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궁중비사] 13. 長髮의 佳人 동천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것은 제 12대 중천왕(中川王)이다. 왕은 이름을 연불(然弗)이라 했는데 동천왕의 아들이며 일찍이 동천왕 17년에 태자가 되었다. 준수한 외모와 탁월한 지력으로 새 임금의 자격이 충분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정권의 계승에 따르는 분쟁을 모면할 수 없었다. 왕.. 歷史. 文化參考 2007.02.01
[고구려 궁중비사] 12. 亂中의 烈士 그 당시 중국 땅에는 위(魏)를 비롯하여 오(吳), 촉(蜀)이 정립(鼎立)되어 자웅을 겨루고 있었다. 바로 소설 <삼국지(三國志)>에 묘사된 그 시대였다. 그리고 위는 우리의 강토에 설치된 군현(郡縣)을 지배하고 있던 공손씨(公孫氏)를 멸하고 그 군현을 장악하게 되자 그와 이웃한 고구려 땅을 엿보게.. 歷史. 文化參考 2007.02.01
[고구려 궁중비사] 11. 太后의 最後 주통촌 여인 소후의 몸에서 난 왕자가 태자로 책봉되자 왕후 우씨는 더욱 슬프고 외롭고 분함을 이길 수 없었다. 아무리 왕후라는 귀한 자리에 있고 왕의 사랑 역시 아직도 극진하긴 하지만 열매 없는 꽃의 슬픔은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것이었다. 우씨는 그런 괴로움을 죄 없는 어린 태자를 들볶는 .. 歷史. 文化參考 2007.02.01
[고구려 궁중비사] 10. 妖花 于太后 신대왕에게는 발기(拔奇), 남무(男武), 연우(延優)등 세 아들이 있었는데 왕은 생전부터 장자 발기보다도 그의 아우 남무를 더 사랑했다. 그러므로 신대왕 12년 3월에는 형을 제쳐두고 남무로서 태자를 삼았던 것이다. 선왕의 뜻이 이러했을 뿐만 아니라 신하들이 보기에도 왕위 계승자로서 어느 모로 .. 歷史. 文化參考 2007.01.30
[고구려 궁중비사] 9. 山中에 숨은 王子들 차대왕에게는 추안(鄒安)이란 태자가 있었다. 차대왕이 죽었으니 왕위를 계승할 자는 바로 태자 추안이었지만 그는 부왕이 죽은 이상 자기의 신변이 안전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깊이 산중으로 도망해 버렸다. 그리고 태조왕과 차대왕의 아우 백고(百固)도 일찍이 차대왕의 절제 없는 생활을 충고 .. 歷史. 文化參考 2007.01.30
[고구려 궁중비사] 8. 호랑이와 표범 왕자 호동이 자결하자 대무신왕은 그 다음 달인 12월에 해우를 태자로 삼았다. 원비의 강청을 물리치기 어려운 때문이었을 것이다. 해우가 태자가 된지 12년만인 대무신왕 29년에 왕이 승하했다. 그러니 응당 해우태자가 왕위를 계승해야 마땅할 것이지만 대신들은 그를 제쳐놓고 대무신왕의 아우인 해.. 歷史. 文化參考 2007.01.30
[고구려 궁중비사] 7. 樂浪宮中의 悲戀 새 나라의 기틀이 잡혀 외환의 우려가 적어지면 안으로 그 권력을 계승하는 자들 간에 암투가 벌어지는 것은 가장 흔히 보는 불상사이다. 고구려의 경우 역시 이 무렵부터 상서롭지 못한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대무신왕에게는 원비(元妃) 소생의 해우왕자(解憂王子)와 차비(次妃) 소생의 호동왕자(.. 歷史. 文化參考 2007.01.30
[고구려 궁중비사] 6. 一頭二身의 怪鳥 유리왕의 뒤를 이어 고구려 제3대 왕이 된 무휼태자가 바로 건국 기초를 완성한 대무신왕(大武神王)이다. 대무신왕이 즉위했을 때(西紀 18年) 그의 나이 11세였다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는 왕자의 몸으로 부여군을 격파한 일까지 있으니 그것은 그릇 전해진 .. 歷史. 文化參考 2007.01.30
[고구려 궁중비사] 5. 無恤王子의 奇計 제2 왕자 해명이 죽게 되니 제3 왕자 무휼(無恤)이 왕위 계승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무휼왕자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녹록치 않게 무용이 절륜했지만 슬기로운 그는 그것을 표면에 나타내지 않았다. 해명왕자가 죽은 해 8월 부여왕 대소는 사자를 보내어 유리왕을 책망했다. “나의 선왕께서 그대의 .. 歷史. 文化參考 2007.01.30
[고구려 궁중비사] 4. 解明王子의 悲劇 이성에게는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왕이었지만 유리는 새 나라의 기틀을 잡아가는데 있어서는 신중하고 슬기로운 임금이었다. 그가 즉위한지 14년 되는 정월이었다. 부여왕 대소가 사신을 파견하여 질자(質子)를 교환하자고 청해왔다. 대소는 이에 앞서 그의 소망대로 부여국의 왕위를 계승했던 것이.. 歷史. 文化參考 2007.01.30