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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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학교(五山學校) ⑤

鶴山 徐 仁 2006. 12. 6. 10:03
 
   
   
  서정후님께 드립니다.
     
오산학교(五山學校) ⑤

고당 조만식 선생께서 오산학교에 부임한 때는 그가 32세 되던 해였다. 명치대학 법학부를 졸업한지라 개인의 영달을 도모하였더라면 좋은 자리로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처지였다. 선생이 부임하기 전에 춘원 이광수 선생이 잠시 오산학교의 교장으로 있었으나 요즘 말로 하자면 코드가 맞지를 않아서 사표를 내고 시베리아로 가버린 때였다. 고당은 처음에는 교감으로 부임하였으나 얼마 후 교장직을 맡게 되어 9년 간 봉직하셨다.

고당은 직은 교장이었지만 때로는 기숙사 사감도 되고 때로는 학교의 사찰 역할까지 할 정도로 몸으로 삶으로 학생들과 교사들에 앞장서서 학교를 이끌었다. 고당이 교장으로 계시던 시절에 학생 중에 주기철이란 이름의 총명한 학생이 있었다. 후에 고당이 평양으로 나가 물산장려운동을 이끌며 산정현교회의 장로로 섬기는 때에 주기철 목사가 담임 목사로 부임케 되었다.

한국교회의 교회사를 빛낸 순교자 주기철 목사이다. 해방 후 조만식 장로는 조선민주당을 창당하여 당수로 계실 때다. 그의 국민적 영향력을 탐을 낸 점령군 소련군이 오산학교 출신의 공산주의자 최용건을 보내 그를 포섭하려고 설득하기를 무려 19회나 보냈다. 새 정부의 수상직을 맡으라는 회유였다. 그러나 고당은 번번이 다 듣고 나서는 간결하게 “아니다!” 하고는 거절하였다. 끝내는 소련군이 그를 한 호텔방에 감금하였다가 끝까지 거절하시는 그를 처형하고 말았다. 해방 후 우리 역사의 슬픈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