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kish March KV 331(터키 행진곡)
K.331의 제 3악장의 별명. 이 곡은 제 3악장이 터키스타일로 쓰여졌기 때문에 <터키행진곡 딸림>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원곡은 알라·루르카(터키 풍으로)라고 쓰여져 있는데 당시 터키풍의 음악이 애호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시한 것같다.
론도 알라 투르카 알레그레토 A단조 4분의 2박자의 이 3악장은 경쾌한 테마가 2개 부분으로 나뉘어 반복된다. 그 하나가 이국적인 정서의 터키 행진곡이고 다른 하나는 동양적인 선율을 연주한다.소나타로서는 특이하게 어느 악장도 소나타 형식을 취하지 않고 제 1 악장 변주곡, 제 2 악장 메뉴엣, 제 3 악장 론도로 되어있다.
제 3 악장은 가단조 4/4박자, 경쾌한 주제가 나타나 되풀이 된후 주제와 대조적인 부주제로 들어간다. 계속하여 정상적인 16분음표의 패시지가 되고 다시 주제와 부주제를 거쳐 화려한 코다로 끝난다. 이를데 없이 밝고 아름다운 곡이 모짜르트의 단편을 말해준다. 그러면서도 비통한 감정이 순간 참을수없이 드러나기도 한다.
원래 ‘터키 행진곡’은 터키 군악대 메헤테르하네의 리듬을 특징으로 하는 음악이다. 오스만 제국의 유럽 침공으로 18세기경부터 각지에 터키 군악대가 등장하였다. 음악 분야에도 영향을 미쳐 18~19세기에는 터키풍을 도입한 작품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볼프강 A. 모차르트의 이 곡이며, 바이올린 협주곡 제5번 피날레에도 이 어법을 도입하고 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피아노를 위한 6개의 변주곡(op.76)〉(1809),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의 부수음악 〈피에타스〉(1767)·〈자일〉(1777)에도 터키 행진곡이 쓰이고 있다.
이보 포고렐리치(Ivo Pogorelich, 1958~ )
유고슬라비아의 크로아티아 출신인.. 이보 포고렐리치(Ivo Pogorelich)는 피아니스트로서의 데뷔과정은 물론, 이후 내놓는 여러 음반에서도 강렬한 개성으로 사람들의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키는 피아니스트입니다.
포고렐리치는 쇼팽과 슈만, 베토벤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일반 연주자들과는 달리 템포 설정과 터치에 자의적인 면이 강해서 기술적으로 매우 안정된 연주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청중들이 편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야무진 턱과 곱슬머리, 강렬한 눈빛에서 느껴지는 포고렐리치의 외모만큼이나 음악 외적으로도 여러 가지 화제를 불러 일으키는 인물입니다.
이보 포고렐리치(Ivo Pogorelich)는 베오그라드에서 태어나 일곱 살부터 피아노를 시작하였습니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공부하였으며, 1980년 그의 스승인 알리사와 결혼했습니다. 포고렐리치 스스로 "알리사만큼 나의 음악 세계를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녀와 음악적으로도 완벽한 결합을 이루었지만 1996년에 돌연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보 포고렐리치(Ivo Pogorelich)를 말하면 쇼팽(chopin)과 저절로 연관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1980년 바르샤바에서 개최된 국제 쇼팽콩쿨에서의 그의 남다른 쇼팽 연주는 심사위원 중에서도 최고와 최악의 연주로 극단적인 평가를 엇갈리게 받은 결과, 특별상과 비평상까지 받았던 이보 포고렐리치가 본선에서 탈락하자 당시 심사위원이던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그의 천재성을 역설하며 심사원 자리를 박차고 퇴장해 버렸습니다.
그 덕택에 이보 포고렐리치는 콩쿠르 우승을 놓친 대신, 당시 우승자였던 베트남 출신 당 타이손(Dang Thai Son)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걸출한 신예 피아니스트로 단번에 막대한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보 포고렐리치(Ivo Pogorelich)는 쇼팽(chopin)의 음악에 역점을 두는것 같습니다. 1980년에 첫 음반으로 발표한 '쇼팽 리사이틀'이 발매 사흘만에 1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이를 보면 이보 포고렐리치의 쇼팽 연주가 흔히 듣는 쇼팽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카네기 홀에서 1981년 데뷔후 이보 포고렐리치는 개성이 강한 연주 스타일을 고집하는 연주자라고 평가되어 왔습니다. 어떤 곡이라도 그의 연주 방식으로서 소화하는 성깔있고 이색적인 피아니스트로 유럽과 캐나다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의 연주여행을 통해 시카고 심포니. 보스톤 심포니.뉴욕 필하모니 등 메이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하였습니다.
오늘날 이보 포고렐리치는 우리들에게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명성이나 돈 대신 젊은 음악도들을 후원하거나 전쟁의 화를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데 더 큰 열성을 쏟고 있습니다. 1986년 크로아티아에 재단을 설립, 젊은 연주자들이 해외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가 하면, 1989년에는 어린 연주자들을 위한 <이보 포고렐리치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1993년에는 <이보 포고렐리치 피아노 콩쿠르>를 창설해 캘리포니아에서 첫 대회를 열었으며, 이듬해 전쟁 부상자들을 치료할 병원 설립 기금을 모으기 위해 사라예보에 재단을 세웠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그의 연주 대다수는 '자선', 혹은 '후원'의 성격으로 국제적십자사, 유네스코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1988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친선대사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힘없고 지친 사람들, 끊임 없는 전쟁 속에서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이보 포고렐리치의 음악적 열정이 인류애적 사랑으로 발전되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