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있는 거래처의 업무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들려 본 공세리 모습 열린 귀는 들으리라 ▲ 공세리 성당 노거수 느티나무의 낙엽 ⓒ2006 한국의산천 떨어지는 낙엽은 가을 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공세리 성당 안에는 인조 9년경 세곡 상,하역 작업를 위해 노역자들의 그늘막으로 심은 나무들이 지금은 아주 큰 고목으로 몇그루 남아있다 농부의 들깨 터는 도리깨질하는 모습. 공세리 한가로운 억새모습과 세월의 연륜이 얼굴에 가득한 농부의 도리깨질 모습 1895년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드비즈 신부는 이곳에 부임해서 400년이 지난 세곡 창고터를 헐고 그야말로 복음 창고인 성당을 1922년 10월 8일 봉헌함으로써 내포지방의 신앙의 못자리를 틀게 되었다. 그는 지역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신이 직접 조제한 한방 의술을 활용, 한약을 조제하였으며 '이명래 고약'으로 유명한 이명래(요한)씨에게 이 고약의 비법을 전수하였다. 하지만 이 고약은 처음에는 드비즈 신부의 한국명인 '성일론고약'으로 불렸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곡물을 취급하던 공세곶고지 그자리에 지금도 농협이 자리하고 있다. 박의서, 박원서, 박익서, 세 분 순교자는 옛날 걸매리에 살던 밀양 박씨 의암공파의 후손이다. 이 집안에는 이미 치명일기에 기록된 이 세분 순교자 말고도 이마리아, 박인서, 박제환, 박홍갑, 조 모니카, 박화진, 이씨 부인 등 일곱분의 순교자가 더 있다. 그리고 그 주변 마을에서 살던 순교자들이 12명이나 더 있다. 이들의 순교는 천주교 박해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의 죽음이다. 공세리 성당은 110년 전인 1895년 세워졌다. 지금의 고딕 양식 성당은 프랑스 출신의 드비즈 신부가 1922년 중국인 기술자를 데려와 지었다. 공세리 몇번이고 이 글씨를 촬영하고 싶었지만 불이 꺼져있어 쉽지가 않았고 미사때는 사람이 많아 촬영이 어려웠다. 신부님과 눈이 마주쳤다.. 신부님은 계속해서 강론을 하셨다. 봄에는 영산홍이 피고, 여름에는 상사화가 화려하다. 성당 주변에는 수령 300년 이상의 고목만 7그루나 된다. 단풍도 곱고 눈 덮인 겨울 풍광도 곱다. 그래서 영화 감독과 PD들은 공세리 성당을 배경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찍었다. 드라마 ‘모래시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불새’ ‘고스트맘마’ 등에서도 성당이 배경이 됐고 가수 god도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안치환도 성당의 은행나무 아래서 노랫말을 썼다고..... 과거 사제관이었던 이 건물 옆 성당 앞뜰에는 치명일기(致命日記) 수원 387 박의서와 388 박원서와 389 박익서, 세 분 순교자의 묘가 있다. 이 분들은 모두 걸매리에서 살다가 병인박해가 일어난 이듬해인 1867년에 체포되어 수원에서 순교한 분들이다. 이 분들의 묘는 본디는 인주면 해암리 맹령(속칭 맹고개)에 있었는데, 1988년 9월 20일 공세리 성당 변갑철 신부의 주관하에 성당 앞뜰로 이장해 왔다. 오래된 고목 (市 보호수) 와 성당의 옆 창문은 빛바랜 스테인드 그라스로 장식되어있으며 화려하지 않은 고색창연한 빛이 더욱 세월의 깊이와 역사를 되돌리게 해준다. ▼ 아래는 계절 별 공세리성당의 모습. 공세리 성당 가는 길 공세리성당은 서해안고속도로 송악IC에서 빠진다. 38번국도를 타고 달리다 삽교천 방조제를 넘는다. 방조제를 지나자마자 삼거리(아산방면, 당진방면) 정면 낮은 구릉위에 공세리 성당의 첨탑이 언듯언듯 보인다. 오른쪽으로 ‘공세리’ 이정표를 보고 마을로 들어서면 공세리성당(041-533-8181)을 만날 수 있다.
|
|
'대한민국 探訪'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경궁의 가을 빛 (0) | 2006.11.17 |
---|---|
순천과 강진의 가을, 그리고 군침도는 남도 한정식 (0) | 2006.11.15 |
11월에 가볼만한 여행지 4곳 (0) | 2006.11.15 |
사자평과 밀양댐 풍경 (0) | 2006.11.11 |
낙엽비가 뚝…뚝…,옛사랑이 바스락 (0) | 2006.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