 것이고 을지문덕이 ‘고구려 사람’이라는 것으로 충분해 보인다. 어떻든 을지로가 ‘울지로’나 ‘을로’로 고쳐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기왕 말이 난 김에 요즘 주말 드라마를 휩쓸고 있는 고구려 사나이들의 대표격인 연개소문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연개소문은 을지문덕처럼 태어난 해는 물음표지만 죽은 해는 서기 666년쯤이다. 연개소문은 세계가 비교적 자세히 밝혀져 있는데 아버지는 연태조(?~?), 동생은 연정토(淵淨土), 아들은 연남생 등이다. 연남생의 묘지(墓誌)에는 “천남생(泉男生)의 증조부는 자유(子遊)이고 조부는 태조이다. 나란히 막리지를 역임했는데, 아버지 개소문은 대대로를 역임했다.

조부와 아버지가 야금(冶金)에 뛰어나고 활을 잘 다루었다. 아울러 병마를 장악하고 나라의 권세를 모두 잡았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열전에는 “개금(蓋金)의 성은 천씨이다. 스스로 물 속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무리를 현혹시켰다”고 적혀 있다. 중국 사서 ‘신당서’에도 “개소문은 개금이라고 부르며 성은 천씨”라고 기술된 대목이 나온다. 연씨가 천씨가 된 것은 당나라 고조 이연(李淵)의 이름과 같기 때문에 기휘(忌諱)하여 연과 통하는 글자인 천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천(泉)’은 음독을 하면 ‘於乙’이며 ‘쮙l(얼)’로 볼 수 있다. 개소문의 ‘개’는 음이 ‘kai’이다. ‘소(蘇: suo)’는 쇠(金)에 해당하는데 “야금에 뛰어났다”는 앞의 언급을 주의해 볼 필요가 있겠다. ‘문’은 ‘-m’의 첨가로 본다.

일본 사서 ‘일본서기’에는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인 것을 두고 “추구월에 대신 이리가수미가 대왕을 시해하다(秋九月大臣伊梨柯須彌弑大王)”라고 기록하고 있다. ‘태자부력(太子傅曆)’에는 ‘대신입하(大臣入霞)’라고 기록돼 있는데 이때 ‘入霞’의 훈독이 ‘irikasumi’이다.

이런 것을 참고하면 연개소문의 발음은 ‘쮙lkasum(얼가숨)’이 된다.(장세경, ‘고대 차자 복수인명 표기 연구’, 1990, 국학자료원) 또 다른 독음으로 이병도의 ‘얼가쇰’이 있다. 그럼 ‘가숨’의 뜻은 뭘까?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중국에 전해 내려오는 소설이라면서 ‘갓쉰동전’을 수록해 놓았다. 이 소설의 서두는 갓쉰동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연국혜라는 한 재상이 있었는데 나이 50이 되도록 슬하에 자녀가 없어서 하늘에 제사를 올려 아들의 점지를 기도하여 한 옥동자를 낳아 이름을 갓쉰동이라고 하였다. 갓 쉰 살 되던 해에 낳았다는 뜻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기 전 옌볜에서 인기가 있던 경극에 ‘캐쉰’이라는 것이 있는데 ‘캐쉰’이 ‘갓쉰’과 같다는 주장도 있다. 과연 ‘개금-가숨-캐쉰-갓쉰-개소문’이 같은 것일까. 아직은 민간어원설의 수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의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1884년 4월 4일~1943년 4월 18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원수ㆍ해군대장으로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 공격을 주도해 태평양전쟁의 서전을 승리로 장식한 인물이다. 아버지가 56세에 본 자식이기 때문에 ‘오십륙’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아버지가 100세, 어머니가 90세 때에 태어난 아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이름은 이삭이다. 이름의 뜻은 ‘백’도 ‘190’도 아니고 ‘웃음’이다. 성경이 문학성이 높은 것은 기록자들의 덕분만은 아니다. 주인공의 역할도 분명히 있다. 아들만 자식인가. 영화배우 앤터니 퀸은 81세 때 딸을 얻었고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68세에 딸을 보았다. 딸들의 이름은? 이런 것은 ‘비밀스럽고 화려하며 흥미진진한 무해무익 박물 탐험가’들에게나 맡기자.

우리는 주변 사람들 중 이름에 숫자가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나 생각해 보는 정도로 만족하자. ‘영삼’ ‘승오’ ‘경칠’ ‘영구’ ‘정만’ ‘억제’ 같은 이름들 말이다. 형제자매가 몇이나 되느냐고 치근덕거리며 묻지는 말자.

언젠가 나는 막 통성명을 한 상대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성’은 성이고 ‘제’ 자는 항렬자라면 ‘석’은 셋째라는 뜻인가요? 혹시 위로 형제 분이 둘인가요? 나는 지금은 둘뿐이지만 원래는 넷이었다고 조금 큰 목소리로 대꾸해 주었다. 그곳이 지리산 성삼재 아래였던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