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은 조선시대 5대 궁의 하나인 창덕궁의 정문이다.
조선 태종 12년(1412)에 세웠으며 임진왜란 때 불 타 버린 것을
광해군 즉위년(1608)에 창덕궁을 다시 지으면서 문도 함께 세웠다.
지금 있는 건물의 앞쪽은 도로포장공사로 지면이 높아져 약간 묻혀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2칸의 2층 건물이며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다.
지붕 무게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1층 5칸 가운데 3칸은 2짝씩 문짝을 달았지만
양쪽 끝칸은 모두 벽을 쳐서 실제로 3칸만 이용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태종 13년(1413) 문에 동종(銅鐘)을 걸었다는 기사가 있다.
문에 종을 걸었다는 것은 보기 드문 예라 할 수 있지만, 지금 있는 문은 다시 세운 것이므로
실록을 통해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돈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과 함께
조선시대 궁의 위엄을 살리기 위해 세운 문루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보물 제383호로 1451년(문종 1)과 1506년(연산군 12)에 개조하여
더 크게 만들라는 왕명이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처음에는 지금보다 작은 규모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이는 별궁이었던 창덕궁이 점차 정궁의 구실을 하게 되면서
정문을 보다 위엄있게 만들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8년(광해군 1) 다시 지었고,
1721년(경종 1) 동쪽 아래·위층 부연을 수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앞면 5칸, 옆면 2칸의 2층 우진각지붕을 한 누문(樓門)이다.
돌계단이 있는 장대석 기단 위에 세워졌는데 기단은 현재 아스팔트 포장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다른 궁궐의 문이 앞면 3칸인 데 비해 이 문은 2칸이 더 넓으며,
아래층은 12개의 평주와 4개의 고주로, 위층은 12개의 병연주와
2개의 고주로 이루어져 전체적으로 건물이 옆으로 퍼진 느낌을 준다.
다포계로 아래·위층 모두 내3출목·외2출목으로 되어 있고,
아래층은 우물천장, 위층은 연등천장이며, 계단은 좌우측 툇간의 끝에 있다.
지붕마루는 양성을 하였으며, 취두(鷲頭)·용두(龍頭)·잡상(雜像)을 올려놓고
사래의 끝에는 토수(吐首)를 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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