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放下着

鶴山 徐 仁 2007. 1. 29. 23:47
내려놓아라! -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내려놓아라!"를 한자로 쓰면 '방하착(放下着)'입니다. 착(着)은 별다른 뜻이 없는 어조사로서, 명령형인 '방하(放下)'를 강조하는 글입니다. '방하'란 새김 그대로 '내려 놓아라!' 또는 "놓아버려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은 스물아홉의 나이에 왕이 될 고귀한 신분과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마저 버리고 고행길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서른다섯 때에 이 고행마저도 버립니다. 괴로움과 즐거움, 미망과 깨달음의 대립 관념을 바탕으로 한 고행 방식으로는 진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와 남의 분별을 초월한 수행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보리수 아래서의 좌선이었습니다.
 
한 소설가는 "지식을 앞세우면 모가 나고, 정에 얽매이면 종잡을 수 없이 흐르며, 의지를 고집하면 답답하다"고 했는데, 이처럼 상대적인 저울질하기를 놓아버리지 않으면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옛날 엄존자(嚴尊者)라는 수행자가 조주(趙州)선사에게 물었습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손에 아무 것도 없을 때에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조주선사가 대답했습니다.
 
"놓아버리게나(放下着)."
 
엄존자는 의아해서 반문했습니다.
 
"모든 것을 버렸는데 무엇을 더 버리란 말입니까?"
 
그러자 조주선사는 태연히 말을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마저 놓아버리게."
 
선사의 말은,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다는 의식 자체까지도 버리라는 것입니다. 옛 선사들은 이것을 알기 쉽게 표현합니다. 짐을 지고 있지 말아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언제나 어떤 짐을 지고 있습니다. 명함의 직함은 그 사람의 짐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직함을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저는 쓸모없는 변변치 못한 사람입니다'하고 겸손한 태도를 취합니다. 그럴 듯하지만 속보이는 말입니다.
 
선가에서는 이를 '자기 비하(卑下)의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비하라는 이름의 교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주선사가 버리라고 거듭 말한 까닭은 여기 있습니다. 직함이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그 있고 없음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바로 내려놓음입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입니다. 여행에는 으레 짐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계속해서 몸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만들어내는 짐은 좋든 싫든 인생의 종착역까지 스스로 짊어지고 가야합니다. 아무도 나누어 지고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松原泰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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