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느린 삶에 대한 갈증

鶴山 徐 仁 2007. 1. 5. 09:12
2007년1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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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출장 갔을 때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멈추는 순간, 꺼놓았던 휴대전화를 켰다. 곧 이런 문자메시지가 화면에 떴다.

“경희, 스페인 온 걸 환영해.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 전화번호는 ○○○○.” 가슴이 철렁했다. ‘아니, 스페인 출장 온 걸 남들한테는 안 알렸는데. 스페인에 아는 친구도 없는데….’

자세히 보니 이동통신 서비스회사에서 보낸 메시지였다. 프랑스에서 사용하는 GSM 방식은 유럽 각국은 물론, 북아프리카에서도, 터키에서도 즉각 로밍이 된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자동으로 서비스가 바뀌면서 ‘다정한 척’ 안내 메시지까지 나온다.

편리한 점도 있지만, 누군가 저 높은 곳에서 나를 감시하는, 미로 속의 쥐 신세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시시각각 내 위치가 감지되는 추적 장치를 단 채 죽어라 도망치는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도 든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는 시공의 간극을 넘어 세상을 실시간으로 단축시켜 놓았다. 휴대전화의 위력을 실감한 때는 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멜리야시(市)로 출장 갔을 때다. 멜리야를 빙 둘러싼 철조망 바깥은 모로코 땅, 철조망 안은 스페인 땅이다. 사하라 사막을 건넌 아프리카 청년이 죽음을 각오하고 그 철조망 넘어 유럽 땅으로 불법 이민을 감행하는 곳이다.

여권도, 자신을 증명할 신분증도 하나 없는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 놀랍게도 그들의 필수품이 휴대전화였다. 임시수용소에서 먹고 자는 이들은 낮에는 시내로 나와 세차 등을 해주며 약간의 돈을 번다. 그렇게 돈을 벌어 쓰는 데가 휴대전화비였다. 자신의 휴대전화뿐 아니라 철조망 넘어 모로코 쪽 숲에 숨은 친구의 전화비도 내준다. 국경을 사이에 두고 휴대전화로 연락을 취하면서 아직 유럽 땅으로 건너오지 못한 친구에게 모로코 군인의 동정을 알려주고 철조망 넘을 시기도 알려주고 있었다.

기술의 발전은 이렇듯 상상하기 힘든 소통을 가능하게 해준다. 반면 분초 다투는 소통의 과잉으로 우리 삶에서 여백과 기다림의 미덕도 그만큼 빠르게 쫓겨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뻥뻥 터지는 휴대전화로 인해 단 1분도 못 기다리는 사람의 조급증도 점점 심해지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나는 집에서 잠잘 때는 물론이거니와 화장실 갈 때도 휴대전화를 들고 간다. 회사에서 걸려온 휴대전화를 받지 않으면, 곧바로 집 전화 벨이 울리고, 그도 저도 즉각 못 받으면 ‘업무 내팽개치고 연락 두절된’ 상황으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휴대전화는 상대방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는 개의치 않고 언제든 내가 필요할 때 상대를 불러낼 수 있는 지극히 이기적인 속성도 갖고 있다.

얼마전 한 프랑스 교수를 인터뷰하려는데, 휴대전화도 없고, 연구실로 연락해도 자동응답기만 계속 돌아갔다. 답답하고 분통 터지긴 했지만, 넘치는 문명 속에 누군가의 호출에 즉각 응답할 필요 없이 ‘오지인’으로 사는 그 자유가 부럽기도 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이맘 때면 주변 사람을 되돌아보게 된다. 휴대전화며 메신저, 이메일 카드 한 통이면 순식간에 연락 닿는 세상이지만, 또박또박 정성 들인 글씨에, 몇 날 며칠 산 넘고 바다 건너 날아온 편지 한 장의 수고로움과 기다림이 더 큰 감동을 줄 때가 있다. 편리함과 속도전이 더해갈수록,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느리고 여백 많은 삶’에의 갈증도 비례해서 커지는 것 같다.

 
강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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