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교설의 핵심은 무엇인가.
정소성(소설가,단국대학교 교수)
나의 종교에 대한 지식은 단편적이고 깊지 않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덜 익은데로 한 차례 정리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우리는 무언가 흔들리는 자신을 느낀다. 그만큼 죽음이라는 것으로 가까이 다가감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주면에 친구들이 하나씩 하나씩 타계하는 모습을 본다. 그것은 곧바고 같은 나이, 같은 여건에서 살아온 자신의 앞날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종교란 우주관과 세계관 인간관의 입장에서 우주와 세계와 인간의 상호관계와 그 존재론, 그리고 인간의 죽음과 영원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말하는 것같다.
불교의 핵심 이론을 한 마디로 말 하면 무엇일까. 기독교의 경우, 그것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에의 절대적인 복종과 경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 신 경배주의 신앙이 그리스도교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불교를 말한다면, 좀 난처하다. 불교에는 절대적으로 경배하고 복종하여야 할 신이 없다. 석가모니는 그냥 잘 깨친 사람에 불과하다. 부처만 하더라도 여러 명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만 하더라도 석가모니 불 이외에도 아미타 불, 미륵불, 약사여래 등등이 있다.
불교는 이런 경전상의 부처뿐만이 아니라 누구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이야말로 교만하다고 본다.그리스도교에서 자신을 신에 견주거나 자신이 감히 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가장 저주받는 일로 치부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우주관은 대단히 모호하다. 650 여개의 경전 어디에도 우주를 누가 창조하였다는 말은 없다고 한다.
불교는 그러므로 대단히 인간주의적인 종교이다. 석가모니가 인간 속으로 들어가 오래 관찰하고 그가 보리수 밑에서 침잠에 잠겨 오래 묵상한 결과 그는 인간만사와 우주의 원리를 깨쳤을 뿐이다.
그 깨친 결과가 결국, 모든 우주 만물은 연기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만물은 공 이라는 것이다. 절대적인 존재란 없다는 사실의 증언이다.
불교의 세계관은 흔히들 12처설로 대표된다. 12처란 6근과 6경을 말함인데, 6근은 눈 혀 귀 코 입 몸 의지이고 6경은 그것들의 상대개념인 색 맛 소리 냄새 촉감 법이다. 이것을 들어가 앉는다는 뜻으로 12처라 한다. 우주 만물은 바로 12처로 인식되는 것이다. 우주적인 인식론의 출발을 인간의 감각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음을 본다.
이 12처가 만들어내는 것을 색이라고 하는데, 색을 포함하여 수(느끼고), 상(생각하며), 행(행하고), 식(분별한다)을 5온이라고도 하여, 12처와 함께 우주의 근본으로 본다.
달리 4제라 하여 고, 집, 멸, 도를 일컫는다. 고는 괴로움이고 집은 그것의 모임이고 멸은 그것의 흩어짐이고 도는 열반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3법인이라하여, 모든 것은 무상하고, 무상한 것은 괴로우며, 괴로운 것은 내가 아니다, 라는 아주 중요한 명제를 제시한다.
결국 불교의 존재론은 12처설과, 5온설과, 4제설과, 3법인설로 종합적으로 그리고 중층적으로 정리되고 있다.
이러한 불교의 존재론을 잘 깨치지 못한 사람을 무명에 있다고 하며, 이 경우 무명은 행으로 연기하고, 행은 식을 연기하고, 식은 명색을 연기하고, 명색은 육처를 연기하고, 육처는 촉을, 촉은 수(느낌)를, 수는 애를, 애는 취를, 취는 유를, 유는 생을, 생은 죽음을 연기한다. 그러므로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존재들은 전부 12연기설 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 고정된 것은 없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자아가 없으며 한없이 공 한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인간의 자아설을 인정하지 않는다. 제행무상이며 만물무아론이다. 끊임없이 연기하는 존재물에 자아같은 것이 존재할 턱이 없다는 것이다.
자아가 있다고 믿고 그것의 지속적인 계속을 위해 노력할 때 인간의 고통은 싹 튼다고 말하고 있다.이러한 인간과 우주만물에의 존재론에 정통한 이해와 깨침을 가진 자를 명으로 보고 지혜를 가리키고 그것을 반야라고 부른다. 곧 해탈의 길로 들어선 자로 보는 것이다.
불교학자들은 주로 650여개의 불경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아함경과, 반야경과 법화경 세 경전을 주요 경전으로 든다. 아함경은 원시불교의 주경전으로 12처를 중심으로 하는 존재론을 다루고 있고, 반야경은 연기설을 중심으로 하는 12연기설과 무아론을 다루고 있으며, 법화경은 200여개 대승불교 경전의 중심 경전으로 보살 사상을 도입하여 열반 보다가는 성불을 더 중요한 불교의 중심 사상으로 도입하고 있다.
혼자만이 깨쳐서 열반에 드는 것은 진정한 불교 교설이 아니고, 대중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보시와 지계(계를 지킴)와 기쁨과 슬픔을 같이하는 희와 사를 실천에 옮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석가모니의 불멸 후 2,3 백년간 오늘날 전해오는 경전은 인도인들 사이에서 구전되어왔다. 그런 꽤 긴 세월이 흐른 후에야 경전은 서책으로 엮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불교 경전 사이에는 모순이 발견되고 통일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큰 줄거리는 분명히 있다고 본다.특히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사이의 차이는 크다고 한다.
스스로 부처되기를 거부하고 보살로서 대중 구제에 나선 관세음보살은 대표적인 대승불교 교리의 표상이다. 가련한 대중 구제에 나서지 않으면 부처의 말씀이라도 듣지 않겠다고 주장한 대세지보살도 대단히 중요한 보살이며, 불국정토에의 인도를 책임진 아미타부처는 어느면 석가모니부처보다 더하게 중요한 부처이다. 미래불인 미륵불의 존재는 대중들에게 미륵사상을 싹틔어 그 번성함이 대단한 바가 있다. 그래서 경전 도처에는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을 세번만 부르면 어떤 지독한 죄도 용서를 받으며 극락으로 갈 수 있다고 설파하고 있다.
이런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반야바라밀다이라고 하고 그 실천 강행으로 6바라밀을 가르치고 있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를 대승불교의 다섯가지 행동지침으로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8정도라 하여 또 다른 실천사항을 요구한다. 정견,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정정진, 정념, 정정을 가리킨다.
바른 견해를 가져야 하고(정견), 정사유(바르게 사유), 정어(바른 말), 정업(바른 직업), 정명(바른 명령), 정정진(바른 진행), 정념(바른 생각), 정정(바른 결심)을 추구해야만 무명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12연기의 무아의 궤도에서 벗어나 해탈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여기에 10선업도 있다. 10선업은 10악업의 반대개념이다. 10악업은 대표적인 행의 결과인데,살생, 투도(도둑질), 사음(간통), 망어(거짓말),양설(두말),악구(악다구니), 기어(구며낸말),탐욕,진애(성냄), 치암(어리석음)이다. 선업은 반대 개념이므로 불상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양설, 불악구, 불기어, 불탐욕, 무에, 정견을 일컫는다.
법화경은 대승불교의 교리를 설파하면서 보살도를 집중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즉 6바라밀과 8정도, 그리고 10선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으며 보살들로 하여금 대단한 보시와 지계로서 대중 교화에 나설 것을 주장하고 있다. 열반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소승불교와는 대단한 차이가 있다.
속세인들이 지켜야할 오계는 살생, 투도(도적질), 간음,망언(거짓말),음주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불자가 되어 불문에 입문한 사람의 경우 비구는 250개, 비구니는 348개의 계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지계의 요구는 십선업 중에서도 가장 인간이 빠지기 쉬운 죄악이기 때문이다. 살생 투도 사음은 신체적인 죄업이고, 망언은 망어,양설, 악구, 기어 등 십 악업의 언어관련 죄악을 총망라한 것이며, 음주는 인간의 흐트러짐을 가장 빠르게 촉발할 수 있는 것이기에 악업으로 친다. 인간이 말로서 짓는 죄악이 아주 심대함을 알게 해주어 일상생활에서의 말의 실수를 주의하고 있다.
불교 교리의 중심은, 인간주의적인 신앙이며, 인간존재의 무한한 가변성에의 인정과 이런 사실에의 진실한 이해를 구하고 거기서 인간주제에의 길로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한다.
우주 존재론으로 12처설과 12연기설은 어떤 종교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뛰어난 인간중심주의 종교사상이고, 불교가 어떤 종교보다 더한 매력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교설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막힐 정도의 교설을 창조해낸 석가모니야 말로 우리의 허약하고 탐욕에 지치며 교만스런 자아애에 빠져 허덕이는 인간들에게 크나큰 경종이자 사표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윤회설은, 12처설의 의지-업으로 연결되는 존재론으로, 의지가 있으면 반드시 법이 있으며, 과가 있으면 보가 있다는 사실의 확대해석이다. 즉 어떤 행에도 법이 따른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이 아닐 수 있다. 즉 못된 사람이 잘 살고, 착한 사람이 못 사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럴 경우, 우리는 지금의 보를 숙세의 과로 보는 것이다. 즉 지난 생에의 행이 지금에 미친다는 것이고, 지금의 행이 내세에 미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6도윤회라고 한다. 천,인간,수라, 아귀 축생,지옥의 여섯 군데로 인간은 숙세 현세 미래에 걸쳐 윤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과 밀본에 크게 유행하는 선 에 관하여서는 일부 종교학자들은, 그것의 명분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종교는 지혜를 얻고 실천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종교는 그러므로 성자가 남긴 경전의 이해와 경배에 치중해야지 선에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견해가 있다.
오늘 이 시간에 생을 받아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를 12연기설로 파악하고, 우주만물의 존재 이유를 12처와 4제와 3법인설로 파악하고, 인간 존재의 내부에 깃든 공관 개념을 도입하여, 인간의 십악업에의 몰입을 경계하고, 보시와 지계와 8정도로서 행동철학을 제시한 석가모니부처야 말로, 어떤 종교적인 신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하고 감동적인 종교철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소성(소설가,단국대학교 교수)
나의 종교에 대한 지식은 단편적이고 깊지 않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덜 익은데로 한 차례 정리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우리는 무언가 흔들리는 자신을 느낀다. 그만큼 죽음이라는 것으로 가까이 다가감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주면에 친구들이 하나씩 하나씩 타계하는 모습을 본다. 그것은 곧바고 같은 나이, 같은 여건에서 살아온 자신의 앞날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종교란 우주관과 세계관 인간관의 입장에서 우주와 세계와 인간의 상호관계와 그 존재론, 그리고 인간의 죽음과 영원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말하는 것같다.
불교의 핵심 이론을 한 마디로 말 하면 무엇일까. 기독교의 경우, 그것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에의 절대적인 복종과 경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 신 경배주의 신앙이 그리스도교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불교를 말한다면, 좀 난처하다. 불교에는 절대적으로 경배하고 복종하여야 할 신이 없다. 석가모니는 그냥 잘 깨친 사람에 불과하다. 부처만 하더라도 여러 명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만 하더라도 석가모니 불 이외에도 아미타 불, 미륵불, 약사여래 등등이 있다.
불교는 이런 경전상의 부처뿐만이 아니라 누구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이야말로 교만하다고 본다.그리스도교에서 자신을 신에 견주거나 자신이 감히 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가장 저주받는 일로 치부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우주관은 대단히 모호하다. 650 여개의 경전 어디에도 우주를 누가 창조하였다는 말은 없다고 한다.
불교는 그러므로 대단히 인간주의적인 종교이다. 석가모니가 인간 속으로 들어가 오래 관찰하고 그가 보리수 밑에서 침잠에 잠겨 오래 묵상한 결과 그는 인간만사와 우주의 원리를 깨쳤을 뿐이다.
그 깨친 결과가 결국, 모든 우주 만물은 연기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만물은 공 이라는 것이다. 절대적인 존재란 없다는 사실의 증언이다.
불교의 세계관은 흔히들 12처설로 대표된다. 12처란 6근과 6경을 말함인데, 6근은 눈 혀 귀 코 입 몸 의지이고 6경은 그것들의 상대개념인 색 맛 소리 냄새 촉감 법이다. 이것을 들어가 앉는다는 뜻으로 12처라 한다. 우주 만물은 바로 12처로 인식되는 것이다. 우주적인 인식론의 출발을 인간의 감각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음을 본다.
이 12처가 만들어내는 것을 색이라고 하는데, 색을 포함하여 수(느끼고), 상(생각하며), 행(행하고), 식(분별한다)을 5온이라고도 하여, 12처와 함께 우주의 근본으로 본다.
달리 4제라 하여 고, 집, 멸, 도를 일컫는다. 고는 괴로움이고 집은 그것의 모임이고 멸은 그것의 흩어짐이고 도는 열반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3법인이라하여, 모든 것은 무상하고, 무상한 것은 괴로우며, 괴로운 것은 내가 아니다, 라는 아주 중요한 명제를 제시한다.
결국 불교의 존재론은 12처설과, 5온설과, 4제설과, 3법인설로 종합적으로 그리고 중층적으로 정리되고 있다.
이러한 불교의 존재론을 잘 깨치지 못한 사람을 무명에 있다고 하며, 이 경우 무명은 행으로 연기하고, 행은 식을 연기하고, 식은 명색을 연기하고, 명색은 육처를 연기하고, 육처는 촉을, 촉은 수(느낌)를, 수는 애를, 애는 취를, 취는 유를, 유는 생을, 생은 죽음을 연기한다. 그러므로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존재들은 전부 12연기설 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 고정된 것은 없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자아가 없으며 한없이 공 한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인간의 자아설을 인정하지 않는다. 제행무상이며 만물무아론이다. 끊임없이 연기하는 존재물에 자아같은 것이 존재할 턱이 없다는 것이다.
자아가 있다고 믿고 그것의 지속적인 계속을 위해 노력할 때 인간의 고통은 싹 튼다고 말하고 있다.이러한 인간과 우주만물에의 존재론에 정통한 이해와 깨침을 가진 자를 명으로 보고 지혜를 가리키고 그것을 반야라고 부른다. 곧 해탈의 길로 들어선 자로 보는 것이다.
불교학자들은 주로 650여개의 불경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아함경과, 반야경과 법화경 세 경전을 주요 경전으로 든다. 아함경은 원시불교의 주경전으로 12처를 중심으로 하는 존재론을 다루고 있고, 반야경은 연기설을 중심으로 하는 12연기설과 무아론을 다루고 있으며, 법화경은 200여개 대승불교 경전의 중심 경전으로 보살 사상을 도입하여 열반 보다가는 성불을 더 중요한 불교의 중심 사상으로 도입하고 있다.
혼자만이 깨쳐서 열반에 드는 것은 진정한 불교 교설이 아니고, 대중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보시와 지계(계를 지킴)와 기쁨과 슬픔을 같이하는 희와 사를 실천에 옮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석가모니의 불멸 후 2,3 백년간 오늘날 전해오는 경전은 인도인들 사이에서 구전되어왔다. 그런 꽤 긴 세월이 흐른 후에야 경전은 서책으로 엮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불교 경전 사이에는 모순이 발견되고 통일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큰 줄거리는 분명히 있다고 본다.특히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사이의 차이는 크다고 한다.
스스로 부처되기를 거부하고 보살로서 대중 구제에 나선 관세음보살은 대표적인 대승불교 교리의 표상이다. 가련한 대중 구제에 나서지 않으면 부처의 말씀이라도 듣지 않겠다고 주장한 대세지보살도 대단히 중요한 보살이며, 불국정토에의 인도를 책임진 아미타부처는 어느면 석가모니부처보다 더하게 중요한 부처이다. 미래불인 미륵불의 존재는 대중들에게 미륵사상을 싹틔어 그 번성함이 대단한 바가 있다. 그래서 경전 도처에는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을 세번만 부르면 어떤 지독한 죄도 용서를 받으며 극락으로 갈 수 있다고 설파하고 있다.
이런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반야바라밀다이라고 하고 그 실천 강행으로 6바라밀을 가르치고 있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를 대승불교의 다섯가지 행동지침으로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8정도라 하여 또 다른 실천사항을 요구한다. 정견,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정정진, 정념, 정정을 가리킨다.
바른 견해를 가져야 하고(정견), 정사유(바르게 사유), 정어(바른 말), 정업(바른 직업), 정명(바른 명령), 정정진(바른 진행), 정념(바른 생각), 정정(바른 결심)을 추구해야만 무명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12연기의 무아의 궤도에서 벗어나 해탈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여기에 10선업도 있다. 10선업은 10악업의 반대개념이다. 10악업은 대표적인 행의 결과인데,살생, 투도(도둑질), 사음(간통), 망어(거짓말),양설(두말),악구(악다구니), 기어(구며낸말),탐욕,진애(성냄), 치암(어리석음)이다. 선업은 반대 개념이므로 불상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양설, 불악구, 불기어, 불탐욕, 무에, 정견을 일컫는다.
법화경은 대승불교의 교리를 설파하면서 보살도를 집중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즉 6바라밀과 8정도, 그리고 10선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으며 보살들로 하여금 대단한 보시와 지계로서 대중 교화에 나설 것을 주장하고 있다. 열반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소승불교와는 대단한 차이가 있다.
속세인들이 지켜야할 오계는 살생, 투도(도적질), 간음,망언(거짓말),음주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불자가 되어 불문에 입문한 사람의 경우 비구는 250개, 비구니는 348개의 계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지계의 요구는 십선업 중에서도 가장 인간이 빠지기 쉬운 죄악이기 때문이다. 살생 투도 사음은 신체적인 죄업이고, 망언은 망어,양설, 악구, 기어 등 십 악업의 언어관련 죄악을 총망라한 것이며, 음주는 인간의 흐트러짐을 가장 빠르게 촉발할 수 있는 것이기에 악업으로 친다. 인간이 말로서 짓는 죄악이 아주 심대함을 알게 해주어 일상생활에서의 말의 실수를 주의하고 있다.
불교 교리의 중심은, 인간주의적인 신앙이며, 인간존재의 무한한 가변성에의 인정과 이런 사실에의 진실한 이해를 구하고 거기서 인간주제에의 길로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한다.
우주 존재론으로 12처설과 12연기설은 어떤 종교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뛰어난 인간중심주의 종교사상이고, 불교가 어떤 종교보다 더한 매력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교설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막힐 정도의 교설을 창조해낸 석가모니야 말로 우리의 허약하고 탐욕에 지치며 교만스런 자아애에 빠져 허덕이는 인간들에게 크나큰 경종이자 사표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윤회설은, 12처설의 의지-업으로 연결되는 존재론으로, 의지가 있으면 반드시 법이 있으며, 과가 있으면 보가 있다는 사실의 확대해석이다. 즉 어떤 행에도 법이 따른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이 아닐 수 있다. 즉 못된 사람이 잘 살고, 착한 사람이 못 사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럴 경우, 우리는 지금의 보를 숙세의 과로 보는 것이다. 즉 지난 생에의 행이 지금에 미친다는 것이고, 지금의 행이 내세에 미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6도윤회라고 한다. 천,인간,수라, 아귀 축생,지옥의 여섯 군데로 인간은 숙세 현세 미래에 걸쳐 윤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과 밀본에 크게 유행하는 선 에 관하여서는 일부 종교학자들은, 그것의 명분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종교는 지혜를 얻고 실천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종교는 그러므로 성자가 남긴 경전의 이해와 경배에 치중해야지 선에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견해가 있다.
오늘 이 시간에 생을 받아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를 12연기설로 파악하고, 우주만물의 존재 이유를 12처와 4제와 3법인설로 파악하고, 인간 존재의 내부에 깃든 공관 개념을 도입하여, 인간의 십악업에의 몰입을 경계하고, 보시와 지계와 8정도로서 행동철학을 제시한 석가모니부처야 말로, 어떤 종교적인 신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하고 감동적인 종교철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출처 : 경대사대 부중고1215회 재경동기회
글쓴이 : 정소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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