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 1절 - 15절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명심할 일은 소설책을 읽듯이 성경을 읽지 말고 성경의 모든 사실을 나와 연관시키고 성경 말씀이 나에게 직접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계심으로 받아들일 때에 성경의 묻는 기록된 기적적인 사실들이 오늘 나에게도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신 골고다의 사건이 2,000년 전의 일로 지나가 버리면 아무런 나와 상관이 없는 사건이 되지만 예수님이 내 죄를 담당하시고 내 대신 죽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나를 그 사건에 참여시킬 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나에게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五餠二魚의 기적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경에 기록 된 말씀으로만 지나가고 있으면 이 기적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지만, 내가 그 당시에 함께 참석한 사람으로, 오천 명 중에 하나인 나로 생각 할 때에, 그 기적은 바로 나의 기적이 되어 오천 명 중에서 병 고침을 받은 사람과 같은 치유의 역사도 일어나고 말씀의 역사, 배부름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1절 - 2절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 건너편 광야에서 하신 일은 병든 사람을 많이 고쳐 주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 일을 본 많은 사람들이 표적을 보고 나도 고침을 얻기 위하여 딸아 다닙니다.
할렐루야 기도원에 수많은 사람들이, 수 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김 원장의 병을 고치는 것을 보고 또 나도 고침을 받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니고 모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14절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모든 병자를 다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도 나의 병든 몸을 주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오면 주님은 반드시 주님 앞에 나아 온 자를 고쳐 주십니다.
우리가 병 고침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주님 앞에 나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3절 - 4절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마가 복음 6장 34절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아 온 사람들에게 말씀을 먹이시고 가르치시고 고치시는 일을 하시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은 병 고침만을 받으려고 주님 앞에 나아오지 말 것이요,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일이 더 중요함을 알고 이를 실천하려면 건강한 육체를 가져야 말씀을 실천하며 생활 할 수 있음으로 고침 받는 것이 첫 째가 아니라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 일이 첫 째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병을 고치셨습니다.
몸이 병이 들면 말씀을 배우기가 어렵습니다. 귀머거리에는 말씀을 가르칠 수 없으니 귀머거리가 듣도록 한 후에, 소경을 눈을 뜨게 한 후에, 귀신을 쫓아 낸 후에 말씀을 가르치시어 더 효과적으로 말씀을 깨닫고 실천하게 하셨습니다.
중국 길림성 돈화시 관내에 있는 현유 교회에서 집회를 마치는 시간에 젊은 청년을 청년 둘이서 부축하여 데리고 들어오며 이 청년은 목발을 집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하여 그 청년을 주님이 고치시게 하였습니다. 가을에 다시 그 교회에 갔을 때에 그 청년이 나를 알겠는가 하여 잘 모르겠다고 하니 내가 안수를 받고 고침을 받아 발에 힘을 얻어서 벼를 200단이나 타작하고 왔다 하며 검게 그을린 얼굴로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청년이 고침을 받음을 온 동네에서 보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온다고 합니다.
오늘날도 육신 적으로나 영적으로 병이 든 것을 고친 후에 말씀을 전하면 더 많은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5절 - 6절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마태복음 14장 14절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 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예수님은 말씀을 먹이실 뿐만 아니라 병도 고쳐 주시고 우리의 육신의 양식까지도 책임을 져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의 양식을, 생활을 책임져 주십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일 만나를 내리어 양식을 책임져 주신 하나님은 오늘날도 성도의 양식을 책임져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옷이 헤어지지 않게 하심으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옷을 책임져 주셨고, 신발이 닳지 않게 하심으로 신을 책임져 주신 하나님이 어찌 성도의 굶주림을 방관하시겠습니까?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양식을 책임져 주실 때에 반드시 사람의 손을 통하여 양식을 주십니다.
제자들은 저들을 동네로 내려보내서 자기 스스로 사 먹게 하라는 책임 회피를 건의하였지만 주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제자들과 같은 동일한 말을 많이 하며 살고 있습니다.
나는 빈손이요 가진 것이 없다 하여 다른 데로 가 보라는 말을 많이 하였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말을 하지 말고 네가 직접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옛날부터 전해 오는 말도 가난한 자가 가난한 자를 구제하지 거지가 부자 동네에서는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도 거지는 부자 동네에서는 높은 담과 철제 대문으로 꽉 잠그고, 사나운 개가 지키고 있어 밥 한 술도 얻어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문도 없는 가난한 동네에는 十匙一飯으로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란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알 듯합니다.
주님은 남에게 미루지 말고 내가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7절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 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200 데나리온이면 오늘날의 계산으로는 200 날을 일한 일당과 같습니다.
하루 100 딸라씩 받는 사람들의 200 일 일당은 20,000 딸라입니다.
2만 딸라를 한 사람당 2 딸라 짜리 햄버거를 사서 먹이면 만 명이 먹을 수가 있습니다.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한 사람이 오 천명이라고 하였으니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족히 만 명은 될 것 입니다.
사람은 항상 남에게 줄 때에는 조금씩 주려고 합니다.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 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든 적게 주려고 노력합니다. 월급도 조금씩 주려고 하고, 일당도 노무자의 어려운 생활을 생각 안하고 작게 주려고 하고 하는 것이 사람의 주는 계산법이지만 주님은 11절 “저희 원대로 주시다”라는 말과 같이 원대로, 넉넉하게 요구대로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것이 사람과 주님과의 차이입니다. 사람은 계산을 하여 조금씩 주려고 하지만 주님은 원하는 대로 남도록 주시는 주님입니다.
8절 - 9절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어린이의 한끼 점심 분량으로 양에 차지도 않는 작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 18절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우리는 작은 것이지만 이것을 주님께 가지고 가는 것이 축복의 근원이요 기적의 시작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가지고 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과부의 두 렙돈은 25 Cent로 25전 짜리 두개에 불과한 것이지만 이것을 주님께로 가져갔을 때에 주님의 귀한 칭찬이 있었고 이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어 세세에 알려지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이 어린아이의 점심을 달라고 할 때에 어린아이는 얼마든지 안주겠다고 떼쓰고 울어 버릴 수도 있지만 이 아이는 선뜻 주님께 五餠二魚를 내어놓았습니다.
자기는 굶어 배가 고플망정 주님께 드리는 일이 바로 기적의 시작이 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가 마지막 남은 양식을 엘리야에게 드렸을 때에 가루와 기름이 다하지 않고 계속 채워지는 기적이 3년 이상 계속 된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주님께 나의 것을 드리는 자에게 채워지는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께 드리는 것이 있어야 1,000배. 만 배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10절 - 11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주님께 가져가면 주님도 감사하며 축복하며 기도하여 줍니다.
우리도 역시 감사하고 축복하는 사람을 살 때에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감사와 축복이 없는 곳에는 기적과 축복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녀에게 감사하고 축복하고 기도 할 때에 자녀가 잘되고 번성하는 복을 받게 됩니다.
모든 기적은 감사와 축복이 있는 곳에서 시작이 됩니다.
기적은 나의 원하는 대로 주시는 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12절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고 길이, 길이 간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받은 은혜를 잠깐 사용하고 버리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은혜를 忘却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남은 조각을 버리는 사람으로 주님의 은혜를 더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13절 - 15절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한 사람의 점심인 五餠二魚가 장정 오 천명이 먹고도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는 말씀은 5,000명이 먹고도 남는, 넘치는 은혜의 기적을 五餠二魚의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아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이 기적이 나에게 이루어지는 기적이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1. 獻物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4장 18절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성경은 항상 축복은 심은 씨앗으로부터 거두어 짐을 말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4장 2절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저가 가로되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
엘리사도 선지자 과부의 집에 있는 기름 한 병에 하나님의 그치지 않는 채워지는 기적의 축복을 주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기적의 축복을 받으려면 내가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주님께 가져 갈 때에 하나님은 거기에 천 배, 오천 배, 만 배의 축복을 하여 주십니다.
물질 축복만 아니라 병 고침의 축복도 나의 병든 육신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 갈 때에, 그 육체에 주님의 능력의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중풍 병자를 네 사람의 친구가 지붕을 뜯고서라도 주님 앞에 달아 내릴 때에 주님은 그 중풍 병자를 고치시고 죄까지 사함을 받게 하신 주님이십니다.
기적의 축복은 주님 앞에 가져 온 사람에게 주시는 것임을 알고, 가만히 앉아서 축복을 받으려는 어리석은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주님은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하시는데 오늘 무엇을 주님께 가지고 왔습니까?
욕심을 가지고 왔습니까? 나의 이익을 구하려는 마음을 가져 왔습니까?
주님께 나를 드리는 獻身이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드리는 아름다움을 가져 와야 하나님은 그 위에 축복을 더하여 많은 사람들이 더 배부르고 잘되게 하는 것입니다.
나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주님께 가져오지 말고 여러 사람의 이익이 되는 일을 위하여 주님께 드리는 헌물이 있어야 그러한 헌물 위에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축복하여 주십니다.
2. 축사가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4장 19절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축사라는 말은 축복하며 감사한다는 말입니다. 주님도 하나님께 축복을 하며 감사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축사는 바로 믿음의 기도입니다. 아직 눈에는 그대로 있지만 다 된 줄을 알고 그 기도한 대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예수님이 五餠二魚를 가지고 기도를 하니까 그것이 갑자가 산과 같이 커지고 불어나고 많아지어 그것을 나누어 먹인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난 후에도 五餠二魚가 그대로 있었지만 이 것을 베드로에게 떼어 주어도, 다시 그대로 있어, 안드레에게 떼어 주고하며, 열두 제자들이 받게 되었고 열두 제자도 역시 떼어 나누어주어도 그대로 있게 되는 기적으로 만 명이 먹고도 남는 기적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가 이루어 진 후에 행동을 하려고 하는 잘못을 갖고 있음으로 五餠二魚의 기적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한 후에도 오병이어가 그대로 있어도,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하는 사람만이, 아직 전과 다름이 없어도, 믿음으로 된 줄로 알고 행동을 하는 사람만이 오병이어의 기적의 복을 받게 됩니다.
열왕기하 4장 42절 - 44절 “한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 곧 보리떡 이십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그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 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
어떤 사람이 엘리사에게 보리떡 20개와 채소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때에 엘리사의 제자들이 100명 이상입니다. 엘리사는 이것을 100명 이상의 사람에게 나누어주라고 말을 합니다. 이 때에 엘리사의 사환은 혼자 다 먹어도 양이 안 차는 것을 어찌 100명이 먹을 수 있는가 하고 선생을 조롱하며 가소롭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엘리사는 하나님이 먹고도 남는다고 하였으니 잔소리 말고 그대로 하라고 재촉을 하니 할 수 없이 그대로 하였더니 100명이 먹고 남았다는 기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논쟁이 마음속에 생깁니다.
44절 “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
드디어 라는 말은 논쟁이 심하였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하였더니 하나님 말씀과 같이 되었다는 말로 결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음의 논쟁, 상식의 논쟁을 물리치고, 하나님 말씀대로, 믿음으로 실천을 할 때에 하나님 말씀대로 기적이 이루어짐을 알고, 지금 내게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기도한 후에 행동으로 옮길 때에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말씀대로 되어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대로 된 줄로 알고 실천하는 사람에게 오늘날도 五餠二魚의 기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3. 秩序가 있어야 기적이 나타납니다.
마가복음 6장 39절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무질서 속에서는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질서를 지키는 것은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잔디 위에 떼지어 50씩 100씩 앉으라고 할 때에 그 말씀을 듣지 않고 밀치고 댕기고 시장 바닥같이 시끄럽고, 중국에서 기차표를 살 때같이 밀치고, 새치기하고 소리치고 하였다면 기적은 안 일어났을 것입니다.
지도자에게 순종하고 질서를 지키고 순서를 기다리는 질서가 있을 때에 기적은 일어납니다.
1991년도 4월에 중국 연길 교회에서 안수 기도를 할 때에 한꺼번에 질서 없이 모두가 강대로 몰려 와서 한발 자국도 옮기지 못하고 손에 닿는 사람만 안수를 하여 준 일이 있습니다.
만일 그 때에 질서를 지키고 많은 사람이 안수를 받았다면 더 많은 기적이 일어났을 것인데 질서가 없음으로 기적이 적게 나타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질서 속에 순종함으로 순서를 기다리는 기다림의 믿음을 갖고 주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감사가 있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요한복음 6장 12절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주님이 주신 기적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 은혜를 소중히 간직하는 사람에게 기적은 계속되고 지속이 되는 법입니다.
병 고침을 받았다가 다시 병이 도지어 고생하거나 죽는 사람을 흔히 보고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감사함이 없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10명의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았지만 사마리아 문둥이 한 사람 이외에는 주님께 와서 감사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가 복음 17장 17절 - 1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주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소중하게 간직 할 때에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에게 더 좋은 은혜를 더하여 주십니다.
감사함이 없는 사람은 육신의 고침으로 끝이 났지만 감사한 사마리아 문둥이에게는 구원의 은혜까지 더하신 주님입니다.
사람인 나도 선물을 주었을 때에 이 선물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소중히 아껴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다음에도 더 좋은 선물을 주지만 입으로는 받을 때에 감사하다 하고서 후에 그 집에 갔을 때에 처박아 두었으면 다시 선물을 사다 주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기적을 받고 감사히 여기며 항상 소중하게 간직하는 자가 될 때에 더 큰 은혜의 선물을 받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정리:
우리는 五餠二魚의 기적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적이 알고 지나가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이 기적이 나의 생활에 나타나는 기적이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 한 사람에게도 직접 말씀하시고 계심을 알고 이 말씀이 나의 기적이 되고 축복이 되어야 합니다.
1. 주님께 드리는 것이 있을 때에 그 위에 기적을 베푸십니다.
주님은 항상 곱하기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0 X100 = 0.
1 X 100=100. 2 X 100 = 200. 10 X 100= 1,000. 100 X 100 = 10,000 이 듯 없는 것에는 아무리 큰 수를 곱하여도 0이 되는 것을 알고 주님 앞에 가져가는 것에 곱하기를 하여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2.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질서는 순종이요 불순종은 무질서입니다. 순종함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기적의 축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3. 축사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될 줄 믿고 감사하며 기도하고 기도 한 후에는 아직 변한 것이 없어도 행동으로 믿음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증거가 행동으로 변 할 때에 기적은 나타나는 것입니다.
4.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이제까지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소중히 간직하고 버리는 것이 없이 항상 귀히 여기고 감사하며 간직하는 사람이 될 때에 더 큰 은혜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五餠二魚의 기적이 가정과 개인과 사업에 넘치는 믿음의 축복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운보 김기창 화백의 오병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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