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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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이 놀러가는 빈민가

鶴山 徐 仁 2006. 10. 27. 15:27
[10/26] 부자들이 놀러가는 빈민가   2006/10/26 15:14 추천 1    스크랩 3
2006년10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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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이 놀러가는 빈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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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쓰키시마(月島)’ 일대는 도쿄의 회색지대다. 화려한 번화가 긴자(銀座)가 속한 중앙구(中央區)에 주소를 두고 있지만 예부터 서민이 살던 이른바 ‘시타마치(下町)’의 일부다. 한국의 빈대떡처럼 서민들이 이것저것 섞어 한끼를 때우던 ‘몬자야키’를 파는 음식점이 상점가를 이루고 있다. 긴자가 ‘도쿄의 빛’이라면 쓰키시마는 ‘도쿄의 그늘’이다.

상점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노인만 사는 듯한 허름한 검은 목조주택이 줄을 잇는다. 마당도 없다. 한눈에 못 사는 동네란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특유의 주황색 목조다리 아래 흐르는 개천에는 역시 주황색 일본식 나무배가 정박해 있다. 옛 일본 영화에 나오는 1960~1970년대 풍경에서 한 치도 앞서 나가지 못한 곳이 쓰키시마다.

목조주택을 조금만 벗어나면 이번엔 60층짜리 초고층 맨션 군락이 등장한다. 군락 이름은 ‘리버시티(Rivercity)’. 주차장의 자동차 절반 이상이 벤츠와 BMW다. 약간 과장해서 표현하면 억대 스포츠카 람보르기니, 포르셰가 서울 아파트촌의 현대자동차만큼 자주 눈에 띈다. 리버시티에 있는 음식점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요리점뿐이다. 몇 백엔짜리 몬자야키 음식점 따윈 임대료가 비싸 얼씬도 못한다. 1980년대 일본 경제의 거품시대에 조성되기 시작한 ‘부자들의 쓰키시마’다.

올 여름에도 쓰키시마에서 축제가 열렸다. ‘아사쿠사 산자마쓰리’ ‘간다 마쓰리’처럼 유명한 마쓰리에는 끼지도 못하는 소규모 동네 마쓰리다. 이 마쓰리가 열리는 곳은 맨션가가 아니라 몬자야키 식당가와 목조주택, 주황색 목조다리를 잇는 ‘서민의 쓰키시마’다. 노점상이 거리에 꽉 들어차고 긴교수쿠이(금붕어 낚시), 와타아메(솜사탕), 오미쿠지(뽑기) 등 마쓰리를 장식하는 소박한 풍경이 늘 똑같이 재현된다.

 

마쓰리가 열리면 ‘리버시티’ 맨션가의 부자 아빠들이 가족을 데리고 몰려든다. 같은 유가타(여름에 입는 일본의 홑옷)를 입고 같은 다이야키(붕어빵)를 먹으면서 도쿄의 옛 거리를 천천히 걷는다. 마쓰리를 주최하는 상점가는 맨션가 집집마다 금전적 후원을 요청하는 편지도 보낸다. 평소 휴일에도 맨션 사람들은 쓰키시마의 서민 골목을 천천히 지나 몬자야키 상점가를 산보한다.

일본에서도 ‘격차(格差)’가 큰 사회 문제다. 시간이 갈수록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더 못 사는, 이른바 양극화 문제다. 일본 언론이 이 문제를 기사화할 때 단골로 게재하는 사진이 바로 이곳 쓰키시마다. 쓰키시마의 목조주택을 거대한 고층 맨션이 감싸고 있는 모습을 통해 빈부(貧富)를 대비시키는 것이다. 나 역시 3년 전쯤 서울에서 한국의 양극화 문제를 다룬 기획기사를 게재했다. 그 때 비슷한 사진을 사용했다.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과 그 너머로 보이는 도곡동 타워팰리스의 풍경이다.

하지만 우리 구룡마을과 타워팰리스에는 일본 쓰키시마에서 느껴지는 마을의 교류, 계층의 교류, 시대를 엮는 시간의 교류 따윈 찾아볼 수 없다. 무허가 판자촌인 구룡마을에는 도시 빈민의 가난, 위장전입자의 치졸한 계산과 개발 이익을 노리는 건설업체의 공작만 얽혀 있다. 시대를 붙잡아두는 추억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누구도 그 곳에서 추억을 찾고자 바라지도 않는다.

선우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