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양상훈 칼럼) 대통령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동해(東海)의 이름을 ‘평화의 바다’로 바꾸자는 아이디어를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꺼냈다고 한다. 국익에 손상을 준 이런 일이 이번 한 번뿐이었을까. 마주앉은 일본 총리가 대한민국과 그 대통령에 대해서 품었을 생각을 짐작하면 참담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러나 대통령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누구 누구가 대통령 할 능력이 있느냐는 논쟁엔 으레 “노무현 대통령도 하는데…”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노 대통령도 하는데 누구는 못하겠느냐는 것인데 정말 기가 막히는 얘기고, 나라에 불행이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이렇게 되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과 계속성, 영토를 지킬 의무를 지는 자리다.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채 북(北)으로부터 핵폭탄 위협까지 받고 있는 나라의 대통령은 남다른 용기와 지략(智略)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헌법은 그 대통령에게 역사의 가시밭길을 걸으며 평화 통일까지 완수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대통령은 선전포고(宣戰布告)할 수 있는 유일무이의 사람이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대통령 아무나 할 수 있다”는 말을 입밖에 꺼내지도 못할 것이다. 대통령은 67만 국군의 통수권자다. 국군은 국민의 아들·딸들이 썩는 곳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맹세한 신성한 조직이다. 과거 대한민국 대통령의 명령을 받든 수십만명의 국군이 지금 국립묘지와 이름 모를 야산 어딘가에 누워 있다. 대통령은 국군에게 목숨을 버리라는 명령을 내려야 할 때를 결정해야 하고, 그때가 왔을 때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자리다.
그런 대통령은 이 나라를 침략해 통일의 기회를 빼앗고 수많은 국군과 국민을 살상한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꿈에서라도 말할 수 없는 자리다. 대통령은 미국이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겠다면 드러누워서라도 막아야 할 사람이지, 미국보다 앞장서서 해체하자고 외치는 사람일 수가 없다.
정부 18부 4처 17청을 총지휘하는 대통령의 손길과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국민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200조원 가까운 세금을 내라고 강제하는 자리다. 당연히 대통령은 경제를 성장시켜 국민들의 생활을 안정되고 윤택하게 할 책임이 있다. 국민생활에 무슨 폭탄을 던지고 대란(大亂)을 일으키라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은 가장 영향력이 큰 정치인으로서 국민을 통합할 의무가 있다. 끊임없이 국민을 편 갈라 한쪽을 공격하는 일은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막아야 할 일이다. 헌법 앞에서 오로지 국민을 받들겠다고 엄숙히 선서한 대통령이 어느 순간에 “국민 평가를 포기했다. 신경 안 쓰겠다”고 국민 전체를 향해 대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이 선택이 사회의 진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지난 4년간 우리 국민이 모두 체험한 바와 같다. 정부 부처에서 일하는 160만명 공무원의 목줄을 쥔 사람이 대통령이다. 수백 개 공기업의 임원 자리 역시 대통령이 좌지우지한다. 이 인사권은 선거에 떨어진 여당 사람들 자리 만들어 주고, 대북 쌀 지원이 차관(借款)인 줄도 모르는 사람을 통일부 장관 시키라고 부여된 권한이 아니다.
대통령은 공영방송 사장도 선택한다. 이 선택권은 국민의 방송을 대통령의 방송으로 만들라는 권한이 아니다. 대통령은 검찰이 기소하고 법원이 유죄로 판결한 사람을 풀어주는 놀라운 권한도 갖고 있다. 이 권한 역시 죄지은 대통령 측근들을 풀어주는 데 쓰라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만든 사건을 대통령이 만든 또 다른 사건이 덮으면서 하루하루가 가고 있다. ‘노 대통령 평화의 바다사건’은 하루 만에 ‘노 대통령 개헌 발의 사건’이 덮었다. 대통령은 이런 자리일 수가 없다. 대통령은 누구나 될 수 있어야 하지만 결코 아무나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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